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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우연히 내린 베른 역, 인생 여행지를 찾았다

  • 이병철·시인

    입력 : 2018.01.12 04:00

    경유지 여행, 스위스 首都 베른

    곰의 도시
    도시 세운 베르톨트 5세 사냥서 처음 잡은 동물 '곰'을 도시이름으로 정해

    구시가 전체 세계문화유산
    스위스 최대 고딕건물 뮌스터 대성당이 우뚝… 중세로 시간여행 떠난듯

    아인슈타인 하우스
    특허국 직원 시절 상대성 이론 연구했던 천재 과학자 자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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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베른의 슈피탈 거리. 해가 지면 일제히 들어오는 조명이 밤 분위기를 더한다. 거리 끝자락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죄수의 탑’이 있다. /스위스관광청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문장은 이제 관용구가 되었다. 강연호 시인이 쓴 '비단길2'의 시구다. 기존 관념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는 격언에 주로 인용된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쓴다. "잠깐 들른 곳이 인생 여행지가 된다"고.

    스위스의 수도가 취리히 또는 제네바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둘 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국제도시다. 하지만 정작 수도는 따로 있다.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른(Bern)이다. 12세기 말, 도시를 건설한 베르톨트 5세가 사냥에서 가장 처음 잡은 동물의 이름을 도시에 붙이기로 했는데, 마침 곰이 잡혔다. 그 후 오늘날까지 베른은 '곰의 도시'로 불린다.

    베른은 유럽 여행의 대표적인 경유지다. 융프라우를 품은 인터라켄이나 리기산이 있는 루체른, 해발 1043m 고원에 있는 산악마을 그린델발트, 마테호른 자락의 체르마트 등 알프스의 자연경관을 즐기려거나 이미 만끽한 여행객들이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 이탈리아 로마와 베네치아, 프랑스 파리와 남부의 니스, 스위스 제네바, 취리히, 로잔, 바젤 등에서부터, 또는 그 도시들로 드나들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이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프랑스 니스로 가는 기차가 베른 역에 잠시 멈췄지만 내리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베른의 숲과 하늘이 무심히 지나쳐가고, 내 20대도 그렇게 흘러갔다. 기차가 베른 역에 다시 멈춰 선 것은 십 년 뒤 어느 늦가을, 베네치아에서 출발해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이었다. 무엇엔가 이끌린 듯 기차에서 내렸다. 코인라커에 배낭을 보관하고는 무작정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예정에 없던 베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앙역에서 나와 슈피탈거리를 걸었다. 중세시대 베른의 관문이다.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트램의 전선들이 하늘을 조각보로 만들고 있었다. 슈피탈거리에서부터 구시가지를 따라 6㎞에 걸친 석조 아케이드 '라우벤'에서는 반지하 레스토랑을 비롯해 각종 상점이 손님을 기다리고, 돌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이 햇살을 즐겼다. 슈피탈거리 '죄수의 탑'은 이름 그대로 과거 죄수를 가두던 고층 감옥인데, 지금은 베른을 상징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죄수의 탑 주변으로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식인귀 분수'와 '사자의 입을 열고 있는 삼손 분수' 등 눈길을 끄는 조각상 분수들이 작은 물줄기를 뿜고 있었다. 베른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분수가 백 개나 넘게 있다니, 그야말로 '분수의 도시'다.

    1200년대에 만들어진 치트글로게 시계탑은 매시 정각 탑 꼭대기에서 인형이 나와 종을 친다던데, 그 종소리 듣지 못한 채 스위스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인 뮌스터 대성당을 향해 걸었다.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흔한 건물들이 전부 중세시대에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마치 내가 중세의 집시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빛깔과 숨결, 소리와 냄새마저 고스란히 방부 처리된 과거가 오늘을 향해 손짓하는 도시, 베른을 거니는 사람은 누구나 시간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죄수의 탑'
    환한 대낮이지만 뮌스터 대성당이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 육중했다. 웅장한 고딕 건물이 마치 마테호른처럼 눈앞에 솟아 있었다. 무려 472년에 걸쳐 지어진 대성당, 입구는 에르하르트 큉의 부조 작품인 '최후의 심판'으로 장식되어 있고, 내부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은 숭고미를 자아냈다. 수백 년 동안 대성전을 채웠을 간절한 마음들이 하나의 소리로 뭉쳐졌을까. 공기가 웅얼거리는 공명이 엄숙한 음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대성당 근처에 아인슈타인이 젊은 시절 베른 특허국에서 근무하며 거주했던 '아인슈타인 하우스'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집에서 상대성이론을 연구했다. 도시 어디서나 그의 사진과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베른 시민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과학자가 자신들의 도시에 살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자주 눈에 띄는 것은 곰이다. 곰 그림과 조각은 물론이고, 아레강을 건너면 아예 '곰 공원'이 있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을 받아먹으며 한가로이 노는 곰들을 보며, 한없이 조용하고 평온한 이 도시의 이름을 베른이라고 지은 탁월한 센스에 감탄했다.

    아레강변을 따라 걷다가 베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장미 공원'에 올랐다. 장미 공원에서는 허리춤에 에메랄드빛 강을 품은 베른의 구시가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중세의 지붕들과 저 멀리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오후 햇살 속에 하나의 금빛으로 빛나고, 강물은 지금, 또 지금, 끊임없이 내 앞에 놓이는 지금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숨쉬는 이 도시가 빛과 시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을 키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아레강을 건너 슈피탈거리에 오니 날이 저물었다. 계획에 없던 여행, 베른에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밤은 알프스 전통 음식인 치즈 퐁듀 냄새로 고릿하면서도 따뜻했다. 중세의 어느 겨울밤, 베르너오버란트(베른주의 높은 산이라는 의미의 알프스 고지대) 중턱에서 예기치 않은 비바크를 하며 모닥불에 냄비를 걸고 치즈를 끓여 먹던 벌목꾼이 된 것처럼, 나는 이 뜻밖의 하룻밤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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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1m 높이의 베른 대성당 첨탑. 베른 대성당은 스위스 종교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 알프스 전통 음식인 ‘퐁듀’./이병철
    교통: 루체른이나 인터라켄에 머물며 알프스의 자연경관을 즐긴 후 여유 일정에 베른이나 취리히 등에 들르는 것이 보편적인데, 오히려 베른을 거점으로 삼고 철도를 이용하면 루체른, 인터라켄, 바젤, 취리히, 로잔 등 인접 도시까지 1시간 내로 갈 수 있다. ‘스위스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명소: 베른에서 가까운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산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융프라우요흐 우체국으로 유명하다. 루체른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와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 리기산에 오르면 알프스의 만년설에서 눈썰매를 탈 수 있다.

    음식: 베른 시내 중심에 있는 ‘Le Mazot’라는 레스토랑에서 알프스 전통 음식인 퐁듀는 물론 스위스 가정식인 감자 요리 ‘뢰스티’를 맛볼 수 있다.

    숙박: 스위스는 물가가 높다. 환율은 1스위스프랑에 1000원 정도. 숙박 요금도 비싼 편이다. 베른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면 호스텔을 추천한다. 무척 깔끔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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