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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비보이·스노보더·교수… 다음 도전이 뭘지 설레요"

배우이자 15년 경력의 스노보드 선수, 스노보드 국제공인심판인 박재민.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달력 있는 말투에 편안한 설명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남자의 직업을 한 단어로 꼽긴 쉽지 않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체육인이자 방송인, 비보이, VJ, 번역가, 교수 등 "다음엔 무얼 도전할까에 설렌다"는 그다.

    입력 : 2018.03.09 04:00

    [배우 박재민]

    평창올림픽 해설로 스타덤

    하루 3시간 자며 평창 준비
    "결말 좋은데 스토리 없네요" 귀에 쏙 들어오는 해설로 인기
    예능·드라마서도 못 해본 실시간 검색 1위 올라

    11년차 방송인
    행사 MC 뛰고 학기 중엔 강의
    겨울엔 심판하며 삽질도 내 직업은 '배우는 사람'

    방송 하차 후 절에서 살기도
    6개월간 매일 울면서 지내 '정답은 내 안에…' 깨달음 얻고
    삶에 감사하며 소득 10% 기부

    3월부터는 전망 밝지 않지만…
    올림픽 올인하기 위해 라디오 DJ에서도 하차
    뭐 어때요, 그래도 즐거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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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트를 빼입은 박재민이 아끼는 스노보드를 끼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삶을 채우고 싶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life.artist’로 정했다는 그는 이날도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기자
    "결말은 좋았는데 스토리가 없네요." "웰메이드 드라마의 피니시가 좋지 않았어요."….

    한 편의 드라마같이 보는 이를 울고 웃게 하는 스포츠 경기. 그걸 드라마 보듯 해설해 스타로 떠오른 이가 있다. 배우이자 15년 경력의 스노보드 선수, 스노보드 국제공인심판(3급)인 박재민(35)이다. 지난 2월 열린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경기 K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달력 있는 말투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편안한 설명으로 눈길을 끌었다. 포털사이트 이틀 연속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나 예능 어디 나와서도 검색어 1위는 못 해봤는데 그걸 스포츠에서 해보네요." 큰 눈을 끔뻑이며 머쓱하게 웃는 박재민. 이 남자의 직업을 한 단어로 꼽긴 쉽지 않다.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체육인이자 데뷔 11년 차 방송인, 연기자, 비보이, VJ, 번역가, 교수 등 "다음엔 무얼 도전할까에 설렌다"는 그다. 평창 동계패럴림픽 해설을 준비하기 위해 평창에서 지내다 잠시 짬을 냈다는 그를 최근 만났다.

    ―단번에 스타로 떠올랐어요.

    "처음엔 전혀 실감을 못 했어요. 일주일 동안 세 시간밖에 못 자면서 해설 준비를 했었고, 휴대전화 볼 시간도 거의 없었거든요. 폐막 일주일 전쯤부터인가? 관중이 알아봐 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를 왜?'라고 했다가 좋은 반응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죠."

    ―부모님 반응은 어떻던가요?

    "부모님이야 이슈 농도와 상관없이 제가 화면에 나오기만 해도 좋아하셨죠. 그래도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처음 하셨어요.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시더라고요. 부모님 두 분 다 교수인데 당신들 보시기에 제가 얼마나 불안했었겠어요. 아니, 직업에 대한 불안감은 제가 가장 크게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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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이상호 선수 경기를 보며 흥분해서 중계하는 박재민(오른쪽)./kbs 화면 캡처

    ―어떤 불안감요?

    "연예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몸값도 그리 높은 거 아니잖아요. 수입도 뜨문뜨문 들어오니까 직업 안정성이 크지 않죠. 부족한 건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걸로 상쇄하려 해요. 행사 MC도 뛰고, 학기 중 강의도 하고 겨울엔 심판도 보고…. 저 지금도 아시안컵 준비 때문에 한 시간 반 동안 '삽질'하다 왔어요. 올림픽 같은 큰 경기야 진행요원이 있지만 보통은 저희가 눈 파고 전선 매립하고 의자 놓고 일일이 다 하거든요."

    ―얼굴이 꽤 알려졌는데 직접 일을 찾아다니나 봐요.

    "어떤 분들은 너 이런 거까지 하느냐, 자존심 안 상하느냐고 하는데 제가 찾아다니는 게 정말 좋아요.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면도 있지만 사람이 좋아서 배우게 되면 창피한 게 없잖아요. 미술을 배운다, 노래를 배운다 같이 하고픈 걸 파고드는 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죠? 전 그냥 배우는 사람이에요. 누가 저보고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요즘엔 전 그냥 박재민이라고 해요. 평생 이렇게 배울 거 같아요."

    ―비보이로 국내 각종 대회 우승도 했더군요.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된 계기였죠.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거의 왕따에 가까웠어요. 여섯 살까지 미국에 살다 한국에 왔는데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우리말이 능숙하지 않았어요. 기초 학력은 떨어지지, 미국식 오버 리액션 때문인지 친구도 없지. 괴짜였던 거죠. 춤을 추면서 돌파구를 얻었어요. 쳐다도 안 보던 아이들이 '너 춤 좀 추더라'면서 말을 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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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보이 공연 중인 박재민./박재민
    ―지금까지 하고자 했던 건 거의 이룬 거 같아요.

