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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한 명만 낳으라니까" "죽어도 안 낳는다니까"… 황소고집도 父傳女傳

  • 이주윤·작가

    입력 : 2018.03.09 04:00

    [가자, 달달술집으로]

    이주윤·작가
    이주윤·작가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인 우리 언니는 어렸을 적부터 엄마와 자주 다퉜다. 여느 딸내미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언제나 제멋대로 구는 언니 때문에 엄마의 속은 편할 날이 없었다. "내가 정말이지 징그러워 죽겠어. 생긴 것도 제 아빠랑 똑같은데 똥고집 부리는 것도 빼다 박았잖아, 아주. 나중에 결혼해서 꼭 너 같은 애 한번 낳아 봐. 그래야 엄마가 너 땜에 얼마나 맘고생했는지를 알지!" 저주를 한바탕 퍼부은 엄마가 방문을 부서져라 닫고 나가면, 언니는 속상해하기는커녕 도리어 깐죽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애 안 낳을 건데? 뭣 하러 나 닮은 애 낳아서 사서 고생하냐? 내 말이 틀려?" 언니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듯,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형부와 둘이서만 희희낙락 살고 있다.

    시집만 보내 놓으면 끝일 줄 알았더니만, 이제는 차원이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언니 덕에 아빠 역시 끌탕 중이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너도나도 휴대폰을 들이밀며 손주 사진을 보여주기에 바쁜데 당신만 자랑할 손주가 없어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면 울화가 치밀어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하니, 손주를 향한 내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을 더 말해 무엇하랴. 아빠는 언니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주 딱 한 명만 낳아달라며 애원하고, 사정하고, 벌컥 화를 냈다가도 다시 애걸복걸하기를 반복한다. 심지어는 순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지조가 굳어도 보통 굳은 게 아닌 우리 언니는 아빠의 으름장에도 눈 하나 깜짝하는 법이 없다.

    가자 달달술집으로 일러스트
    부녀는 각기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처럼 서로를 별종 취급한다. 아빠는 아이를 낳아야지만 인생의 참뜻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언니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아실현이라 믿고 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되받아친다. 아무리 얘기하고 또 얘기해 보아도 양측의 의견 차이는 좁혀질 줄 모른다. "누구 말이 맞는지 너도 얘기를 좀 해 봐!" 나에게 따져 물으신다면, 물론 이런 문제에 정답 따위가 있을 리 없겠지만, 게다가 아빠가 제일 예뻐하는 막내딸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는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언니의 편에 스리슬쩍 서고 싶다. 아버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언니를 낳았듯, 언니 역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빠, 미안!

    그러나 내 아버지 사전에 포기란 없다. 지난 설날, 명절을 맞이하여 오래간만에 집에 내려온 언니 부부를 앉혀두고서 아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서두를 열었다. "너희들 아버지가 하는 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 아빠가 입을 열자마자 언니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듣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뻔할 뻔 자이기 때문이리라. 낳아라, 싫다, 낳아라, 안 낳는다, 한 명만 낳으라니까! 한 명이고 나발이고 죽어도 안 낳는다니까! 어느 한쪽도 제 고집을 꺾지 않고 팽팽한 입씨름을 벌인다. 지칠 줄 모르고 목청을 높여대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부녀를 누가 말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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