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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나를 기다린다, 너는 '그린메이트'

식물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에서 '동물'을 '식물'로 치환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도 이제 낯설지 않다.
어느새 봄이다. 나만의 공간과 일상에 생기를 더해줄 초록 식물과 사귀기 좋은 시기. '그린메이트(greenmate)'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

    입력 : 2018.03.09 04:00 | 수정 : 2018.03.09 09:47

    [그린메이트] [Cover story] 반려식물과 사는 사람들… "나 혼자인 집에 초록 생기 가득, 위안을 얻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없지. 그리고 날 닮았어. 뿌리가 없거든."

    영화 '레옹'(1994)에서 주인공 레옹은 화분에 기르던 식물의 이파리를 닦으며 이렇게 내뱉는다. 화분은 냉혈한 킬러 레옹의 유일한 친구다. 자신과 똑 닮은 친구이자 위로의 대상이다. 털모자, 동그란 선글라스, 긴 코트만큼이나 레옹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화분. 늘 그가 품에 안고 다니던 그 식물은 아글라오네마(Aglaonema)다.

    영화 ‘레옹’의 주인공 레옹처럼 식물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삭막한 세상에 위로와 교감의 대상이 되어주는 식물 친구, ‘그린메이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영화 ‘레옹’의 주인공 레옹처럼 식물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삭막한 세상에 위로와 교감의 대상이 되어주는 식물 친구, ‘그린메이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식물을 키워보니 화분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레옹의 맘을 알게 됐어요." IT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김정현(43)씨는 지난해부터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비교적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을 시작으로 틸란드시아 같은 공기정화식물 등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식물이 '식구'가 됐다.

    "혼자 살다 보니 늘 집이 삭막했는데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생기가 생겼어요. 나를 기다리는 존재, 내가 돌봐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게 삶의 활력이 돼요."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관심을 가지는 만큼 성장하고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존재란다.

    영화 ‘레옹’ 속 식물을 가꾸는 레옹의 모습.
    영화 ‘레옹’ 속 식물을 가꾸는 레옹의 모습.

    식물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에서 '동물'을 '식물'로 치환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도 이제 낯설지 않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0월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식물'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2.1%는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다. 식물과 교감하고 위로받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고독감 해소용뿐만 아니다. 사시사철 일상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 때문에 공기 정화용으로 집과 사무실에 식물을 들이는 이들도 늘었다. 어느새 봄이다. 나만의 공간과 일상에 생기를 더해줄 초록 식물과 사귀기 좋은 시기. '그린메이트(greenmate·초록 식물을 뜻하는 'green'+ 친구를 의미하는 'mate')'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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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메이트는 집 안의 분위기를 바꾼다. 식물로 꾸민 집 안 곳곳에선 싱그러운 기운이 넘친다. /집꾸미기

    나 혼자 산다? 식물과 함께 산다!

    대구에 사는 중학교 교사 하민경(31)씨는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거실에 새 화분을 들였다. 이전엔 다육이 같은 작은 화분을 키우고 있었지만 일부러 큰 화분을 골랐다. 이사 전 집 보러 왔을 때 삭막해 보이던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서였다. 새집증후군과 공기정화에 탁월하다는 ‘극락조’ ‘아레카야자’가 새 ‘그린메이트’로 낙점됐다. 거실을 가득 채운 식물들 덕에 요즘 하씨의 퇴근길은 외롭지 않다. “혼자 집에 들어가도 언제나 아늑한 기분이 들어요. 식물이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서울 대방동에 사는 직장인 정선우(37)씨는 키우는 선인장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선인장의 ‘선’을 돌림자로 ‘선미’ ‘선영’ ‘선덕’이라고 지었다. 자신과도 돌림자가 같아 이름을 부를 때면 형제를 부르는 것 같단다. “선인장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말도 걸어요. 그러다 보면 혼자라는 기분이 덜 들어요.”

    싱그러운 식물과 함께 사는 집은 나 혼자 살아도 생기가 넘친다. 작은 화분 하나라도 살아 있는 식물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1인 가구 500만 시대,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식물을 친구, 가족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린메이트와 사는 사람들은 식물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려동물에 비해 돌보는 시간과 비용은 적게 들지만 그린메이트가 주는 만족감은 크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에겐 ‘돌봄’이라는 본능이 있는데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살아가는 의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며 “천천히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명상과도 같아 정서적으로도 좋다 ”고 했다.

    사무실 곳곳에 수경식물을 배치해 업무 환경을 바꾼 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의 그린오피스(왼쪽 사진). 식물로 공기를 정화하는 ‘바이오월’을 설치한 사무실. /유한킴벌리·농촌진흥청
    사무실 곳곳에 수경식물을 배치해 업무 환경을 바꾼 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의 그린오피스(왼쪽 사진). 식물로 공기를 정화하는 ‘바이오월’을 설치한 사무실. /유한킴벌리·농촌진흥청

    직장인 스트레스 날리는 초록 식물

    직장인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무실에도 그린메이트가 등장했다. “업무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식물을 가만히 바라봐요. 멍하니 초록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낍니다.” 변호사 정희원(32)씨 사무실엔 스투키, 돈나무 등 식물이 가득하다. 선물받은 화분이 늘면서 책상 위, 책장, 창가 자리에 식물이 자리 잡았다. 시선 가는 곳에 식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가끔은 동기부여도 된다. “묵묵히 새순을 틔우는 식물을 볼 때마다 식물도 저렇게 힘을 내고 있는데 나도 힘을 내야지 하고 다시 일에 집중해요.”

