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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코냑으로 나는 향수로 취하게 한다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 모든 것에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했던 남자. 헤네시 코냑 창업자의 7대손이자,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을 만든 킬리안 헤네시다.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킬리안' 향수를 선보인 뒤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할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향에 취하게 하고 있다.

    입력 : 2018.05.18 04:00

    자기 이름 딴 향수 만드는 헤네시 코냑 창업자 7대손… 킬리안 헤네시

    당신이 어느 날 프랑스 남서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상상해보자. 눈을 떠보니 누워있는 곳은 집이라고 말하기엔 거대한 성(château)이었고, 그저 촌동네인 줄 알았던 그곳이 바로 코냑(cognac) 술로 유명한 그 코냑이란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헤네시(Hennessy)라고 부른다. 독주(毒酒)인 코냑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그 헤네시 말이다. 하필 그 동네 태어나 우연히 성(姓)만 같은 게 아니라, 너도나도 아는 바로 그 헤네시 창업자의 직계손이라면! 그런 당신에게 펼쳐진 미래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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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라호텔에 문을 연 킬리안 향수 부티크 앞에 선 킬리안 헤네시. ‘코냑 왕가’의 직계손답게 그는 주종 불문 술을 즐긴다고 했다. 겨울엔 헤네시 X.O 온더록스(얼음을 넣는 것)로, 여름엔 주로 보드카 온더록스를 마신다. 집에 공짜 술이 넘칠 것 같다 하자 “내 돈 내고 마시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며 웃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 모든 것에서 최대한 멀어지고자 했던 남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듯했으나 결코 그 길을 택하지 않을 걸 언제나 알았다는 남자. 바로 킬리안(Kilian) 헤네시(46)다. 헤네시 코냑 창업자인 리처드 헤네시의 7대손이자, 샴페인 회사인 모엣샹동과 합병한 뒤 루이비통과 손잡고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을 만든 킬리안 헤네시의 손자다. 명실상부한 헤네시 왕국을 건설한 자신의 할아버지와 단지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삶의 모든 것을 배웠다는 손자 킬리안이 택한 건 술이 아닌 향수 제조였다.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킬리안' 향수를 선보인 뒤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며 할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향에 취하게 하고 있다. 최근 서울 신라호텔에 킬리안 부티크를 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16일 만났다. "할리우드 배우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는 몇몇 해외 매체의 반응은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생로랑 재킷에 맞춤(비스포크) 셔츠, 생로랑 부츠를 신은 그의 첫인상은 사업가라기보다 방금 생로랑 패션쇼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모델 같았다.

    ―가업을 잇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고 하던데 편한 길이 눈앞에 있는데 왜 마다했는가.

    "내 이름 때문이다. 나를 만나는 많은 이들이 '이름 덕 보고 살겠다'고 했다. 내 능력껏 해낸 일인데도 집안 덕분에 쉽게 해냈다는 시선도 있었다. 이미 지어진 왕국에 안도하는 게 아닌, 밑바닥부터지만 내 손으로 내 이름의 왕국을 세우고 싶었다."

    ―당신의 이름이 짐처럼 느껴졌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삶을 즐기기엔 이름이 주는 무게가 굉장했다. 어딜 가도 '쟤가 헤네시래'라며 쑤군댔다. 소르본 대학과 향수 제조학교를 졸업한 뒤 LVMH 계열인 디올에 입사했을 때도 '집안 사람이니까'라고들 했다.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스물다섯에 일부러 LVMH를 떠나 푸치, 구찌, 로레알같이 LVMH의 경쟁사를 찾아들어갔다."

    ―그때도 이름은 따라다녔을 텐데.

