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friday] 심심한 육수·거친 면발… 낯설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묘한 '한 그릇'

  • 박상현 캐나다 부처트 가든 정원사·수필가

    입력 : 2018.05.04 04:00

    [박상현의 안단테로 살아보니] 이국땅의 평양냉면

    베트남 하노이의 북한 식당 ‘류경식당’메뉴판. 박상현
    베트남 하노이의 북한 식당 ‘류경식당’메뉴판./박상현
    익숙한 모양새에 비해 그 맛은 너무도 낯설었다. 고기 육수와 동치미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맑은 육수는 심심했다. 아무리 입안의 혀를 굴려 봐도 미각을 자극하는 어떠한 맛도 느끼기 어려웠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뒤에는 입안에 남아 맴도는 향이 거의 없었다. 맹탕이라고까지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담백미(淡白味)의 절정이라는 극찬에도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메밀로 만들어 진한 갈색이 도는 면도 마찬가지였다. 식감은 거칠었고 툭툭 끊어지는 면발은 매가리가 없었다. 국물은 면발의 빈 곳을 메워주고, 면은 국물의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하는 법인데, 마치 별거 중인 부부처럼 따로 놀았다. 고명으로 올라온 오이나 배, 삶은 계란 따위도 별반 도움이 되질 못했다. 어울려 맛을 내려 하기보다 서로 간섭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듯했다.

    보통의 음식들은 입안에 들어가는 즉시 자신의 필살기들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매콤하거나, 달콤하거나 또는 짭조름하거나 풍부한 감칠맛 같은 걸 쏟아내 '첫술'에 승부를 보려 한다.

    이 음식은 달랐다. 식재료에서 가급적 모든 자극과 맛을 제거해버린 뒤에 비로소 완성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보니 혀가 뭔가를 잡아내려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헛물만 켰다.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할 뇌가 허둥댔다. 더 먹어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판단할 근거들이 부족하니 애꿎은 혀만 붙들고 늘어졌다.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뜬금없이 사색에 잠겼던 이유다.

    자주 만나다 보면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품을 수도 없었다. 태어난 나라도, 사는 나라도 아닌 이국땅, 베트남에서 처음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음식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땅엔 쉽사리 오갈 수도 없는 처지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성품을 쏙 빼닮는다고 믿는다. 남도에서 나고 자라신 내 어머니의 음식은 당신의 활달하고 화통한 기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매콤하고 알싸한 맛은 기본이고, 간은 세고 거칠며 자극적인 풍미가 가득하다. 결혼 초기 장모님께서 만들어 내놓으신 음식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이유다. 젓국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는 심심했고 기름기를 걷어낸 육개장은 당신의 온화한 성품처럼 맑고 담백했다. 그러나 장모님의 음식에 익숙해진 이후엔 내 어머니 음식이 품고 있는 자극적 맛이 부담스러워졌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면서 생긴 변화였다.

    '입맛이야말로 가장 보수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쉽게 변하지 않고, 익숙한 것만 찾게 되며 색다른 맛에는 곁자리를 내어주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하노이의 '류경식당'에서, 북녘 동포들이 직접 만들어 내놓았던 평양냉면 한 그릇. 그 낯선 맛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엔 평양에서 이 오묘한 음식을 다시 만났으면 하는 게 한 '해외 동포'의 소박한 바람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