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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구워 나오는 양념갈비… 살살 녹지 않고 적당한 씹는 맛

  •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입력 : 2018.02.09 04:00

    [정동현의 지금은 먹고 그때는 먹었다] 82년 노포, 을지로 '조선옥'

    "시간은 아름다움을 경배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세상 사는 것처럼 멋진 어록을 쏟아내고 내무장관까지 지냈으며 게다가 잘생겼던 그리스의 대문호 카잔차키스가 한 말이다. 서울 을지로 어귀를 거닐 때면 카잔차키스의 말이 실감 난다. 해방 당시 허허벌판이던 강남은 지금 국제적인 땅값을 자랑하지만 '사대문' 안이라고 으스대던 을지로 어귀는 이제 슬럼가를 방불케 한다.

    날이 저물면 의지할 전깃불조차도 드문 이곳을 찾은 때는 근처 빌딩에 서식하는 직장인들마저 사라져버린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영하 10도의 공기 속을 파고드는 냄새가 있었다. 간장과 설탕 그리고 고기가 센 불에 그을린 냄새였다. 그 진원지를 쫓아가니 '조선옥'이라는 간판을 단 집이 나타났다.

    1937년에 문 연 조선옥이 을지로에 터를 잡은 지가 82년 째다. 추위에 길고양이 한 마리 없는 거리와 다르게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앞에 고기 한 접시를 놓아두고 빨간 볼을 한 채 이를 내보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 있는 고기는 조선옥의 대표 메뉴 양념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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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옥 대표 메뉴 양념갈비. 두껍지만 양념이 속까지 잘 배었고, 적당한 탄성이 씹는 맛을 더한다./조선일보 DB
    이곳의 갈비는 강남 유명한 고깃집들처럼 한우가 아닌 육우를 쓴다. 대부분 고깃집들처럼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굽는 것도 아니다. 주방에서 완전히 익혀 낸다. 휴대 버너가 보급되기 전 방식이다. 고기를 앞에 두고 굽지 않으니 냄새가 나지 않고 번거롭게 뒤집을 필요도 없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 고기가 식어 맛이 떨어진다. 다 구워 나오는 갈비라고 하면 특이해 보이지만 실상 서양에서 스테이크를 내놓는 방식과 다를 게 없다.

    시작은 무국이었다. 한 그릇 1000원 받는 이 무국은 단연 그 값을 따로 칠 만했다. 큼지막한 무와 감자, 고기 자투리가 든 무국은 집 한편 주방에서 큰 솥에 사골을 끓였을 때와 비슷한 맛이 났다. 해무가 낀 것처럼 뿌연 국물에 소금을 조금 치니 무의 단맛이 치고 올라왔다. 따뜻한 기운에 언 몸이 풀린 것이 그때였다.

    무국을 시작으로 깔린 찬은 단출했다. 고춧가루로 물들인 무생채는 신맛이 적당해 고기에 곁들이기 좋았다. 파무침은 파를 얇게 채 쳐 모양새가 단정했고 양념이 강하지 않아 파의 아삭한 질감이 더 잘 느껴졌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주 먹던 도라지 무침을 씹자 특유의 흙 맛과 쓴맛이 뒤엉켰다.

    이제 갈비 차례였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젊은 종업원이 갈비가 올라간 접시를 가지고 왔다. 종업원은 갈빗대에 붙은 살을 보여주고 앞에서 고기를 가위로 잘랐다. 고기가 잘릴 때마다 연분홍색 단면이 보였다. 갈빗대는 바깥으로, 살은 접시 안으로 모아 접시 위에 올려놓으니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고기에 세세히 든 칼집이 보였다. 탄 구석 하나 없이 짙은 갈빛으로 잘 구운 고기였다.

    잘린 고기 중 제일 큰놈으로 골라 입에 넣었다. 씹자마자 녹아버리는 식감이 아니었다. 대신 갈비 먹으며 치아 자랑하던 옛 생각이 났다. 그러나 씹기 힘들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적당한 탄성과 저항감이었다. 살코기 대신 기름이 낀 부분을 골라 입에 넣으니 체온과 함께 소기름이 녹고 그 곁에 붙은 고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양념은 단맛도 짠맛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껍게 썬 고기 속까지 잘 배어 따로 겉돌지 않았다. 한 접시를 쉽게 비웠다. 고기 추가하는 테이블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식사로는 된장찌개와 냉면을 시켰다. 쪽진 머리처럼 곱게 똬리를 튼 면발에 냉면 맛이 짐작됐다. 고기 국물의 두터운 맛에 동치미 국물의 희미한 단맛과 신맛이 숨겨져 있었다. 식초를 조금 치니 그 맛이 명확해졌다. 볼이 빵빵하게 불어 오를 만큼 면을 집어넣고 이로 작두질을 했다.

    멸치로 육수를 낸 된장찌개는 날카로운 매운맛이 칼을 치듯 일거에 입안의 잡맛을 제거했다. 이미 위장의 최대 용적치를 초과했지만 나는 숙명처럼 겸허히 된장찌개에 밥을 말았다. 거대한 한 끼였다. 언젠가 한 번은 먹었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오래된 한 끼였다.

    ■조선옥: 양념갈비 3만3000원(국내산 육우·250g), 갈비탕 1만원, 장국밥 8000원, 냉면 1만1000원, 무국 1000원, 된장찌개 5000원. (02) 2266-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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