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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한 손엔 입욕패, 다른 손엔 지도… '검은 강'의 순례객들

    입력 : 2018.02.02 04:00

    [구로카와 온천] 400년 전통 간직한 온천마을

    그 흔한 편의점도 없어
    숲과 계곡에 숨겨진 조용한 온천마을
    검붉은 유황온천 많아 '黑江'이라고 불려

    年100만명 찾는 온천마을
    '센과 치히로…'배경 된 신메이칸 료칸
    '미쉐린 그린' 별 2개 오쿠노유 온천탕 유명

    미인탕 순례
    1300엔 입욕패 사면 20여곳 중 3곳 입장
    하루 3번 온천욕하면 美人된다는 전설도

    지역 명물 말고기
    육회로 먹는 '바사시' 혀끝에서 사르르…
    초밥·스테이크나 고로케로 즐길 수도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가장 큰 노천탕인 야마비코료칸의 선인탕. 온천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규슈의 새벽 찬 공기를 제치고 온천탕 위에 살며시 떠 있다. 노천탕에 혼자 들어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몸을 데우면 잠시나마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가장 큰 노천탕인 야마비코료칸의 선인탕. 온천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규슈의 새벽 찬 공기를 제치고 온천탕 위에 살며시 떠 있다. 노천탕에 혼자 들어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몸을 데우면 잠시나마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구로카와 온천마을 료칸조합

    일본 구마모토현 아소구마모토공항을 출발해 버스로 2시간을 달리자 "'구로카와(黑江) 온천마을'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류소에 내렸더니 인근 온천탕에서 뿜어져 나온 유황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곳은 구마모토현의 성산(聖山)인 아소산의 한 중턱, 해발 700m 지점이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길 수차례. 한가득 숨을 들이마셔 봤다.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찬 폐에서 나도 모르게 "공기 맛 좋다"는 말이 새어나왔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은 좁은 계곡을 따라 자리 잡은 24채의 온천료칸(여관)과 료칸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온천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구로카와는 '검은 강'의 일본말. 마을 이곳저곳에 검붉은 색 유황 온천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숲과 계곡에 숨겨진 조용한 온천마을로 소문이 나있다. 한 마을 주민이 "귀를 찌르는 기계음이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도 이곳에는 없다"고 했다.

    야마노유 온천료칸의 족욕탕에서 일본 전통 복장인 유카타를 입고 족욕을 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야마노유 온천료칸의 족욕탕에서 일본 전통 복장인 유카타를 입고 족욕을 하는 일본인 관광객들. / 구로카와 온천마을 료칸조합

    현대화가 비켜간 에도 시대 온천마을

    일본 전역에 5만개 넘게 있다는 편의점은 물론, 현대적인 호텔이나 대형 숙박시설도 구로카와 온천마을에는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덕분에 에도 시대부터 지금까지 400여 년간 이어져 온 온천마을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검게 칠한 목조로 마감된 료칸의 기둥을 만져봤다. 그간 다녀간 수많은 이의 손에 길든 듯 만질만질하고 윤기가 흘렀다.

    마을 한중간에 있는 신메이칸(新明館)이라는 료칸은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다. 바로 옆 오쿠노유 온천탕은 2009년 '미쉐린 그린가이드'에서 온천마을로는 이례적으로 별 2개를 받았다. 아는 사람만 알던 구로카와 온천마을이 유명해진 계기였다. 2015년에는 일본인이 가고 싶은 온천마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일본 남쪽 끝 산골짜기에 있는 아담한 온천마을에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연간 100만명이 다녀간다.

    료칸조합 가제노야에서 살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입욕패.
    료칸조합 가제노야에서 살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입욕패. / 이동휘 특파원

    '입욕패(牌)' 들고 온천 순례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입욕패를 들고 마을 내 온천을 순례하는 '온센 메구리(온천 순례)'이다. 지난 1983년 시작돼 지금은 구로카와 온천마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마을 중심에 있는 료칸조합 '가제노야'에 들러 1300엔(약 1만2500원)을 주고 입욕패를 샀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입욕패를 들자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를 잡으러 다니던 '암행어사'라도 된 느낌이었다. 당일치기로 온 순례객이라면 짐은 가제노야에서 맡아준다.

    입욕패가 있으면 마을 내 20여 개의 온천탕 중 3곳을 골라 들어갈 수 있다. 각 료칸 프런트에서 입욕패만 보여주면 된다. 거리 곳곳에서 한 손에 입욕패를 들고 다른 손에 마을지도를 편 온천 순례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온천탕도 있지만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문을 여는 온천탕도 있으니 마을지도에 나온 운영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마을 중간에 있는 신메이칸의 '동굴탕'은 료칸 주인이 10년 동안 직접 바위를 파서 만든 온천 동굴이다. 20m가량 이어지는 동굴 탐험은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마을 중간에 있는 신메이칸의 '동굴탕'은 료칸 주인이 10년 동안 직접 바위를 파서 만든 온천 동굴이다. 20m가량 이어지는 동굴 탐험은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 구로카와 온천마을 료칸조합