    "디올에 있을 당시 신제품 관련 경연대회가 있었다. 익명으로 지원했고 당당히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낙하산 운운하던 사람들의 비판은 공중분해됐다. 그날이 사표를 쓸 최적의 날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도 당신의 이름이 사업에 도움 되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오늘. 당신과 이렇게 내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하하."
    소르본 대학에서 ‘향’에 대한 논문을 쓰며 조향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향수 제조, 마케터로 활약하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는 향수병 자체가 평생 소장하고픈 작품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킬리안
    소르본 대학에서 ‘향’에 대한 논문을 쓰며 조향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향수 제조, 마케터로 활약하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는 향수병 자체가 평생 소장하고픈 작품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킬리안

    ―왜 향수였나.

    "프랑스 샤렁트(Charente)에 있는 우리 집안 성(城)에는 언제나 향이 넘쳐 흘렀다. 쿰쿰한 오크통 향기가 집안을 감쌀 즈음, 말린 과일의 달콤하고 농밀한 내음이 살풋한 꽃향기와 어우러져 코끝에서 춤췄다. 특히 기억나는 건 할아버지가 샤워할 때다. 디올 향수인 '오 소바주(Eau Sauvage)' 대형 사이즈를 손에 한 움큼씩 덜어 머리부터 몸 전체를 바른 뒤 거실에서 시가를 피웠는데 둘의 오묘한 조합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10년 전 파리의 작은 방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정확히는 작은 사무실이다. 집안 도움 없이 거의 빈손으로 시작했다. 삼촌이 돌아가신 뒤 생명보험금을 약간 물려주신 것이 종잣돈이었다. 내가 사업을 한다 하니 경쟁자들은 LVMH 그룹으로부터 대단한 투자금을 받았을 거라 추측했다. 절대 아니다. 할아버지는 2차대전 뒤 거의 이름만 남았던 헤네시를 무일푼에서 다시 일으킨 분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사업가 정신을 강조했고, 난 언제나 할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할아버지에게 뭘 배웠는가.

    "품질과 새로운 시장 개척. 매년 균질하면서도 더 진화하는 품질의 코냑을 생산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제1 과업이었고, 낯선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두 번째 관심사였다. 압도적인 품질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무엇보다 흥청망청이란 게 없었다. 같은 차를 20년 넘게 몰았고, 가장 큰 사치가 메르세데스(벤츠)다. 언제나 검소했고 모든 이에게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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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리안 헤네시의 첫인상은 사업가라기보다 방금 생로랑 패션쇼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모델 같았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업을 재건해야 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말 그대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는데.

    "그건 집안의 재산일 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하고픈 일을 키우며 잘 살면 되지 집안에 왜 기대야 하는가."

    ―국내 들어오는 23개 제품 중 몇몇은 이름이 꽤 관능적이다. '나랑 잘래요' '타락한 소녀' 같은….

    "성경의 '선악과'에서 착안했다. 향수 제조는 영화 감독과 같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향에 스토리를 입혀 눈에 보이는 듯한 이미지로 창조해 내는 것이다. 세계적인 조향사인 알베르토 모리아스에게 의뢰했더니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가 됐다."

    ―2년 전 에스티로더 그룹에 인수됐다. 왜 LVMH가 아닌가.

    "홀로 사업을 하고 있을 때도 대부분 LVMH 계열사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더더욱 갈 이유가 없었다. 물론 LVMH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내 인생 여정을 보면 '노(No)'였음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회사를 든든하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배경을 원했고, 에스티로더는 LVMH에 소속되는 것보다 최소 20배는 회사를 키워줄 거라 믿는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

    "열 살 때쯤 헤네시 집안의 거대한 성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 날. 부모님의 이혼 때문이었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겠다고 처음 다짐했던 날이었다. 물론 할아버지는 날 끔찍이 아끼셔서 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했다. 103세에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까지도 "하루 몇 병의 향수를 팔았느냐"고 물으셨다. 의기소침해 보이기라도 하면 당신이 2차대전 뒤 일본 시장을 개척했는데 1년에 단 한 병도 못 판 적도 있다며 나를 언제나 격려했다. 배려심이 가득한 분이다."

    ―당신도 어려웠던 적이 있는가?

    "난 매일 성장하고 지금도 발전을 원한다. '그 정도면 됐다'라는 건 내 사전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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