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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훤칠한 빗줄기가 건네는 인생의 침묵과 소음

  •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입력 : 2018.03.09 04:00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아타케 대교의 소나기'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눈이 비로 바뀌는 날은 겨울이 내복을 벗는 봄날이다. 베트남의 시골길 옆 공동묘지 위를 날던 제비를 우연히 한국의 호수공원 수양 벚나무 위에서 봤을 때의 기쁨은 새뜻하고 날래다. 그 제비의 그 머루알 같은 눈과 우연히 어느 처마 아래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가만히 기쁘다. 이럴 때 언어는 쓸모가 없다. 그저 바라봄이 구순해지고 낙락해져서 고개를 갸웃대는 제비에게 나도 고개를 갸웃거려 화답할밖에. 이럴 때 소나기는 제비와 나를 잠시 오래 머물러 마주하게 하는 매파와도 같다.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의 에도(江戶) 백경(百景) 중 하나인 '아타케 대교(大橋)의 소나기'는 공중을 긋는 빗줄기의 훤칠함을 그대로 가슴에 들이게 한다. 갑작스레 소나기를 만난 이들의 다급한 발걸음은 적막한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강의 거룻배 뗏목을 노 젓는 사공의 몸짓마저 그윽하다.

    그림에는 없지만, 저 시원시원한 빗줄기는 보는 이에게 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 특별한 것도 없는 집을 종요롭게 떠올려 준다. 어둑한 배경을 줄기차게 내딛는 빗줄기는 이상한 안온함으로 마음을 습습하고 낙락하게 한다.

    안도 히로시게의 작품 ‘아타케 대교의 소나기’.
    안도 히로시게의 작품 ‘아타케 대교의 소나기’.
    훤칠한 빗줄기는 마치 허공에 마디가 없는 대나무를 치고 바람이 불면 여름 건란(建蘭) 같은 난초잎을 친다. 문득 엊그제 세상을 뜬 갑장의 시인이 쓴 구름의 시(詩)가 떠오르면서 먼 조카의 갓난쟁이 딸애 울음소리가 겹쳐진다. 이처럼 비 오는 날은 침묵과 소음이 한 어깨를 겯고 온다. 갑작스레 마주친 소낙비에 일상의 소소한 잡념과 번민을 잠시 물린다. 비 오는 밖을 오래 보는 눈길이 있다면 그것은 시의 근처다.

    일본 채색 판화 우키요에(浮世繪)를 주도한 히로시게는 이런 일상의 풍정(風情)을 잘 얼러내는 화가다. 풍경과 내면이 마치 한 우산을 쓴 연인처럼 다가오게 그린다. 명소를 주로 그렸지만 인상적인 정취가 아니면 제아무리 절경이라도 그리지 않았다. 그림은 참 묘하다. 가장 빨리 스쳐 지나가고 스러지고 사라진 것들을 이렇게 사로잡아 주고 있으니, 영원의 저장소 같다고 할까. 그림 속 허공의 빗줄기는 현실에선 단역으로 스치지만 그림에 들면 영원한 현역으로 사람들 눈길에 재장구친다.

    수직에 가까운 사선의 빗줄기와 수평을 이룬 강물과 다소곳한 다리의 곡선이 묘하게 어울려 단순한 구도임에도 지루함이 없다. 다리를 떠받치는 나무 교각의 듬쑥한 각선미도 쏠쏠하다. 콘크리트 교각과는 다르게 묵묵히 강물을 떠받치는 나무 교각은 왠지 인생의 여줄가리 같다. 강물은 그 다리 사이를 흐른다.

    임종 당시 히로시게는 '동로(東路)에 붓을 놓고 나그네의 하늘, 서방의 명소를 바라보네'라는 와카(和歌·일본 전통 노래)를 남겼다. 저세상으로 간 이후 그는 서방정토의 새 풍정을 그리려고 붓을 다시 들었을까. 생사를 넘어 화필에 담고 싶은 풍경이 있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보여 새뜻한 정감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은 다음 세상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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