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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결혼도 안 한 나, 고부 갈등 중재까지…

      입력 : 2018.01.12 04:00

      삶의 한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현실 속에서 누군가의 고민을 시시콜콜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 놓인 분들이 저희 별별다방에 들러주실 때가 있습니다. 치우치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지친 기색도 없이 '남의 이야기'에 '나의 힘'을 써야 하는 그 일. 그분들의 주름 그득한 마음 보따리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네요. 홍여사 드림

      결혼도 안 한 나, 고부 갈등 중재까지…
      일러스트=안병현
      자정이 넘은 시각, 벌써 잠자리에 든 줄 알았던 엄마가 제 방문을 밀고 들어오십니다. 또 무슨 잔소리를 듣게 되려나 싶은데, 엄마는 두말없이 휴대폰부터 내미네요.

      "넌 이거 어떻게 생각하니? 젊은 애들 생각을 들어보자."

      "뭔데 이게?"

      휴대폰을 받아들고 자세히 보니, 사진 한 장이 떠 있더군요. 사진 속의 인물은 막내 남동생이었고요. 대체 뭐가 문제야? 하지만 그 사진을 10초쯤 더 들여다보니 알겠더군요. 사진 속의 어떤 점이 엄마를 이 시각까지 잠 못 들게 하는지를요.

      저희 엄마는 올해 예순다섯 살로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평범한 분입니다. 아들 둘은 장가보내고 현재 일흔 살 남편과, 마흔 살 노처녀 맏딸과 함께 살고 있죠. 슬프게도 제가 바로 그 딸이고요.

      결혼 문제로 엄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지만 실은 누구보다 엄마를 잘 알고 있고, 지근거리에서 엄마 기분을 살피는 1인이 저이기도 합니다. 언제든 엄마가 노크하면 응하거든요. 시집 안 간 노처녀 딸이라는 원죄를 그렇게나마 덜고 싶은 마음인데 문제는 그 대화가 꼭 저의 쓴소리로 끝난다는 거죠. 그냥 엄마가 참아야 해. 엄마도 잘한 거 없어.

      제가 엄마 편을 못 들어 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마의 걱정거리 중 많은 부분이 아들, 며느리와 관련되어 있어서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럽거든요. 어떻게든 올케들에게 점수를 좀 따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어머니의 주책 내지는 변덕을 미리미리 차단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겠지요.

      물론 저는 올케들보다는 울 엄마 편입니다. 제가 엄마에게 바른 소리를 해대는 이유는, 엄마 마음이 편해지길 원해서이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결혼은 못해봤지만 주변의 여자 선후배들을 통해 결혼생활의 민낯을 질릴 만큼 들여다봐 왔기에, 우리 엄마도 이대로는 고부 갈등을 피할 수 없겠다 싶은 겁니다.

      인터넷 쇼핑도 하고, 스포츠댄스도 배우러 다니고, 대학생들한테도 꼬박꼬박 존댓말 쓰는 엄마이지만, 아들도 안 보낸 유학을 딸부터 보낸 엄마이지만, 우리 엄마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구식이세요. 아닌 척하지만, 옛날 사람이 맞아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며느리를 들이기 전부터 예방주사를 놓아왔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엄마와 생각이 180도 다른 여자들이 절반이 넘고, 미안하지만 엄마 딸도 그중 하나라고요. 그러니 며느리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바꾸려고도 말라고요. 특히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대하는 건 금물. 철없는 남편을 아들처럼 어르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여 기분을 북돋우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자 보람이라는 생각은 엄마 시대의 추억으로나 간직하라고요.

      물론 엄마도 제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습니다. 맏며느리를 본 뒤, 눈에 띄게 노력을 하더군요. 궁금해도 묻지 않고, 거슬려도 바로잡지 않고 모른 척. 농담으로라도 남자가 어쩌고 여자가 어쩌고 하는 위험한 발언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우리 큰 올케와 엄마 사이에는 지금껏 심각한 갈등은 없었죠.

      그런데 고부간에만 세대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며느리들 간에도 세대 차가 있는 걸까요? 아직 20대인 작은 올케는, 큰 올케하고 또 달랐습니다. 시어머니의 고정관념까지 고쳐주려고 거듭 무리수를 쓰는 겁니다.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의견을 구부리지도 깎지도 않고 말하는데, 어떨 때는 드라마 보듯 재미있지만, 또 어떨 때는 위태위태해서 더 듣지 못합니다.

      물론 엄마도 느꼈을 겁니다. 틈만 나면 발동되는 막내며느리의 도전정신을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말로도 머리 회전력으로도 엄마는 젊은 며느리의 상대가 못 됐을 겁니다. 결국 감정이 흔들려 악수를 두고 말았죠. 이번 신정 때 가족모임에서였습니다. 높은 찬장의 그릇을 내리려고 엄마가 의자를 끌어다 대는 순간, 작은 올케가 얼른 달려와 말렸답니다. 그러다 넘어지시면 크게 다치신다고요. 그러고는 자기가 올라서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건넌방에 자고 있는 신랑을 외쳐 불렀죠. 그만 자고 일어나서 그릇 내리라고요.

      아마 큰 올케가 그랬으면 엄마도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작은 올케에 대해서는 이미 어지간히 벼르고 있는 상태였던 겁니다. 시어머니 보란 듯이 남편을 부엌에 불러들이려는 작전으로 봤겠죠. 그래서 버럭 화를 냈다는 겁니다. 너는 뭐하러 곤히 자는 사람을 불러대니, 여기 부엌에 여자가 몇인데…. 엄마도 아차 싶었겠지만 한번 터진 말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내쳐 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몸이 가벼워야지, 그렇게 입만 가벼워서야 어디다 쓰겠느냐.

      그런데 엄마 휴대폰 속 사진을 보니 그날의 사건은 그걸로 끝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친정에도 들렀던 올케가 거기서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엄마에게 보냈는데, 그중 두 장이 엄마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 겁니다. 남동생이 집게를 들고 그릴 앞에 서서 고기를 굽는 장면이 그 하나였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설거지하는 사진이 또 하나였습니다. 엄마로서는 그 사진들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찍히고, 전송된 것들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들이 처가에 가서 일을 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어머니한테 이런 식으로 맞불을 놓는 며느리의 태도가 개탄할 일이라고 엄마는 화를 내더군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엄마의 채근에, 저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의도적인 연출인 것 같긴 한데, 그게 엄마 생각만큼 하극상의 도발이라고 해야 할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웃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엄마가 괘씸해하든 말든, 올케는 엄마의 자기장 안에 끌려들어 올 사람이 아니니까요. 지금껏 제가 말로 이해시키려 하던 모든 것을 사진 두 장이 다 보여준 것뿐이니까요. 엄마도 얼마간 아픔을 겪어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결국 엄마는 이번에도 제 충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나 봅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 않고 있는 것을 보면요. 이렇게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온다 싶으면서, 갑자기 저 자신의 위치가 조금 서글퍼지네요. 결혼이라는 걸 해보지도 못하고, 세대와 세대의 물결 사이에 휩쓸려 간다 싶으니 말입니다.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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