    디자인회사에 다니는 서윤재(29)씨 사무실 책상에는 이오난사, 틸란드시아 등 공기정화식물이 가득하다. “종일 사무실에 있다 보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플 때가 많은데, 공기를 정화하는 식물이 곁에 있으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땐 산책하는 기분으로 식물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회사 차원에서 사무실에 식물을 들여놓은 곳도 늘고 있다. 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의 사무실엔 수경식물이 있다. 2011년 ‘그린오피스’를 도입하면서 칸막이 대신 사무실 곳곳에 수경식물을 배치했다. 유한킴벌리 배철용 부장은 “초록색 식물이 사무실의 딱딱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고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사무공간에 부피 대비 2%의 식물을 두면 실내 공기 중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미세 먼지가 크게 감소했다. 상쾌한 업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관음죽, 팔손이나무, 아글라오네마 등 공기정화에 좋은 식물을 2% 배치한 ‘그린 힐링 오피스’도 공공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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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킨답서스(왼쪽사진)는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고 관리가 쉬워 초보들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다. 동글동글 공 모양의 담수식물 마리모,귀여운 생김새로 최근 인기 반려식물로 떠올랐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미세 먼지 걱정에 공기정화식물이 대세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그린메이트로 주목받는 건 공기정화식물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상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의 공포 때문이다. 지난 2일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공기정화식물 판매량은 2016년 49%, 2017년 50% 증가했다. 지난 주말 찾은 서울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도 아레카야자, 행운목, 보스턴고사리, 틸란드시아 등 공기정화식물이 매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플랜트디자인스튜디오 ‘슬로우파마씨’(인스타그램@slow_phamacy) 이구름 대표는 “최근 몇 년 새 식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며 “식물을 키우려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미세 먼지의 여파인지 대부분 공기정화식물을 찾는다”고 했다.

    식물의 공기정화 능력은 1989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견했다. 밀폐된 우주선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효과 좋은 식물을 찾아낸 것이다. 대표적인 식물로 아레카야자와 관음죽, 대나무야자, 보스턴고사리, 스파티필룸 등이 있다.

    미세 먼지 제거에 탁월한 식물도 있다. 아이비, 스킨답서스, 율마, 틸란드시아, 라벤더, 로즈메리 등이다. 미세 먼지는 식물 잎에 윤택이 나게 하는 왁스 층에 달라붙거나 잎 뒷면의 기공 속으로 흡수돼 사라진다. 식물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이 양이온인 미세 먼지를 없애는 역할도 한다.

    공기정화도 중요하지만 키우기 쉬우냐도 중요하다. 식물 인테리어 전문 쇼핑몰 ‘세남자바스켓’(3mans.co.kr) 김형준 부장은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마리모 등이 초보들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고 했다.

    초보들도 키우기 쉽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난 틸란드시아
    초보들도 키우기 쉽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난 틸란드시아. 앙증맞은 모양이 눈길 끈다./세남자바스켓

    나만의 그린메이트와 친해지는 방법

    식물을 키우는 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나만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할 친구인 만큼 나와 잘 맞는 식물을 찾아야 한다. 슬로우파마씨 이구름 대표는 먼저 하나의 식물을 선택해 공을 들여 키워보라고 조언했다.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생각하고 대량 구매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식물과 함께 사는 게 익숙하지 않으면 식물들을 죽이게 되고 다시 키우지 못하는 계기가 돼죠.” 스킨답서스, 아비스, 더피고사리 등 강하고 키우기 무난한 식물을 하나만 골라 먼저 키워보는 게 좋다.

    식물을 키울 때 중요한 세 가지는 물과 햇빛 그리고 환기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건 물 주기 요령. 입문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등의 매뉴얼을 따르게 되는데 식물의 상태에 따라 물을 주는 주기를 맞춰야 한다. 손가락으로 1㎝ 정도 흙을 눌러봤을 때 말라 있다면 그때 물을 주면 된다. 화분 아래 구멍으로 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흠뻑 주는 게 포인트. 초보는 장식용 마사토나 색돌을 빼고 흙 상태를 관찰하는 게 좋고 물은 세 번 정도 나눠서 주면 양을 조절하기 편하다. 야자류나 관음죽 같은 관엽식물은 열대 우림의 습한 기후를 좋아해 물을 공중에 분사해 잎이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해준다.

    공기 정화 식물

    햇빛은 식물의 광합성을 위해 필요한데 직사광선을 피하는 것이 좋고, 물을 준 뒤에 햇볕을 쬐면 식물이 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일수록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환기를 자주 해준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현대미술작가 전영진(36)씨의 베란다는 홍콩야자, 동백, 장미허브, 율마, 알로카시아 등 식물로 빼곡하다. 8년째 그린메이트와 살고 있는 전씨도 그동안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식물과 친해졌다. “직접 키워봐야 살아 있는 식물의 특징을 알 수 있어요. 분갈이도 하고 가지를 치고 모양을 잡아주면 그대로 자라는 식물을 보면 신기하기만 해요.” 그린메이트가 생기면서 전씨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길을 걷다가도 가로수나 화단이나 식물이 있는 곳 어디든 눈길이 간다. 작은 화분 하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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