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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저무는 태양빛으로 물든 한강… 그 사이에 그려진 근현대사의 초상

  • 황두진 건축가

    입력 : 2018.04.13 04:00

    [황두진의 한 컷 공간] 석양이 아름다운 동작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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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장소 중 하나다. 석양이 지는 이 순간의 빛은 마술과도 같다. / 황두진
    서울의 석양은 아름답다. 특히 서쪽으로 갈수록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서울의 지형 때문이다. 석양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해가 지는 방향으로 산이 없거나 낮아야 한다. 그래야 옆으로 길게 누운 햇살이 마지막 순간까지 오랫동안 세상을 비출 수 있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한반도의 지형은 서울 일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의 동쪽은 갈수록 산이 높아지지만 서쪽은 바다를 향해 비교적 낮고 넓게 열려 있다.

    이 방향으로 항공대 수색비행장,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등 크고 작은 공항이 3개나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서울의 서쪽에는 그만큼 개활지가 많다.

    반면 사대문 안의 석양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해가 빨리 지고 각도도 높다. 햇살이 낮게 옆으로 비끼며 조명처럼 얼굴을 화사하게 감싸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분지의 어둠은 기습하는 적처럼 갑자기 몰려든다.

    사진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장소의 하나인 동작대교에서 찍은 것이다. 2012년 8월 하순의 어느 저녁 이 주변으로 저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석양의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들이었다. 동작대교는 남단에 주차장까지 있어서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들고 오기에도 적당하다. 이 순간의 빛은 마술과도 같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며 어지간한 주름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모두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

    하지가 두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사진 속의 태양은 이 지점에서 서쪽인 흑석동의 서달산 자락 뒤에 숨어 있다. 하지였으면 태양이 조금 더 오른쪽, 즉 북서쪽인 한강 한복판에 있었을 것이고 석양의 호흡이 이날보다 조금 더 길었을 것이다. 때로 일상의 경험은 우주의 질서와 서로 긴밀히 맞물린다.

    한강은 그야말로 텅 비어 있다. 강 양쪽의 땅은 저리도 빼곡하고 빈틈이 없는데 평균 강폭 1㎞가 넘는 거대한 한강은 빗자루로 쓸어낸 듯 황금빛 가득한 물만 가득할 뿐이다. 간간이 운행하는 유람선은 물론, 해질 무렵에 더욱 부지런히 강 위를 오가는 한강 순시선도 이날따라 보이지 않는다.

    한강이 저렇게 비어 있을 곳이던가. 한때 서해에서 서강 사이를 들락거리던 수많은 어선과 세곡선, 그리고 정약용과 같은 시인 묵객을 태우고 상류의 양수리 너머까지 오갔던 배들의 흐름을 지금의 저 장면에서 상상하기란 어렵다. 겨울이면 중지도 근처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뚝섬에서 뱃놀이와 수영을 즐기던 풍경도 사라졌다. 한강은 바라보되 경험하지 않는 강이 되었다.

    사진 속 여의도는 근현대사의 단체 초상화 같다. 근대화 최초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삼일 빌딩이 청계천변에 세워진 것은 1971년이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인 여의도 시범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의 가운데 부분에 낮게 깔린 바로 그 건물들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의도는 본격적인 근대화의 각축장이 되었다. 63빌딩이 1985년에, 저 멀리 LG 트윈타워가 1987년에 지어졌다. 63빌딩 바로 뒤에 가려져 있는 국제금융센터의 여러 건물이 일단락된 것은 2011~2012년 사이다.

    사진에는 잘 안 나오지만 전경련회관은 2013년 완공으로, 이 사진을 찍을 무렵에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었다. 여의도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시범 아파트 단지는 이제 본격적인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태양이 지고 다시 뜨듯이 도시 또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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