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매매부터 유전자 특허까지...인체는 어떻게 돈이 되는가?

  • 조선닷컴 라이프플러스

    입력 : 2018.10.22 13:31

    한 손에 잡히는 생명윤리 표지

    한 손에 잡히는 생명윤리
    도나 디켄슨 지음 | 강명신 옮김 | 동녘 | 264쪽 | 1만4000원

    이제 ‘생명윤리’보다 ‘바이오산업’이라는 말이 훨씬 자주 들린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생명공학은 그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뿐인가? 이 책은 이러한 생명공학의 상업화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다. 생명공학의 반대편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종교단체를 떠올리지만 저자는 이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리모 산업, DNA에 대한 맹신, 증강기술, 유전자 특허 등 생명공학 분야의 많은 논쟁에는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종교를 생명공학의 유일한 적으로 생각할까? 저자는 갈릴레오의 죽음 이후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과학의 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편견이 지배해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는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 또한 ‘과학은 이익이 되므로 옳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므로 자신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쪽은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다.

    이 책은 상업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의’의 관점에서 상업화가 누구에게 더 혜택을 주고, 누구를 더 해롭게 하는지 면밀히 따진다. 미국에서도 임상시험 피험자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며, 민간기업들은 이조차도 피하려고 개발도상국까지 진출해 피험자를 모집한다. 표면적으로 이는 자발적 ‘선택’이다. 하지만 생계가 위협받을 만큼 가난하거나, 의료보험이 없어 임상시험에서 제공되는 치료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절박한 경우에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시험은 사전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는지 감시하기가 더욱 어렵고, 임상시험을 감독하는 ‘위원회’가 심사 대상 회사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는 비윤리적인 사례도 빈번하다.

    아울러 여성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획기적으로 보이는 생명공학기술 대부분은 여성의 신체조직을 중요한 재료로 삼지만 아무도 이를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황우석 사태로도 유명한 ‘체세포핵치환’ 기술은 엄청난 수의 난자를 필요로 했으며, 난임 부부에게 희망을 주는 체외수정 기술과 태아의 선천적 질환을 확인하는 착상전유전자진단(PGD)의 경우 난자 채취부터 자궁 착상까지 그 고통을 여성에게 감내시킨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이 기꺼이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이 없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 자체가 없었던 남성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이러한 희생이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생명공학의 상업화는 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과 여성의 희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정의롭지도 못하다.

    생명윤리가 “과학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입장에 서 있다”고 믿는 저자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다 열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듯” 보이는 측면도 흔쾌히 인정하며, 각각의 사례와 쟁점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들려준다. 그 마디마디를 연결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저자의 이러한 회의적 사유는 생명윤리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사안마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일은 추상적이고 어렵지만, 생명윤리가 “좋은 과학과 좋은 윤리학은 상충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 & lif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