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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공습 대피복에 중절모… 戰時총리의 'V'패션

    입력 : 2018.03.09 04:00

    [처칠 스타일]
    시가·지팡이·시곗줄… '다키스트 아워'에 빛났던 처칠

    '다키스트 아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맞선 영국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처칠로 시작해 처칠로 끝나는 이 작품은 5일(한국 시각)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분장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스크린 속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의 모습은 그만큼 생생했다. 특수분장팀은 호리호리한 배우 게리 올드먼을 감쪽같이 비대한 처칠로 변신시켰다. 올드먼은 정교한 연기로 처칠의 입매까지 되살려냈다.

    그렇다 한들 의상이 없었다면 살아 돌아온 듯한 처칠을 볼 수 있었을까. 다키스트 아워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의상상 후보에도 올랐다는 사실은 이 처칠 재림(再臨) 프로젝트의 완성이 의상이었음을 보여준다.

    1 한 번에 입고 방공호로 뛰어갈 수 있도록 상·하의를 이어 만든 ‘사이렌 슈트’ 차림의 처칠. 시가를 넣기에도 거뜬한 주머니를 가슴에 달고 등에는 움직이기 편하도록 주름을 넣었다. 2 런던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를 나서는 처칠. 지금까지 기억되는 그의 특별한 이미지는 당시로선 특별할 것이 없었던 옷과 액세서리로 만들어졌다.
    1 한 번에 입고 방공호로 뛰어갈 수 있도록 상·하의를 이어 만든 ‘사이렌 슈트’ 차림의 처칠. 시가를 넣기에도 거뜬한 주머니를 가슴에 달고 등에는 움직이기 편하도록 주름을 넣었다. 2 런던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를 나서는 처칠. 지금까지 기억되는 그의 특별한 이미지는 당시로선 특별할 것이 없었던 옷과 액세서리로 만들어졌다. / Getty Images

    영화는 처칠의 전임자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사임을 둘러싸고 의회에서 격론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란한 와중에 누군가 속삭인다. "윈스턴은 어디 갔어?" 처칠의 빈자리엔 중절모가 하나 놓여 있을 뿐이다. 처칠은 보통의 물건도 누군가의 분신(分身)이 될 수 있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초크 스트라이프(분필로 그은 듯한 줄무늬) 슈트, 흰 물방울무늬의 감색 나비넥타이, 시가, 지팡이, 조끼에 걸친 시곗줄…. 처칠 하면 떠오르는 물건들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퍼즐 조각이 모여 그림이 되듯, 이런 물건들이 모일 때 처칠이라는 상(像)이 비로소 또렷하게 맺힌다. 처칠의 패션은 화려해서가 아니라 한결같아서 돋보인다.

    영국군이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리자 체임벌린의 협상 노선을 지지했던 영국인들은 점차 독일과의 일전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도자가 늘 거기 있다는 믿음만큼 절실한 게 있었을까. 중절모를 쓰고 자신만만하게 V자를 그리는 남자의 모습이 신문에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각오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처칠은 가장 '영국적인' 것들을 걸쳤다는 점에서 007과 킹스맨의 먼 선배이기도 하다. 슈트는 대부분 헨리 풀(Henry Poole)에서 맞춰 입었다. 영국 신사들의 양복점 거리 '새빌 로'에서도 터줏대감 격인 집으로, 프랑스의 드골 장군부터 왕세자 시절의 쇼와 일왕까지 고객 명단에 올라 있다. 지팡이는 토머스 브리그(Thomas Brigg)를 애용했다. 뒷날 인수합병으로 스웨인 오드니 브리그(Swaine Adeney Brigg)가 돼서 제임스 본드의 007 가방을 만든 곳이다. 처칠은 1908년 결혼식에서 록 앤드 코(Lock & Co)의 모자를 썼고 1911년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중절모를 이곳에 주문했다. 영화 '킹스맨'에서 해리 하트(콜린 퍼스) 요원이 늘 야구모자를 쓰는 악당 발렌타인(새뮤얼 잭슨)에게 추천했던 모자 가게다.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로 분장한 배우 게리 올드먼이 지하철을 타고 있는 장면(왼쪽). 조지 클레버리의 ‘처칠’ 구두. 발등의 끈은 실제처럼 모양을 낸 장식이다.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로 분장한 배우 게리 올드먼이 지하철을 타고 있는 장면(왼쪽). 조지 클레버리의 ‘처칠’ 구두. 발등의 끈은 실제처럼 모양을 낸 장식이다. / UPI코리아·조지 클레버리

    영화는 1940년 5월 됭케르크 철수 작전을 앞둔 처칠의 고뇌에 집중한다. 그 뒤의 전개까지 다뤘다면 패션 실험가였던 처칠의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됭케르크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국군을 쓸어버리지 않았던 히틀러는 이내 공군을 동원해 영국 본토를 폭격했다. 처칠은 공습에 대비해 상·하의가 점프 슈트처럼 연결된 옷을 직접 고안해 입었다.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지내다가도 한 번에 꿰어 입고 방공호로 뛰어갈 수 있게 한 겉옷이다. 이름마저 사이렌(siren) 슈트다. 제작은 턴불 앤드 애서(Turnbull & Asser)가 맡았다. "위대한 정치가인 그를 우리는 '사이즈 46'으로 기억합니다"라고 할 만큼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처칠의 단골 셔츠 가게였다. 처칠은 이 옷을 입고 미국을 방문했고 아이젠하워나 몽고메리 같은 연합군 장군들을 격려했다. 처칠을 만난 사람들이 '공습 대피복'을 해 입은 영국 총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싸우다 진 나라는 다시 일어서지만 순순히 굴복한 나라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고 했던 처칠의 투지가 한 벌의 옷에서도 드러난다.

    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에 처칠은 구두 가게 조지 클레버리(George Cleverley)를 찾아가 '끈 없는 브로그'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브로그(brogue)는 구두 겉에 작은 구멍을 내서 장식하는 기법으로 보통 끈 묶는 구두에 들어간다. 따라서 끈 없는 브로그란 상식대로라면 형용모순이다. 난색을 표했을 법도 한데 조지 클레버리는 모양만 낸 가짜 끈으로 발등을 장식하고 발 옆에 신축성 소재를 대서 신고 벗기 편한 구두를 정말로 만들어줬다. 이렇게 탄생한 '처칠' 모델은 지금도 이 브랜드의 베스트셀러다. 처칠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끝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패션에서도 그는 남들이 만든 규칙에 몸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새로운 길을 찾는 개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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