여든살 작가가 남긴 일상에서 찾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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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9.02.11 11:24 | 수정 : 2019.02.18 18:06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 저 |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324쪽 | 13,000원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의 거장인 '어슐러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은 여든을 넘긴 노작가가 2015년부터 5년 동안 블로그에 남긴 글 40여편을 엮은 철학 에세이이다.

    제1장 여든을 넘기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년의 실체를 전적으로 나쁘게만 보고 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긍정적인 정신을 가진 노인들을 대하고 싶은 나머지 노인들의 현실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선의를 가득 담아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 선생님은 늙지 않으셨어요.' 교황더러 가톨릭교가 아니라고 하는 격이다.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 법이래요!' 솔직히 말해 팔십삼 년을 사는 일이 그저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 전사들도 늙는다. 나약한 이들도 늙는다. 사실상 개연성으로 따지면 전사들보다 더 많은 나약한 이들이 늙어가게 된다. 노년은 건강하고, 강인하고, 거칠고, 용감무쌍하고, 병들고, 허약하고,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


    제2장 문학 산업

    "나는 욕설이 제법 다채롭고 때로는 대단히 특색 있기까지 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물론 현대인의 기준에서 보면 지루할 것이다. 일종의 예술로서 욕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과도함과 돌발적 기질이 눈부시게 현란한 정점을 찍었더랬다. 그에 비해 오늘날에는 겨우 두 개의 욕설만 쓰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아주 쉴 새 없이 사용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두 가지 욕설을 넣지 않고서는 말을 못 하고 심지어 글도 못 쓴다."

    "글쓰기는 위험한 입찰이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운에 맡겨야 한다. 나는 기꺼이 내 운을 걸었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내 글이 오독되고 오해받고 오역되더라도, 그게 어때서? 내가 제대로 썼다면 무시당하고 사라지거나 읽히지 않는 수난을 당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아닌가."

    "즉각적인 보상으로 파괴를 장려하는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의 행동은 ‘액션 피규어’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유일한 목표가 ‘승리’인 그런 게임들은 중독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라 쉽사리 벗어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무의미한 보상의 끝없는 순환에 갇힌 인간의 상상력은 굶주림에 갇혀 회생 불가능해진다."

    "상을 만든 사람들은 수상이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란 것도 아니고 그런 의도를 가지고 설립된 재단이 아니지만 상은 그렇게 이용된다. 상의 진정한 가치는 작가에게 명예를 주는 데에 있다. 하지만 기업 자본주의의 마케팅으로 혹은 시상자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그 가치가 훼손되었다. 그렇게 상의 권위와 평가가 높아질수록 상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지친 교사들, 소극적인 교사들, 게으른 학생들은 문학을 이루고 있는 많고 많은 훌륭한 책들 중에 단 하나만 읽고자 한다. 예술은 경마가 아니다. 문학은 올림픽이 아니다."

    "불확실성의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판타지 소설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로서는 과학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쉽사리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제3장 이해하려 애쓰기

    "페미니즘은 이어지고 있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과 함께 일하는 곳 어디에나 자리 잡아야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성적 가치의 정의에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특정 성에 배타적이기를 거부하며, 상호 의존성을 지지하며, 공격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와해시켜야 한다. 또한 항상 자유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적어도 2000년이 시작된 시기부터 최소 1세기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무한한 성장이기도 했지만 통제받지 않은 성장이었다. 마구잡이 성장이랄까. 종양이 그런 식으로 자란다. 암도 그렇다."

    "나는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의 대통령이 우리에게 적어도 그런 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줄 만큼 국민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나는 진실을 중요시하고 선을 나누는 행동이 내 나라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나라가 남의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나는 아이들을 ‘엄청난 과제를 부여받은 미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가능성의 실현이다. 성장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이 과제를 이루고 싶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걸 완수하기 위해 누구나 어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도움을 우리는 ‘가르침’이라고 부른다."

    "분노가 그 효용을 넘어 계속되면 정의롭지 않아지고, 나아가 위험으로 바뀐다. 분노 자체를 목적으로 성장하고, 분노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겼다가는 목표를 잃고 만다. 분노는 적극적 행동주의 대신 퇴보, 집착, 복수, 독선을 땔감으로 쓰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정치계에서 보수 우파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반이성주의를 통해 분노의 파괴력을 소름 끼치도록 잘 보여주었다. 증오를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조장된 분노는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통제했다."


    제4장 보상

    "탁월함에 도달한 것들에는 함부로 변화를 주는 법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노동 생활을 탁월성을 유지하는 데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탁월성을 망가뜨리라고, 분명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라고 주문하다니 내가 잔인했다."

    "사람들이 한탄하는 이유는 믿음의 상실에 대한 고통 때문이 아니라, 믿었던 사람들이 그들은 믿지 않던 무언가를 자신으로 하여금 믿도록 만들었기 때문 아닌가? 그게 아니라 뚱뚱하고 자그마한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산타클로스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가 상징하던 것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려서? 대체 왜 그런 마음이 드는가?"

    "하지만 인간은 고독한 종이 아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천성적으로 사교적이다. 그리고 오직 공동체 속에서 번성한다. 인간이 오랜 기간을 완전한 고독 속에 사는 것은 전적으로 부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군중 속에서 염증을 느끼고 공간과 고요함을 갈망할 때 우리는 반(半)공동체나 가짜 공동체를 멀리 떨어진 장소에 만든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곳에, 그 사막에 몰려감으로써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흔히 깨닫게 된다.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찾고 있는 고독을 파괴할 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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