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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김치·고춧가루가 잔뜩… 탁하고 거칠어 중독되기 쉬운 惡한 맛

  •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 2018.05.04 04:00

    [정동현의 지금은 먹고 그때는 먹었다] 송탄식 부대찌개 '김네집'

    검정 비행기가 하늘을 낮게 날았다. 고고도 정찰기 'U2'였다. 기체는 늘씬했으며 커다란 검정 날개가 양옆으로 쭉 뻗었다. '드래곤 레이디(Dragon Lady)'라는 별칭처럼 도도하고 고고하게 비행하는 U2기를 보았을 때 나는 경기도 송탄에 들어서고 있었다.

    평택에서 군 생활을 하던 시절 들르곤 했던 송탄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건물들은 여전히 낮았고 길은 예전처럼 군데군데 파여서 그 위를 달리는 차는 위태롭게 덜컹거렸다.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쓰는 시장 골목은 시장이란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한산했다. 몇 번 작은 골목을 헤매다 익숙한 간판을 발견했다. 송탄식 부대찌개를 파는 '김네집'이었다.

    김네집 부대찌개. 두꺼운 치즈와 다진 돼지고기, 소시지, 햄이 빨간 국물에 담겨 있다. 국물이 졸아들면 찌개라기보단 찜에 가까워진다.
    김네집 부대찌개. 두꺼운 치즈와 다진 돼지고기, 소시지, 햄이 빨간 국물에 담겨 있다. 국물이 졸아들면 찌개라기보단 찜에 가까워진다. /정동현
    이 집은 예전에 비해 조금 달라졌다. 텔레비전 방송의 광풍이 불고 간 듯 부대찌개집 앞 건물에 어엿한 대기실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꽤 친절하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놓은 안내 문구도 벽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그것뿐이다. 가게 초입에서 시퍼런 막칼로 목을 치듯 파를 툭툭 자르는 아낙도, 토막 낸 적의 무리처럼 쌓아놓은 햄 더미도 여전했다. 보통 자리를 잡는 곳은 그 파와 햄 무더기를 지나 좁은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2층이다. 한가해지면 1층에서는 주로 음식 준비를 하고 2층에서 손님을 맞는 구조다.

    식당이 한창 바쁜 점심나절은 지나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허기가 가셨고 종업원은 배가 부른 맹수처럼 느긋이 몸을 움직였다.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옆자리에는 중년 여성 여섯이 앉아 냄비를 거의 다 비운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래 이 시간쯤이면 낮술이 과한 남녀 혹은 무처럼 머리를 깎은 군인 몇몇이 가스불을 켜놓고 있곤 했다. 몇 년 사이 바뀐 풍경을 하나씩 세어 가며 익숙한 폼으로 주문을 넣었다.

    "찌개 주세요. 라면도 추가할게요."

    눈동자가 까맣고 말에 억양이 없던 종업원은 주문을 받자 곧바로 냄비를 가스버너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살짝 열어보니 두꺼운 치즈와 다진 돼지고기, 소시지, 햄, 김치가 잔뜩 깔리고 빨간 국물이 자작하게 담겨 있었다. 버너 레버를 돌리자 버너의 센 불꽃이 화를 내듯 이글거렸다.

    부대찌개는 한국 음식의 서자(庶子)다. 누구도 자진해서 한국 전통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외국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역사도 대충 누구나 안다. '부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잡한 한국 근대사의 산물이다.

    양철로 만든 냄비 뚜껑이 부글거렸다. 냄비와 뚜껑 사이로 빨간 국물이 튀어나왔다. 그쯤 종업원을 불렀다. 그녀는 한 스푼 분량의 다진 마늘을 찌개에 넣고 휘휘 저었다. 1~2분 정도 끓여 국물에 마늘이 녹아들면 맛이 좋다는 설명도 했다. 국물이 졸아든 이 집의 부대찌개는 찌개가 아니라 거의 찜과 같은 음식이 되었다. 맛은 짜고 매웠으며 기름졌다. 밥 없이는 먹을 수 없었다. 유일한 반찬인 김치는 신맛이 강해 역설적으로 찌개와 맛에 균형감을 이뤘다.

    냄비를 반쯤 비웠을 때 종업원은 희끗한 육수를 냄비 가득 붓고 라면 사리를 가져다줬다. 다시 불을 높이고 육수를 끓였으며 구불구불한 라면을 익혀 먹었다. 맛에 맑은 기운이 전혀 없었다. 탁하고 거칠었으며 강했다. 맑고 부드러우며 선명한 평양냉면의 맛과는 정반대 편에 있었다. 평양냉면의 섬세한 맛을 구분하고 정의하며 사람들은 미식가이길 자처한다. '김네집'의 부대찌개는 고상한 맛이 아니라 기차의 엔진을 돌리듯 몸에 열을 내고 심장을 펌프질하는 피의 맛이 났다. 특히 멸치육수를 써서 간간한 의정부식이 아닌 김치와 고춧가루를 잔뜩 쓴 송탄식 부대찌개만의 자주 지나치고 자주 지독한, 중독되기 쉬운 악(惡)한 맛이었다.

    그 중독의 역사는 U2기가 하늘을 날던 시절부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퇴역을 거부한 저 낡은 기체는 여전히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날았고 소시지와 김치 따위로 맛을 낸 부대찌개는 한국인의 가장 낮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나는 빨간 국물이 튄 티셔츠 자락을 물로 지우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이날 북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평양냉면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고 송탄의 하늘에는 국방색과 검정 기체 여럿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김네집: 부대찌개 9000원, 폭찹(200g) 9000원, 로스(200g) 9000원. 경기도 평택 신장동. (031)666-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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