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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새우의 진액 같은 오일 소스… 그 위엔 오동통한 대하 살 가득

  • 정동현 셰프

    입력 : 2018.01.12 04:00

    [정동현의 지금은 먹고 그때는 먹었다] 요리사를 닮은 '파스타 포포'

    종업원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화이트와인 남은 게 없네요. 어쩌죠."

    얼마 전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스타 포포'에 들렀을 때였다. 가오픈 기간임을 알았기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발을 동동거리더니 "본점에서 한 병을 빌려오겠다"며 가게 문을 나섰다.

    서울 서래마을 파스타 전문점 ‘파스타 포포’의 대하 오일 스파게티.
    서울 서래마을 파스타 전문점 ‘파스타 포포’의 대하 오일 스파게티.
    서울 반포4동 서래마을에 새롭게 문 연 '파스타 포포'는 얼마 전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은 '테이블 포포'의 세컨드 레스토랑이다. 서해 태안이 고향이라는 주인장 김성운 요리사가 '테이블 포포'에서 손님들이 좋아하던 파스타 메뉴를 따로 빼내 차린 레스토랑이다.

    다들 어디서 듣고 왔는지 가게는 만석이었고 종업원들은 자리 치우고 손님 받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가게 문을 나섰고 얼마 있지 않아 "제일 적당한 가격대 같다"며 오스트리아산 화이트와인 한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가오픈 기간이라고 했지만 어색한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손님 모두 테이블 위에 올라온 접시를 깨끗이 비웠으며 앞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휴일 저녁의 평화로운 외식 풍경이었다.

    언제부턴가 외식 메뉴로 파스타가 후보에 오르기 시작했다. '면'이라는 친근한 소재에 프랑스 음식처럼 소스가 무엇이고 빵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양식이고 특별한 날에 '폼' 잡기도 좋았다.

    옛날 경양식당의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이어 국제화에 발맞춰 크림소스와 토마토소스가 주도권을 잡았다. 미국식으로 접시 가득 소스가 흥건했고 파스타는 속까지 푹 익혀 나왔다. 2000년대 들어 배낭여행 붐이 불었고 사람들은 유럽 본토에 가서 파스타를 맛보고 왔다. 소스는 밀도가 높아지고 자작해졌으며 파스타는 면의 심을 살짝 살린 알덴테(al dente)여야 제대로란 평을 받기 시작했다. 쓰이는 재료도 한우뿐만 아니라 성게알부터 바닷가재까지 폭을 넓혔다. 우니(성게알)와 포르치니 버섯, 양갈비 등 고급 식재료가 나열된 파스타 포포의 메뉴판은 별을 받은 요리사의 '곤조(근성)'가 느껴졌다. 그러나 마르게리타 피자와 봉골레 파스타 같은 익숙한 레퍼토리도 눈에 들어왔다.

    피자는 제쳐두고 파스타와 생선 요리 위주로 식사를 시켰다. 시작은 단새우를 올린 단호박 수프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은 단맛이란 교집합을 사이에 두고 무난히 어울렸다. 버섯과 루꼴라 잎을 섞은 샐러드는 겨울에 맞게 나무를 닮은 짙은 향을 뿜어냈다. 소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넣고 뭉근히 끓인 소고기 라구(ragu) 스파게티는 기름지거나 무거운 맛 없이 산뜻한 뒷맛을 남겼다. 소스를 지나치게 끓이면 산미가 사라지고 느끼한 맛만 남게 된다.

    그러나 바다에서 나서 자란 요리사의 손맛을 느끼려면 해산물 파스타를 시키는 것이 제격이다. 자연산 대하를 반으로 뚝 잘라 접시를 빙 둘러 메운 대하 스파게티는 요리사의 출신을 명확히 알게 해주는 메뉴다. 빈틈없이 껍질을 가득 메운 대하의 하얀 살은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될 만큼 넉넉하고, 오일에 볶듯이 졸여낸 소스는 욕이 나올 정도로 찬 겨울바람을 견디며 몸에 맛을 채운 새우의 진액 같았다. 서해산 꽃게 살을 발라내고 내장을 긁어 버무린 꽃게 스파게티는 마치 묵은 장을 넣어 비빈 것처럼 입에 달라붙는 것이 서양 음식 같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흔히 그러듯 살짝 말려 버터에 익혀낸 서대구이는 우럭젓국 소스를 곁들였다. 살은 쫄깃했고 버터 향이 덧입혀진 맛은 고소하고 또 친근했다.

    나는 식사를 하며 이따금 주방을 쳐다봤다. 상고머리를 한 태안 출신 주인장은 무거운 프라이팬을 쉼 없이 돌리며 음식을 냈다. 그의 시선이 주방 밖 손님들을 향할 때면 어부가 아득히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눈빛이 아련했다.

    음식을 모두 비우고 일어서자 종업원은 끝내 "준비가 덜 되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먼 길을 가듯 수고를 들인 그날의 파스타는 평범하지 않았고 손님의 청에 찬바람을 두려워 않는 친절은 잊히지 않았다.

    주요 메뉴: 고흥 굴 세비체 1만2000원, 성게알 오일 스파게티 2만5000원, 자연산 대하 오일 스파게티 2만8000원. (02)595-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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