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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시누이들의 뻔뻔한 기억 상실

      입력 : 2018.02.09 04:00

      [삶의 한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세상에 만연한 것은 우리 집 안방에도 한 조각 숨겨져 있는 법입니다. 나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뉴스가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정의를 부르짖지만 말고 과거를 돌아볼 일입니다.

      홍여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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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안병현
      저도 그렇지만 여자들에게 자매만큼 좋은 대화 상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저희 시어머니 기일에도 두 시누이 간에 얘기꽃이 피었더군요. 내용인즉슨 작은 시누이의 딸 상견례 후기였습니다. 올케인 저도 그 대화에 한쪽 귀를 걸어두긴 했지만, 시누들과의 대화가 대개 그렇듯 자꾸만 혼자만의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게 되더군요. 내가 시집올 때 갈래머리 여고생이던 시누가 어느새 사위를 보는구나···. 저 성격에 앞으로 사돈과 분란이나 없어야 할 텐데···.

      그러던 어느 순간 작은 시누이의 말 한마디가 유독 제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딸이 시집가서 시누이 시집살이할까 무섭다는 겁니다. 그러자 큰 시누이가 대번 맞장구를 치더군요. 그러게, 시누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니 그 둘이 작당해서 순한 애 잡을까 걱정스럽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실소가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본인들이야말로 유별난 시누이 짓으로 올케를 잡았던 시누들이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는 말을 못 했죠. 표정을 감추고 영혼 없는 말 추임새만 넣었습니다. 걱정 말아요, 고모. 요즘 세상에 어떤 간 큰 시누이가 올케 시집살이를 시켜요? 그러자 시누이들은 한목소리로, 모르는 소리 말랍니다. '언니! 예전에 우리들은 오빠가 어렵고 부모님이 무서워서라도 올케언니 공경했지만 요즘 애들은 안 그래요. 저희가 공주인 줄 알고 수틀리면 막 나간다고요.'

      저는 더 이상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과거지사를 꺼냈다가는 시누이들과 진실게임이 벌어질 테고, 어차피 저 혼자는 그 둘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요.

      40년 전 제가 시집 왔을 때 시누이들은 여대생과 여고생이었습니다.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시집갈 때까지 같이 살았죠. 그 칠팔 년의 시간 동안 시누이들이 저를 대했던 태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이렇습니다. 자기네가 공주인 줄 알고 수틀리면 막 나가는···.

      일단 그 둘은 집안일을 전혀 안 했습니다. 숟가락 하나 놓은 적 없고 빗자루 한 번 쥔 적 없죠. 그뿐인가요? 세탁기도 없는 집에서 두 처녀 빨래를 제가 손으로 다 했습니다. 특히 작은 시누는 성격이 까다로워, 다 빨아놓은 교복을 도로 물에 담가놓기도 했죠. 그러면 저는 갓난애를 업고서도 그 빨래를 다시 해서 어떻게든 아침까지 말려놓아야 했답니다. 어느 날은 방 청소를 해주려고 들어가 보니 책상 위에 일기장이 보란 듯이 펼쳐져 있더군요.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왜 우리 오빠가 저런 못 배운 여자와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밤마다 울어대는 조카 때문에 공부도 안 된다. 올케가 애들 데리고 친정에 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유치한 일기장 쇼에 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야말로 공주 같은 시누이들이 작당하고 시부모님까지 가세해서 저희 부부를 억지로 갈라놓을까 봐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순진했던 거죠. 당장 부려 먹을 일손이 아쉬워서라도 저를 쫓아낼 수는 없다는 걸 몰랐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식구들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 제 남편이었습니다. 실은 시누이와 시부모님이 저희 부부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시누이들은 시누이라는 이름만으로 군림했고, 저는 혼자만 을이 되어 쩔쩔맸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훗날 벌어진 굵직한 사건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집가서 잘 사는 것 같던 큰 시누가 어느 날 울며 오빠를 찾아왔더군요. 남편 몰래 돈을 불리려다 다 잃었다고, 오빠가 빚을 갚아주지 않으면 이혼당하게 생겼다는 겁니다. 남편은 우리의 적금을 털어주려고 했고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시집 식구 넷을 어찌 당하나요. 남편부터가 자기네 식구 편인 걸요. 결국 돈은 돈대로 내주고 고맙다 인사 한마디 못 들었네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어제 일처럼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시누이들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모양입니다. 자화자찬이 넘치는 걸 보면요.

      그날 밤 남편에게 이런 얘길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저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밤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네요. 애초에 철없는 애들 버릇 잘못 들인 제 탓이라는 겁니다. 걔들은 당신이 좋아서 해주는 줄 알았을 거라고, 그렇게 힘들었으면 그 당시에 말을 할 것이지 왜 가만있다가 새삼스레 들추느냐고요. 그쯤 되니 저도 목소리가 높아지더군요. 참고 싶어 참았나. 당신 생각하고 집안 생각해서 참았지.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았느냐. 그때마다 당신은 덮으려고만 하고 나더러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잖느냐.

      이제 보니 그 옛날 시누이들의 갑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기막힌 건 시누이들의 뻔뻔한 '망각력'입니다. 그리고 시누이보다 더 미운 건 남편의 비겁한 태도입니다. 내 편이어야 할 사람이 내 탓만 하네요. 그때 참은 것도 잘못, 그동안 잊지 않은 것도 잘못, 이제 와 들추는 것도 잘못···.

      불리해진다 싶으니 남편은 TV를 켜더군요. 끝까지 따지기도 힘이 달려 저도 그만 입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왕왕거리는 뉴스 소리만 집안에 가득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남편이 혼잣말을 구시렁댑니다. '하여간 여자들은 질겨. 수년 전의 일을 들추어서 여러 사람 망신시키는 뉴스 속 헛똑똑이 여자들이나 우리 집 무식쟁이 마누라나 똑같네.'

      저도 모르게 남편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아침 뉴스를 볼 때만 해도 나와 같이 나쁜 남자들을 욕해주던 그 사람 맞나 싶어서요. 인간의 비겁함이 이런 건가요? 남의 일일 때는 정의를 부르짖고 내 일이 되면 강자의 편이 되어 손쉬운 평화만 찾고요.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젊은이들의 미투 열풍이 다시 보입니다. 평생 살림만 살아온 저도 세상에 외치고 싶습니다. 시집살이든 성희롱이든 학교폭력이든, 잊게 해줘야 잊을 수 있다고요. 사과 한번 없이 저희가 먼저 잊었다고 하면 피해자는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걸 왜 모를까요? 무식쟁이 마누라도 아는 걸···.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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