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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자로 잰 듯 반듯한 추모관, 엄숙함을 더하다

  • 황두진 건축가

    입력 : 2018.02.02 04:00

    [황두진의 한 컷 공간] '세계 유일' 부산 유엔 묘지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 건축가

    부산 지하철 2호선 대연역에서 15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가면 개활지가 나타난다. 평지가 귀한 부산에서 찾아보기 힘든 널찍한 곳이다. 바로 유엔기념공원, 통상 '유엔묘지'로 불리던 곳이다. 동남쪽을 향해 완만히 경사진 이 공원의 전체 면적은 17만6486m²로 서울 여의도공원의 0.8배 정도다. 부산박물관과 부산문화회관 그리고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이 지척이다.

    이름만 보면 그냥 공원 같지만 사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11개국 2300위의 유엔군 장병이 안치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11개국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그 관리를 맡고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1만1000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일부 국가 장병의 유해는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대한민국 출신으로 유엔군 소속이었던 카투사 장병 36위 또한 이곳에 모셔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배출한 유엔군 국가는 미국이지만 이들의 유해는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현재 이 공원에서 가장 많은 유해가 안치된 국가는 영국으로 그 숫자는 885명에 달한다. 그 밖에도 대체로 영연방 국가의 비중이 높은데, 전장에 묘역을 조성하는 그들의 전통 때문이다. 1951년 4월의 임진강 전투에서 사망한 영국군 제29보병여단의 킹즐리 포스터 중령 또한 여기에 묻혀 있다. 남아 있는 매장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망한 지 한 달 반쯤 후인 1951년 6월 5일 이곳에 안치되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정연하게 늘어선 묘지 앞을 영국 국기가 지키고 있다. 미군 유해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간 지금 영국은 이곳에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남겨둔 국가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정연하게 늘어선 묘지 앞을 영국 국기가 지키고 있다. 미군 유해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간 지금 영국은 이곳에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남겨둔 국가다. / 황두진

    이 공원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한국전쟁의 전황과 관련이 있다. 처음 유엔군의 임시 묘지가 만들어진 곳은 대전이었으나 곧 접었다. 낙동강 전선이 형성된 이후는 그 일대에, 그리고 북진을 시작한 이후는 북한 지역 내에 임시 묘지가 계속 만들어졌다. 유엔군사령부가 현재 위치에 묘역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1월 18일이다. 중공군 참전으로 1월 4일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피란민들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들던 시기였다. 이렇게 부산은 개전 초에 이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한때 제2의 고향이었던 도시, 부산의 역사다.

    공원이 자리 잡은 부산 남구 대연동은 현재는 완전히 내륙처럼 보이지만 원래 이 일대는 농업과 함께 어업과 염전업이 성했던 곳이었다. 1946년 미군이 만든 부산 지도를 보면 바로 동쪽 인근까지 용호만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현재 완전히 매립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 용호만 혹은 반대편의 감만동과 우암동 부두를 통해 유해를 실어 오거나 본국으로 송환하기 편해서 이 자리에 묘지가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

    공원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제359호)이기도 하지만,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이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김중업은 1964년과 1966년 이 공원의 추모관과 정문을 설계했다. 정문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변형한 것으로 건축가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향수를 기억하면서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으려는 벅찬 작업'이었다. 이와 반대로 추모관은 여기 잠든 장병들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고려해서 설계한 것이다. 원초적인 박공지붕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엄정한 기하학적 배치, 그리고 자로 잰 것 같은 철저한 관리 덕에 공원은 더없이 엄숙하고 장중하다. 복잡하고 활기 넘치는 항구 도시 부산, 그 이면에 이런 장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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