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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혀를 직격하는 날카로운 소금간… 아양 떨지 않는 명확한 맛

  •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 2018.04.06 04:00

    [정동현의 지금은 먹고 그때는 먹었다] 초밥집 '스시 시미즈'

    스시 시미즈의 참다랑어 등살 초밥.
    스시 시미즈의 참다랑어 등살 초밥. / 정동현
    해풍이 실린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싸우듯 내지르는 사투리와 초점을 잃은 눈을 가진 생선들 틈을 걸어 다녔다. 책 몇 권을 사러 부산 남포동에 온 김에 들른 자갈치시장이었다. 이대로 영도 가는 버스를 탈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배고프냐?"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세로로 흔들었다. 동생도 어머니도 없는 흔치 않은 날이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팔뚝이 나의 네 배만 했던 아버지가 말했다.

    "초밥 먹을래?"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생선 리어카를 끌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자갈치시장 앞쪽 도로에 몇 곳 있던 초밥집 중 어느 곳이 괜찮으냐'는 질문과 답이 오갔다.

    잠시 뒤 우리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초밥 정식을 시켰다. 열 살이 갓 넘었던 나는 허기진 졸병처럼 초밥을 입에 던져 넣었다.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당신은 초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대신 장국을 몇 그릇 청해 먹을 뿐이었다.

    나는 그 시절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이제 '초밥' 대신 '스시(すし)'라는 일본어를 더 자주 쓴다. 어릴 때 그날 이후로 나는 스시라면 파계한 중처럼 자제심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스시는 비싼 음식이다. 주책없이 높아진 입맛을 맞추려면 몇만원으로도 어림없다. 재료의 비중이 특히 높은 스시의 특성상 값과 질은 정비례한다. 싸면서 맛있고 귀한 재료가 올라간 스시는 거짓말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요리가 바로 스시다.

    "가리거나 알레르기 있는 재료가 있으신가요?" 한 달에 한 번, 나를 위한 사치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 생겼다는 스시집에 간 날이었다. 머리를 파르르 깎은 젊은 요리사는 조심히 안부를 묻듯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가리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나의 답에 그는 입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아, 네"라고 답하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간판 없이 포렴(布簾)만 걸려 있는 그 집의 이름은 '맑은 물'이란 뜻의 '스시 시미즈'였다. 스시 코스를 주문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집에는 작은 방도 있지만 스시를 제대로 먹자면 '다치(바 자리)'에 앉는 것이 필수다. 그래야만 요리사가 손님의 표정과 먹는 속도를 살필 수 있다. 스시를 기다리는 몇 초 사이에 재료의 물이 밥에 배어들고 모양이 무너질 수도 있다. 다치에 앉아 요리사가 주는 스시를 바로 집어 먹는 것이 예의이고 또 정답이다.

    시작은 단새우와 고추를 넣은 달걀찜이었다. 반가운 인사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구운 바닷장어와 절인 오이가 뒤이어 나왔다. 장어의 소금 간과 상큼한 오이가 앙상블을 이뤘다. 어쩔 수 없이 사케를 시켰다. 과일 향이 돌고 감칠맛이 은은한 일본 니가타현산(産) 사케로 목을 축였다. 맛에 음영이 더욱 확실해졌다.

    간단한 요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스시가 시작됐다. 첫 점은 도미뱃살이었다. 입에 넣는 순간 높은 음정의 산미와 날카로운 소금 간이 혀를 직격했다. 아양을 떨거나 굽신거리는 맛이 아니었다. 일본 본토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적확하고 명확한 맛이었다. 밥의 양도 묵직해 식사다웠다.

    다진 쪽파를 올린 청어, 다진 단새우, 멕시코산 생참치, 홋카이도산 우니(성게알)가 이어졌다. 영국산 B&W 스피커의 명료한 음처럼 스시의 맛은 중첩되거나 희미하거나 뭉쳐져 모호한 구석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 스시를 쥐는 요리사는 거만하거나 뻗대는 모양 하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웃기만 했다.

    새우살을 다져 만든 달걀말이, 입속에서 탁 하고 풀어져 버리는 바닷장어, 일본에서 100년 된 가게의 과자로 만든 모나카를 먹으며 스시 코스가 끝이 났다. 선승(禪僧) 같던 요리사는 자부심보다는 신념이 강해보였다. 그리고 그가 만든 요리에서는 신념의 힘이 느껴졌다.

    그의 스시와 옛날 아버지와 먹었던 초밥의 맛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의 맛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떠오르는 것은 단지 젊은 아버지의 얼굴뿐이다.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스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며 살았다. 그 오해를 풀었을 때 아버지는 더 이상 푸르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어리석었다.

    #스시 시미즈: 스시 코스 점심 5만5000·7만7000·11만원, 저녁 13만5000원, 사시미 코스 16만5000원, 서울 강남구 신사동, (02)543-0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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