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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아직도 선명한 총탄 자국… 거기에 새겨진 도시의 역사

  • 황두진 건축가

    입력 : 2018.01.05 04:00

    [황두진의 한 컷 공간] 전쟁의 상처 간직한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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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 신촌역 서쪽 지하보도 입구에 곰보처럼 팬 자국이 선명하다. 지금도 여전한 이 상처들이 곧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도시의 역사는 아닐까./황두진
    승객을 모두 내려놓은 경부선 KTX가 고양 차량기지를 향해 서울역을 빠져나온다. 경의중앙선의 경의선 구간이다. 다만 1904년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건설된 원래의 경의선이 아니라, 1920년대에 추가로 만들어진 우회 구간이다. 만초천을 준설해 만든 노반은 주변에 비해 푹 꺼져 있다. 기차가 왼쪽으로 선회하면서 유명한 '서소문 드리프트'를 하는 동안 철길은 서서히 지상을 향해 올라온다. 서소문 건널목을 지나면 오른쪽에 1971년에 지어진 서소문아파트가 보인다. 그 너머 현재의 통일로 변에 원래 경부선의 종착역이었던 서대문역이 있었다.

    기차가 완전히 방향을 틀어 서쪽을 향한다. 1921년에 지어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터널인 아현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382m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아현리역이 있었던 분지가 잠시 나오고 다시 또 다른 터널이다. 길이 483m, 아현터널과 같은 해에 지어진 의영터널이다. 그 너머는 이화여대 구간으로 원래 열려 있었으나 2001년부터 복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1958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이화교가 철거되었고 기찻길 옆 카페 심포니 또한 추억이 되었다.

    이화여대를 빠져나오자마자 신촌 민자역사가 있지만 대부분의 기차는 여기 서지 않는다. KTX 또한 굉음을 내며 플랫폼을 통과할 뿐이다. 이제 철길은 완연히 지상과 분리되어 허공을 가른다. 신촌역을 빠져나오는 바로 그 지점에 보행자를 위한 지하보도가 필요한 이유다. 고양 차량기지까지는 아직 10㎞나 더 남았다. 노량진역에서 여기까지보다 더 먼 거리다.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의 분수령인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선봉의 미국 해병 제1사단과 국군 해병대는 9월 20일 행주나루를 건넜다. 수색을 지나 서울 서부 지역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9월 25일 연희고지를 탈환, 드디어 서울 시가를 굽어볼 수 있었다. 금화터널이 없던 시절이라 이들은 아현을 넘어 충정로를 지나 드디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된다. 곳곳에 남아 있던 인민군과 교전하면서 총탄 여러 발이 경의선 철도를 받친 옹벽에 맞아 튕겨 나갔다. 지하보도 입구 주변의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서 지워지지 않을 자국 여럿을 남겼다.

    기록이 쉽게 확인되는 아현·의영터널과 달리 길이 86m의 경의선 신촌역 서측 지하보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처음부터 경의선의 일부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말이 지하보도지 보행자 입장에서 보면 그냥 지상의 터널이다. 지하보도가 여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의선이 홍제천을 건너기 전까지 네 개나 더 있다. 사진은 1985년에 찍은 것이다. 몇 년 전 다시 가 보니 온통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분위기는 완전히 변했지만, 벽에 난 생채기들은 여전했다. 일상의 풍경이 알고 보면 생생한 역사의 기록일 수도 있다. 한국의 도시란 이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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