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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봄, 어김없이 벚꽃은 폈고 나는 또 한 번 그때의 추억에 잠겼다

  • 이주윤·작가

    입력 : 2018.04.13 04:00

    [가자, 달달술집으로]

    나의 대학 동기였던 그 애는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나와 수강 신청을 똑같이 하는 것은 물론, 내가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에 따라오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코앞까지 바래다주었으며 불량 학생인 나와 함께 수업을 땡땡이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 애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한 적은 없지만, 나는 녀석이 나를 향해 연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에이, 아니다. 이제 와서 웬 내숭. 사실은 나도 나만 바라봐주는 그 애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군대에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고무신'이었기에 그 애에게 일부러라도 새침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봄, 어김없이 벚꽃은 폈고 나는 또 한 번 그때의 추억에 잠겼다
    이주윤
    기나긴 기다림에 지쳐가던 어느 따스한 봄날, 그 애가 나에게 말했다. "여의도에 가면 벚꽃 무지하게 많은데, 우리 그거 보러 갈래?" 여의도 벚꽃 축제를 뉴스로만 접했던 촌뜨기인 나에게 그건 참으로 설레는 제안이었다. 무지하게 많은 벚꽃을 무지무지하게 보고 싶었던 우리는 당장에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그곳의 풍경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어디에도 없었고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가로수만이 줄지어 서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그 애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이상하다, 진짜 이상하네, 하는 소리만 연신 되뇌었다. 벤치에 앉아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한마디 거드셨다. "학생들, 때를 맞춰 와야지. 벚꽃은 진즉에 다 졌어." 초록이 우거진 윤중로를 말없이 걷는 나의 뒤를 풀죽은 그 애가 따라 걸었다. 나는 그 애를 흘겨보며 팩 짜증을 냈다. "이게 뭐야. 나 집에 갈래!"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20대 내내 어긋났다. 내가 혼자일 때는 그 애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는 그 애가 혼자였다. 둘 다 애인이 없을 때에는 편하게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며 데이트 비슷한 걸 즐기기도 했지만, 숫기 없는 우리는 손 한 번 잡아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던 우리는 어느새 훌쩍 자라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나는 녀석만큼 나를 잘 아는 남자는 없으므로 그 애를 나의 남편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 내가 그 애에게 다가가려고 했을 때 그의 곁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나는 그 애를 절절하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 애가 미치도록 그립지는 않다. 그러나 매년 벚꽃 필 무렵이 되면, 꽃잎을 떨군 벚나무 아래에서 어수룩한 표정을 짓던 그 애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만일 그때 우리가 여의도에 조금만 더 빨리 찾아갔었더라면, 그래서 윤중로에 벚꽃이 만발했었더라면, 꽃잎 흩날리는 그 거리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지금과는 뭔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랑은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전부인가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은 피고 나는 또 그 애 생각이 난다.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내 생각을 하기도 할까. 이렇게 이쁜 벚꽃을 너도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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