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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셀 수 없이 두레박질했던 초등학생 때 기억… 봄의 길목, 아버님이 더 그립습니다

  • 박상현 캐나다 부처트 가든 정원사·수필가

    입력 : 2018.02.09 04:00

    [박상현의 안단테로 살아보니]

    [박상현의 안단테로 살아보니]

    캐나다에서 우물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두레박까지 버젓이 달린 채 말이다. 내 일터인 부처트 가든 한쪽, 장미원에 서 있는 장식용 우물이다. 아련한 장미꽃 향을 맡으며 이 우물과 두레박을 바라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다시금 팔다리가 저려오는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봄 소풍날이었다. 새순에 물이 오른 찔레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키 작은 해당화가 꽃망울을 머금은 채 지천으로 널려 있는 바닷가 모래언덕. 나는 제법 많은 사람 앞에 서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기억의 편린에선 웬일인지 눈물 바람을 하며 훌쩍거리는 내 모습이 애절하고, 아버지의 얼굴은 소여물 삶는 장작불처럼 붉으락푸르락하다.

    [박상현의 안단테로 살아보니]
    부처트 가든에서 활짝 핀 장미꽃이 가득한 정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놓여 있는 장식용 우물. / 박상현

    집에 돌아온 뒤 어둑해지도록 마당의 우물물을 퍼냈던 장면도 그 속에 끼어 있다. 제법 깊이 고여 있던 우물물을 퍼내려고 셀 수도 없이 두레박질을 했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보물 찾기를 하며 즐거워했을 법도 한데, 그 기억은 흐리고 멀어 좀처럼 형체가 잡히지 않는다. 내 기억은 딱 여기까지다.

    두어 해 전 아버지께서 남겨 두시고 간 일기장을 우연히 만났다. 깨어진 화분 조각처럼 두서없이 널려 있던 그날의 기억들, 지나온 시간이 더뎅이처럼 엉겨 붙어 실체를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온전하게 당신의 육필(肉筆) 속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색 바랜 일기장에는 그날이 1977년 4월 29일, 금요일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시골 학교 소풍은 가족 나들이와 다름없었다. 농사를 지으며 부두에서 하역을 부업으로 하셨던 당신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선창에 나가 일을 하시고 10시가 지나서야 소풍 장소에 도착하셨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술도 한 잔 마셨는데, 오후 놀이에 학생과 자모가 짝을 지어 나가서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 그렇다. 플라스틱 바가지나 소쿠리, 크레용 따위 상품을 받을 수 있었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처음엔 작은아들과 함께 나가서 노래하자고 했는데 고개만 숙이고 꺼리기에 큰아들을 불러내서 노래를 하자고 했으나 역시 고개를 숙이고 (부를) 노래가 없다고 하기에…." 그랬다. 동생도 나도 아버지와 노래하길 거부했으니 단단히 화가 나신 것이었다. "내가 지나친 욕심쟁이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내 자식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못하여 기분은 나쁘다."

    여전히 살아 있는 글 속에서 당신은 화를 풀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우물물을 다 퍼내라는 벌을 주었다고 했다. 자신의 화풀이를 맑은 샘물을 얻는 것으로 대신했으니, 그리 나쁜 해법은 아니었다.

    그날, 그 바닷가 모래밭에서 우리 부자 사이에 벌어진 일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찔레와 해당화는 장미과의 꽃들이다. 특히 찔레는 장미의 새 품종을 교잡할 때 대목(臺木·바탕나무)으로 쓰이니, 장미들의 아버지와도 같다. 선친은 당신의 몸을 빌려 아들 넷을 남겨두셨다. 떠나신 지 벌써 스물다섯 해. 설 닷새 전이 기일인데, 올해도 찾아뵙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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