    야마비코료칸의 선인탕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노천탕으로 유명하다. 수심 150㎝쯤 되는 탕에서 입식(立式)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료칸 주인이 10년 동안 직접 바위를 파서 만든 신메이칸의 '동굴탕'을 즐기려면 20m가량 이어지는 동굴 탐험부터 해야 한다. 구로카와소(黑川莊)료칸의 온천탕은 마을에서 유일한 에메랄드빛 온천수다. '일본의 명탕 100선'에 선정된 이코이료칸의 혼욕 노천탕 '다키노유'에도 사람이 몰리는 편이다. 하지만 괜한 흑심(?)을 품었다면 포기하시라. 주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하루 3번 온천을 하면 미인이 된다'는 전설에 구로카와의 온천탕들을 '미인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온천탕에 들어가더라도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계곡 물소리가 비지엠(BGM·배경음악)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구마모토 일품요리 '말고기 육회'

    이제 먹으러 갈 시간. 온천을 마쳤다면 일단 온천 입구에 비치된 '온천물로 삶은 달걀'부터 맛보길 추천한다. 한 개당 50엔(약 480원)이다. 유황 냄새가 나고 적당히 짭짤하다. 여기에 고소하고 따뜻한 온천 우유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사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이 속한 구마모토현은 먹을거리도 명물이다. 최대 진미는 말고기. 신선한 말고기를 익히지 않고 육회로 먹는 '바사시'가 가장 유명하다. 구마모토현은 일본에서 '말고기의 본고장'으로 꼽힌다. 시내 중심가에 말고기 요릿집이 즐비해 있을 정도다.

    료칸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 요리에 나오는 말고기 육회 '바사시'(왼쪽)와 소고기 구이 모둠(오른쪽).
    료칸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 요리에 나오는 말고기 육회 '바사시'(왼쪽)와 소고기 구이 모둠(오른쪽). / 이동휘 특파원

    바사시의 겉모양이나 색깔은 한국의 소고기 육회와 비슷하다. 하지만 육질의 부드러움이나 담백한 맛은 바사시가 한 수 위였다. 갓 썰어낸 말 생고기를 생선회처럼 생강과 간장을 곁들여 찍어 먹는다. 혀끝에서 녹는 맛이 아이스크림 같다면 과한 표현일까. 몇 번 씹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은 분명했다. 지방이 없고 고단백 식품이라 남성들의 스태미나식으로도 꼽힌다. 바사시를 먹기 어렵다면 '바사시 초밥'이나 '말고기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가격은 1인당 3000엔(약 2만9000원)이면 충분하다.

    간식으로 '바로케'라고 불리는 말고기 고로케도 있다. '말(馬)'을 뜻하는 일본어 발음인 '바'와 '고로케'를 합성한 단어다. 일반적인 고로케의 재료인 소고기 대신 말고기가 들어간다. 고기는 잘게 썰어져 있고 감자 향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말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새가 없다. 가격은 한 개당 180엔(약 1700원).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온천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에 '대나무 등불' 300여 개가 켜진다. 온천탕이 뿜어내는 수증기와 붉은 불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명화가 그려진다. 환상적인 분위기 덕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온천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에 '대나무 등불' 300여 개가 켜진다. 온천탕이 뿜어내는 수증기와 붉은 불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명화가 그려진다. 환상적인 분위기 덕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 이동휘 특파원

    하늘엔 별, 계곡엔 '대나무 등불'

    배불리 먹었다면 소화도 시킬 겸 유카타 차림으로 마을 산책에 나서보자. 밤이 되면 수증기가 자욱이 낀 온천마을 계곡에 '아카리'라고 불리는 대나무 등불들이 켜진다. 수면에 비친 불그스름한 대나무 등불 300여 개를 보고 있으면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을 주민들이 주변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대나무림(林) 황폐화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캠페인이라고 했다. 계곡에 둥둥 뜬 불빛들을 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별들이 달려 있다. 곁에 있던 관광객 하야시 사라사씨가 속삭였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다 계곡 위에 띄워놓은 것 같네요."

    구로카와 온천마을 위치도
    ◆여행정보

    교통

    렌터카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면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후쿠오카공항에서 구로카와 온천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9시 56분이 첫차, 오후 2시 3분이 막차다. 1일 4회 운행하며, 2시간 10분이 걸린다. 요금은 3090엔. 아소구마모토공항에 내렸다면 하루 2대뿐인 구로카와온천행 버스의 출발 시각에 주의하자. 오전 8시 57분과 오후 1시 8분이다. 성인 기준 2000엔으로 2시간이 소요된다.

    자전거

    구로카와는 작은 온천 마을이기 때문에 넉넉잡아 30분이면 전부 둘러볼 수 있다. 좀 더 멀리까지 다녀오고 싶다면 온천조합 가제노야에서 빌려주는 '전동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동네 자체가 산 중턱에 있기 때문에 간혹 경사길을 올라야 하는데 걷기엔 만만치 않다. 전동 자전거에는 전기 모터가 달렸기 때문에 큰 힘 들이지 않고 언덕길을 넘을 수 있다. 가격은 2시간에 500엔(약 4800원).

    음식

    구로카와에서만 살 수 있는 전통 술들을 시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구로카와 지역 한정 맥주인 '유아가리비진(목욕을 마친 미인)'은 은은한 꽃향기가 풍기는 술이다. '가라구치(매운맛)' '아마구치(단맛)' 등 맛이 다른 지역 소주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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