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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조명, 메아리 치는 기둥… 벽지엔 멸종 동물이 어슬렁

지난달 17~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 행사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선 몇 년간 주춤하던 미니멀리즘은 더 멀어졌고, 대신 맥시멀리즘이 다가왔다.
4차 산업의 발달로 몰개성화돼 가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휴머니즘과 개인의 취향을 강조했고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였다.

  • 밀라노=여미영·디자이너
  • 편집=섹션편집팀

    입력 : 2018.05.04 04:00

    [밀라노 가구 박람회]

    하이테크 스며든 디자인

    살아있는 자연 체험관
    첨단기술로 기후 조정… 사계절 체험할 수 있어
    초여름에 눈꽃까지

    멸종된 동물들의 미술관
    박물관서 수집한 과거 생명체의 정보
    카펫·가구 등에 반영

    미투·소수자 문제 다뤄
    브라질 女건축가 조명…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신진 디자이너 전시도

    '간결한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가 기능주의를 비판하며 한 이 명구는 올 디자인계에도 유효해 보인다. 지난달 17~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 행사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선 최근 몇 년간 주춤하던 미니멀리즘(minimalism·최소주의)은 더 멀어졌고, 대신 맥시멀리즘(maximalism·최대주의)이 성큼 다가왔다.

    4차 산업의 발달로 몰개성화돼 가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휴머니즘과 개인의 취향을 강조했다. 여기에 인권과 좀 더 섬세해진 기술이 더해지면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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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멸종된 동물들의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전시한 '무이' 전시장. / Moooi ② 여행에서 패턴을 수집해 작업해온 디자이너 베산 로라 우드와 그녀가 멕시코에서 영감 받아 만든 패턴으로 제작한 '모로조' 쇼룸. / Moroso ③ '야코포 포지니'가 재생 플라스틱으로 제작해 감성적인 구름 형태로 연출한 전시 '림보'. / Jacopo Foggi ④ 기린이 물고 있는 형태로 만든 '마르칸토니오'의 샹들리에 '그녀는 사랑에 빠졌지만 아직 모른다'. 생명애가 반영된 동물 디자인이다. / Marcantonio ⑤ 창밖으로 말이 풀을 뜯는 풍경이 펼쳐지는 디자인 그룹 '어나더뷰'의 디지털 창문. 24시간 동안 촬영한 풍경 중 원하는 장면을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다. / Anotherview ⑥ 브라질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가 1951년 디자인한 볼라(Bola) 의자. / Nilufar

    기술, 자연을 물들이다

    정보와 기술이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을 넘어서 '생명애(生命愛·biophilia)'까지 담아내는 그릇으로 디자인에 스며들었다. 디자인 위크 기간 열리는 행사 중 핵심인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선 '살아있는 자연(Living Nature)'을 주제로 한 체험관이 열렸다. 첨단 기술로 기후를 조정해 인공으로 만든 사계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초여름 날씨의 밀라노에서 눈꽃까지 폈다.

    장외 전시에서 수년간 가장 인기를 끌어온 네덜란드 가구 브랜드 '무이'는 '멸종된 동물들의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박물관에서 수집한 과거 생명체의 정보를 카펫, 벽지, 가구 등에 반영했다. 가구 브랜드 '야코포 포지니'는 밀라노대 캠퍼스에 몽환적인 플라스틱 구름을 만들었다. 폐기된 플라스틱을 재생해 몽글몽글 피어난 구름 형태로 만든 설치물 '림보'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드리아데'의 전시 '달의 임무'는 더 파격적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에서 가구를 제작한다는 가정에 따라, 달에서 가져온 모래와 인간의 소변에서 추출할 수 있는 소재인 레진으로 가구를 만들었다. 인간의 주거 영역이 우주 시대를 맞아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가전제품 브랜드 '소니'는 '숨겨진 감각'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사람의 동작에 따라 춤추는 조명, 메아리를 만드는 기둥, 시소처럼 반응하는 벤치 등으로 호평받았다. 기술이 기계의 차가운 질감을 벗어나 인간 감성까지 파고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디자인에 스며든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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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22일 열린 57회 밀라노 가구 박람회 현장 모습. 엿새 동안 43만4000여명이 찾았다. / 밀라노 가구 박람회 조직위원회
    올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미투(Metoo)와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디자인에도 드러났다. 디자인 갤러리 '닐루파'와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장외 전시를 조직해온 디자인 잡지 '인테르니(interni)'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한 브라질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를 재조명했다. 브라질 장인의 기술을 근현대 건축에 접목한 그의 작업을 살펴보는 콘퍼런스엔 그를 롤모델로 삼아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여성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키올라도 함께했다.

    가구브랜드 '모로조'는 유명 디자이너 5명에게 여성의 예술적인 가내수공업을 상징하는 태피스트리(tapestry· 직조)를 의뢰해 가구와 매치했다. 여기에 영국 여성 디자이너 베산 로라 우드가 멕시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패턴을 공간 연출에 활용했다. 신진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섹션인 '살로네 사텔리테'에서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떠오르는 디자인'이라는 주제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디자인이 만개한 밀라노에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자신부터 시작하라(If you wanna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a change)"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 '거울 속의 남자(man in the mirror)'의 가사가 자꾸만 맴돌았다. 라이프스타일은 편견과 통념을 넘어 변화하고 있고, 기술은 공간의 진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당신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려면 당신이 발 딛고 있는 공간부터 바꿔보라고 밀라노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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