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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색들의 현란한 군무, 직선과 곡선의 조화… 이곳이 채석장이었다니

  • 박상현 캐나다 부처트 가든 정원사·수필가

    입력 : 2018.04.06 04:00

    [박상현의 안단테로 살아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산

    캐나다 부처트 가든. 100여 년 전 먼지와 시커먼 연기로 가득했던 시멘트 공장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캐나다 부처트 가든. 100여 년 전 먼지와 시커먼 연기로 가득했던 시멘트 공장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 박상현
    "꽝!" 한바탕 바위에 구멍을 뚫는 드릴 소리가 요란한 뒤였다. 폭약을 터트리는 굉음이 산등성을 감싸고 있던 공기를 날카롭게 찢어놓았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부서진 바위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린다. 찰나처럼 스며든 정적 위로 사방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먼지가 피어오른다. 궤도를 따라 광차(鑛車)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굴뚝에선 시커먼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 광산 재벌이 북미 대륙 서해안에 불어 닥친 개발 바람을 타고 석회석을 캐내 시멘트를 만들던 1910년 즈음 모습이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같은 장소 풍경은 이렇게 묘사된다.

    "아!" 하늘을 가린 채 서 있는 미송 숲 사이로 어슴푸레 뚫려 있는 산책로는 곧 마주칠 현실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는다. 여명처럼 돋아나는 길을 따라 내딛던 걸음은 마침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신천지 앞에서 절로 멈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천(母川)을 만난 연어 떼처럼 뛰어놀기 시작한다. 시야를 가득 메운 색들의 현란한 군무(群舞), 직선과 곡선의 환상적 조화, 비어 있는 공간과 가득 찬 생명들의 절묘한 공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단전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탄성이 날숨을 타고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곳이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부처트 가든(Butchart Garden)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쓰라는 말로 생겨난 게 틀림없다. '개척 시대의 불가피한 상처'라는 미명을 덧씌우고 다른 광산을 찾아 훌훌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처트 일가는 이곳을 등지지 않았다.

    나뒹굴던 돌들을 주워 모아 경계석으로 삼은 뒤 마차로 흙을 퍼 날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화단에 측백을 심고 벚나무를 옮겨 왔다. 앙상하게 드러난 절벽엔 아이비를 심어 낙석과 토사를 붙들게 했다. 채산성이 없어 팽개쳐뒀던 자그마한 바위산은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로 바꿔놓았다. 움푹 팬 채 물이 고여 생긴 호수엔 분수대를 만들었고 허허벌판 위엔 초록색 잔디를 키운 뒤 객석을 놓고 관현악단을 무대에 올렸다. 여름엔 불꽃놀이가, 겨울엔 크리스마스트리가 더해졌다. 증손녀인 지금의 소유주는 회전목마를 만들고 중국에서 건너온 청룡 조형물을 멋진 분수로 탈바꿈시켜 선조의 뜻을 이었다.

    이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작했던 일은 손자로, 증손녀로 대물림됐다. 그 결과 황폐했던 채석장 그리고 시멘트 공장 터가 지금은 값어치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운 '문화 아이콘'으로,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했다. 600여 직원들의 일터이자 세계 각지에서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톱10' 중 넷째에 올려놓았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던 과거가 아름답게 치유되고 청산(淸算)된 훌륭한 본보기로 꼽힐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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