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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갓 태어난 조카를 반기며… 정신병원서 그려 낸 꽃나무

  •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입력 : 2018.02.09 04:00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아몬드꽃나무'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혹한에도 어딘가에 야생의 뺨이, 발그레한 꽃이 벙글어 있을 것만 같다. 세간엔 동사자가 나오고 화재가 빈발해도 그런 숨은 꽃들이 시르죽지 않고 겨울과 대면하는 데가 있을 것만 같다. 이건 겨우 마음의 소박한 결기에 불과한가. 내가 다니는 자하문 고개 언덕배기의 작은 밥집 창가엔 게발선인장이 선홍빛 꽃을 갈무리하고 있다. 하얗게 성에가 낀 창밖의 겨울이 물러날 때를 다소곳이 똥기는 꽃은 끌밋하다.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이 꽃 핀 아몬드나무를 그렸다 한다. 어린 조카를 위해 아몬드나무에 꽃들이 벌어 새 하늘을 열고 있다. 그런 꽃들에 허공은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무덤덤한 공중에 꽃의 자리를 내어주듯 숨 탄 것에게 시간과 공간이 합작한다.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아몬드나무도 겨울이 가기 전에 꽃을 틔움으로써 신열 속에 봄의 다소곳한 눈길을 받아낸다. 신경쇠약과 정신병에도 이런 꽃나무를 그려낸 건 천진무구한 조카의 태어남, 그 생명에 대한 더없는 반가움 때문이다. 그 어떤 환경을 지고 태어나든 한 생명이 드리워주는 그 활기의 낙락함은 우주가 마련한 선물이다. 구불구불한 나뭇가지는 아몬드나무 자체의 특성이겠지만 왠지 너스레를 잘 떠는 사람의 유들유들한 입담과 제스처만 같다. 어린 조카를 위해 고흐는 잠시 재미있는 꽃 핀 아몬드나무 삼촌이 되었다. 고흐가 저처럼 세상에 고통받고 번민에 시달릴 때 저런 마음의 처세가 돌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고통과 증오에 함몰되려 할 때 저처럼 꽃가지를 들어 일깨우면 어떨까. 아픈 사람의 핼쑥한 뺨을 저 꽃으로 쓰다듬어주면 어떨까.

    그러려면 저 아몬드꽃은 더디 져야겠다. 세상의 낙화(落花)에 일부러 무관심해야겠다. 몇 꽃은 열매를 기약하지 않아도 좋으니 좌절과 슬픔에 짓눌린 사람의 뒷배로 열매처럼 오래 벙글어야겠다. 새들이 그 꽃 빛에 끌려 맴돌면서 그 칭송으로 그 부리를 한껏 벌려 붉은 혀를 내보여 화답하면 좋겠다.

    일본 에도 시대 유행한 장식적이고 화려한 풍속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듯 아몬드꽃나무는 동양적인 그윽함과 색채감이 완연하다. 아몬드꽃나무는 왠지 매화 같다. 매화를 감싸는 하늘은 얼마간은 동양의 하늘을 빌린 듯 청아하다.

    세상의 모든 꽃은 두껍고 강직된 줄기에서 나지 않고 나뭇가지의 끝, 그 말단(末端)에서 나온다. 꽃은 피어나는 동시에 고통과 슬픔과 기쁨이 난만한 세상에 자신을 건넨다. 봄이 와야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 꽃이 우글우글 몸을 푼다. 꽃을 보면 오래된 처음인 듯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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