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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딸이 되어버린 시어머니

      입력 : 2018.02.02 04:00

      [삶의 한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홍여사

      암수 한쪽씩의 날개를 가졌다는 전설 속의 새가 한 몸이 되어 날아오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결합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는 오늘 어떤 바보들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너의 등짐과 나의 등짐을 바꾸어 지고, 이 길을 끝까지 같이 걷자는 약속. 그 약속을 결코 잊지 않는 바보들을 말입니다.

      홍여사 드림

      24년 전, 눈물을 머금고 청혼을 거절하는 저에게, 남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발상이야.' 그 말에 저는 '풋' 하고 웃고 말았네요. 어떻게든 예스라는 답을 얻고 싶은 남자의 마음과, 그러자면 역발상밖에 길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요즘 말로 '웃프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는 커플이었습니다. 저는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하는 외동딸, 남편은 청상에 홀로 되신 어머니의 외아들. 만일 우리가 결혼한다면 인생의 짐을 두 배로 늘리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 생각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했습니다. 양친 그늘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사람은 우리 같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의존적이고, 나의 어머니는 고집이 세시니, 우리 서로 봐주며 살자고 하더군요. 나는 당신 어머니의 아들이 되고 당신은 내 어머니의 딸이 되는 거라고요. 나중에 우리 넓은 집에서 두 어머니를 같이 모시자는 달콤한 말까지···.

      그 말에 속아 결혼한 건 물론 아닙니다. 남편한테 반해 있었고, 그 사람을 놓치기가 싫어 속은 척한 거죠. 그래, 우린 각자의 어머니를 등에 업고 결혼하는 거야. 그렇게 합리화하며 저는 예식장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달콤한 자기기만의 꽃길은 금방 끝나고 말았죠. 결혼하자 연달아 아이 둘이 태어났고, 그 애들을 기르며 15년 맞벌이를 했습니다. 친정 엄마 생활비 때문에라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죠. 엄마도 한동안은 일을 다니곤 했지만 만성적인 불면증과 지병 때문에 매번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일러스트
      일러스트=안병현
      한편 시어머님은 친정 엄마와 반대되는 분이었습니다. 억척으로 생계를 꾸리고 재산을 일구신 분답게, 아무도 안 믿으셨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사고방식은 1960년대쯤에 멈추어 있으셔서, 아직도 남자 빨래는 윗줄에 걸고, 여자 빨래는 아랫줄에 너시는 분입니다. 그런 시어머님이 거의 매주 저희 집에 다녀가셨으니, 저는 늘 긴장이 되고 내 살림을 사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죠.

      물론 때론 꾀가 나기도 했습니다. 요새 누가 이러고 사나 싶어, 일부러 어머니가 눈살 찌푸릴 짓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어머니를 저의 생활 밖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네요. 제가 착한 며느리여서가 아닙니다. 남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본인의 약속대로 친정 엄마에게 정말 잘했거든요.

      엄마의 호소나 요구가 하도 어이없어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남편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기꺼이 들어 드리곤 했습니다. 원래 그렇게 넉살 좋은 사람이 아닌데, 장모 앞에서만은 늘 껄껄대는 모습에서 저는 그의 노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제가 시어머니 잔소리 듣기 싫다 할 수 있겠어요. 말하자면 저는 제 분에 넘치게 착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는 바람에 그릇에 넘치는 고생을 참으며 산 거죠. 하지만 덕분에 친정 엄마는 말년에 아들 없는 설움 모르고 맘 편히 살았습니다. 그러니 후회한다 소리도 할 수가 없네요.

      지금 저는 이 글을 군대 간 아들의 책상에서 쓰고 있습니다. 거실에는 두 분 어머니가 TV를 보고 계시고요. 초기 치매 판정을 받은 시어머니는 지난겨울부터 저희 집에 와 계십니다. 친정 엄마 또한 정형외과 수술을 받은 후로 가능한 한 낮 시간에는 저희 집에 모셔다 놓고요. 아들 둘이 떠나간 자리에 어머니 둘이 들어와 계십니다.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붙여두긴 했지만 저희 부부는 요즘 생각이 많습니다. 그 옛날 남편의 예언대로, 두 분 어머니를 한 집에 모시게 되는 건가 싶어서 말입니다.

      착잡한 우리 부부에 비해 두 분 어머니는 요즘 재미나십니다. 예전에는 서로 경계하며 흠잡던 분들인데, 치매가 온 뒤로는 친구처럼 지내십니다. 눈 흘길 때도 있지만, 같이 잡숫고 같이 TV 보며 같이 웃으시네요. 생전 처음 저도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봅니다. 엄마에게 시어머니를 맡겨놓고, 잠깐 외출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니까요.

      오늘도 아들 방에 숨어들어 잠시 눈을 붙이고 쉬고 있었죠. 그런데 친정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 눈치를 보며 속삭이는 겁니다.

      "어떡하냐? 네 시어머니가 이제 너도 못 알아본다. 아까 너를 보고 나한테 뭐랬는지 아니? '새엄마'래. 저 젊은 여자가 우리 새엄마인데, 참 잘해준다고 그러는 거야. 쯧쯧쯧···."

      새엄마! 며느리더러 새엄마라니···. 그냥 엄마도 아니고 새엄마라니···. 하지만 다음 순간 일렁이던 가슴이 묘하게 잦아들며 뜻밖의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시어머니를 어려운 의붓딸처럼 대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예뻐서가 아니라 도리로, 의리로 돌보며 줄곧 남편 눈치를 살피는···.

      그러고 보니 저는 시어머니의 새엄마였고, 남편은 장모의 새아빠였나 봅니다. 우리는 어머니들을 등에 업고 결혼한 게 아니라 어린 딸을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결혼한 거였습니다. 내 딸에게 잘해 달라고 남편의 딸에게도 잘해주었고, 내 딸과 남편 딸을 차등 두지 않으려고 무지 애써왔던 겁니다. 고백하건대, 어느 한순간도 시어머니를 혈육처럼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떨어지고 귀찮은 순간에도 남편 생각해서 고분고분 뜻을 따랐을 뿐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내 생각해서 선뜻 지갑을 열고 차를 몰았던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새엄마 새아빠지 뭐겠어요. 그래도 저를, 못된 새엄마가 아니라 잘해주는 새엄마라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친딸 같은 며느리라는 환상보다는 그동안 잘 먹이고 잘 입혀준 새엄마라는 말이 저의 진실에 더 가까운 말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는 시어머니의 착한 계모가 되는 것을 저의 목표로 잡아야겠습니다. 그렇게 큰 불편 없도록 돌보아 드리다가 임종하고 나면 저는 남편한테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딸 잘 키워 하늘로 시집보냈어.

      그리고 우리 엄마 떠나시는 날 남편을 안아주며 말하고 싶네요. 그동안 당신 수고 많았어. 이제 드디어 우리 둘만 남았네.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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