    "저는 인생 계획을 잡지 말자는 게 모토예요. 물론 큰 그림은 있죠. 바른 가정을 꾸려서 아이들 낳고 오순도순 잘 사는 것. 하지만 계획이란 틀에 갇히면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다른 길을 놓치는 것 같아요. 전 제 손에 잡힌 이상 도전하는 성격이고, 저는 저 자신을 이길 때 너무 좋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해서 어느 정도 위치엔 오르자, 한 획을 긋자는 사명감은 있어요."

    ―그러다 놓친 길에 대한 기회비용이 클 수도 있는데요.

    "다른 사람보다 특출한 게 없으니까 대신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무얼 하겠다 마음먹는 건 저와의 약속이잖아요. 전 약속은 반드시 지키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700명 중 400등 정도였는데 서울대 체육교육과 목표 삼은 뒤 넉 달 만에 수능 120점을 올렸어요. 하루 18시간씩 공부했거든요. 유학 포기하고 연예계로 들어왔으니 대신 석사학위(서울대 행정대학원)를 땄고, 부상 때문에 비보이를 더 이상 못하게 되니 비보이 사회자로 경력을 쌓는 식인 거죠."

    ―KBS '출발 드림팀'에서 2인자 캐릭터로 대중에게 알려졌죠.

    "8~9년 전인데 여전히 저를 '드림팀 박재민'이라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으셔요. 처음엔 그 캐릭터를 못 받아들였어요. 굉장히 오버스럽게 행동했던 때고 스스로도 겸손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제가 봐도 비호감이었죠. 하하."

    ―2012년부터는 절에서 살았어요.

    "그 당시 굉장한 오해가 생겨 제대로 해명도 못 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어요. 일순간에 무직이 된 거예요. 처음 6개월간은 매일 울었어요. 그러다 제 역량에 대해 많이 고민해봤죠. 그 전까지는 도전하면 된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갖고 살았는데 내실이 부족하단 걸 깨닫게 됐어요. 내가 가진 것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더라고요. 땅바닥 넘어졌을 때 손을 짚고 일어나는 법을 몰랐던 거죠. 항상 서 있었으니까. 다 내려놓고 밑바닥부터 채워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절 이름이 성불암이더군요.

    "정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엔 희망을 갖고 절을 찾았거든요. 하지만 장소란 건 하나의 도피처였지 해답을 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생각을 바꿔야 제가 바뀌고, 주변 모든 게 바뀌는 거였어요. 2013년 '스플래시'라는 다이빙 프로그램으로 복귀하면서 '나는 정말 방송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느끼게 됐죠."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3회 만에 폐지됐어요.

    "그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작은 것도 고마워하게 됐다는 거죠. 그때부터 생긴 입버릇인데 '뭐 어때'를 달고 살게 됐어요.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그럼 뭐 어때, 한 번이라도 TV에 나왔고 50일 동안 매일 연습한 덕분에 다이빙 기술 배우게 됐고, 우울증 나았고, 대중 앞에 섰고…. 들인 시간만큼 얻은 게 있는 거죠."

    ―그 이후 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얼굴이 보이더군요.

    "2014년에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지역인 러시아 오미야콘을 찾는 KBS 1인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 있어요. 그때 시청률이 10%가 넘은 거예요. 그전까지 제 머릿속엔 인기, 출연료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도전의 아름다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는 방송의 힘을 그때 배운 거죠."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언가요?

    "오미야콘에서 만난 빠빠(아버지)에게 물었어요. '이런 곳에서 왜 사느냐'고 했더니 '왜 떠나야 해? 내 앞의 풀과 나무, 모래가 다 나를 위해 맞춰져 있는데'라는 거예요.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본 거죠. 누구에겐 가혹해 보여도 그들에겐 그게 삶이자 행복일 수 있는 거예요. 생각하기 나름인 거죠. 돌이켜 보니 제가 스물한 살 때 농구하다 다쳐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할 뻔한 위기가 있었거든요. 신경을 일부 잘라내 지금도 아주 편한 상태는 아니에요. 그렇게 어려운 순간도 있었는데 어느새 그걸 잊고 삶의 소중함을 사소하게 받아들였더라고요. 이후에 삶에 감사하자는 뜻으로 소득의 10%는 기부하고 있어요."

    ―앞으로 뭘 할 예정인가요?

    "3월부터는 전망이 밝지 않아요. 아니, 참담하죠. 하하. 소속사도 1월에 계약 만료됐고, 나름 올림픽에 올인하느라 라디오 DJ에서도 하차했거든요. 이제 망망대해로 떠나갈 준비를 하는 중이에요. 그래도 즐거워요. 이 또한 하나의 도전이니 도전해 봐야지요. 뭐 어때요."

    박재민 프로필

    1983 미국 인디애나주 출생

    2010 서울대 체육교육과 졸업

    2008 엠넷 '비보이 핫 배틀' 진행 데뷔

    2009 전국 스노보드 기술선수권 대회 준우승

    2017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졸업

    2011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예술학부 전임교수

    2016 사랑나눔봉사단 홍보대사

    2017 한류힙합문화대상 힙합문화공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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