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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뜬금없이 연락해 온갖 근심 쏟아내는 친구… 푸념으로 들리는 내가 나쁜 걸까?

  • 이주윤·작가

    입력 : 2018.05.11 04:00

    [가자, 달달술집으로]

    가자 달달술집으로
    휴대폰 화면에 알듯 말듯 한 이름이 떴다. 누구지, 누구더라, 한참을 갸웃거린 끝에 내 기억 저기 저 구석에 짜부라져 있던 그 이름의 주인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대학 동기였다. 학생 때 붙어 다니기는 했지만 그거야 같은 과니까 그랬던 것뿐이고, 졸업한 후로는 연락을 뚝 끊고 살았으니 거의 남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전화람. 반갑다는 인사 대신 웬일이냐 묻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 되는 일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앳된 티를 벗을 나이가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예전처럼 앙앙대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정수기를 한 대 사달라고 하거나 보험에 가입해달라고 물고 늘어질 것 같아 어떤 말로 거절할까 궁리하는 찰나, 그녀는 전화의 목적을 밝혔다. "근데 딱히 털어놓을 사람이 없더라. 옛날에 내 얘기 잘 들어줬었잖아, 너."

    맞아, 그랬었지 참. 그녀는 나를 해우소처럼 여기며 온갖 근심을 쏟아내곤 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톡, 하고 건드리자 그녀의 해묵은 걱정거리들이 툭, 하며 터져 나왔다. 재수 없는 직장 상사가 못살게 굴어서 열불이 터진다, 애인에게 청혼을 받았는데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까 봐 결혼하기가 망설여진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서 퇴사할까 하는데 막상 사표를 내려니 겁이 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버거운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지친다, 힘들다, 죽겠다, 힘들어서 죽겠다. 나는 응, 그래, 그렇구나, 맞장구를 치며 그녀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었다.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져 더는 귀에 대고 있기 어려울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와의 통화가 끝났다. 그 후로도 종종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단다. 정말? 그렇단 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지?

    가자 달달술집으로
    이주윤
    미안하지만,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의 고민에 관심이 없다. 어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기울지 않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내 한 몸 어르고 달래 살아가기도 힘에 부치는 마당에 다른 이의 불안까지 보듬을 여력 따위 내게는 없다. 너에게는 세상 가장 심각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하찮은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본인이 가진 문제를 진지하게 염려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임을, 가슴속에 쌓인 쓰레기를 내다 버리듯 나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붓는 걸 이제 더는 받아줄 수 없음을. 그녀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니다.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자기 얘기하기에 바빠 내가 말할 틈 같은 건 주지도 않을 텐데 뭐.

    그녀는 오늘도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애써 외면하며 휴대폰을 저만치 밀쳐놓는다. 진동 모드의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며 빨리 전화 좀 받아 보라고 앙탈을 부리는 것만 같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른다. 전화가 다시 한 번 왔지만 나는 역시 거절을,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는 거듭 거절을 했다. 그녀는 내가 변했다고 나를 욕하고 다니려나.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징징거리기만 하는 네가 싫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변한 내가 나쁜 걸까, 변하지 않은 네가 나쁜 걸까. 우리 둘 중 더 나쁜 사람은 누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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