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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30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마음

      입력 : 2018.01.05 04:00

      [삶의 한가운데]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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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안병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몸 어느 부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게 어디인지는 몰라도 전두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해력과 판단력, 기억력까지 망가진 뒤에도 여전히 샘솟는 것을 보면요. 자식은 전두엽에서 효심을 짜낼 뿐이지만, 부모는 우리가 모르는 어느 부위에서 자식 사랑을 분출하네요. 비록 그 두 마음이 시간 차를 두고 엇갈릴지라도….

      홍여사 드림

      시간은 금이라 했다! 아버지는 오늘도 그 말씀으로 아침을 여셨습니다. 아직 동도 트기 전인데 방문이 벌컥 열리고, 새벽에야 꺼진 전등이 사정없이 다시 켜집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저는 생각하지요. 아버지가 이불을 걷어 젖히기 전에 일어나자. 어서 일어나지 않으면 아버지 설교 말씀이 길어진다.

      저는 요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니 말입니다. 그러나 욕실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마주치면 발을 헛디딘 듯 아찔한 시간 차에 놀라곤 합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아니라, 머리숱이 줄기 시작한 중년 남자가 거기 있으니까요. 중년이어야 할 아버지는 허리 구부정한 백발노인이 되어 등 뒤로 유령처럼 쓱 지나가십니다. 일흔아홉이라는 연세 치고도 너무 노쇠하신 모습으로….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병든 아내를 혼자서 너끈히 간병할 만큼 본인 건강은 양호하셨죠.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후로는 모든 것이 급격히 무너져갔습니다. 보행이나 근력도 예전 같지 않고, 정신도 흐릿해지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최근까지도 아버지 걱정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노령과 싸우고 계실 때 저는 사업의 부진으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요. 인정사정없는 남의 돈에 시시각각 목이 졸리는 상황에서는 부모 형제는 고사하고 아내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다 털리고 끝을 봤습니다. 아내하고도 3년을 못 채우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심한 몰골로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갈 곳이 없어지고야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고, 아버지의 소식이 귀에 들어오더군요. 실은 얼마 전에 병원에서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는 누나의 말에, 한편 놀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누나는 우는데 저는 눈물이 안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형이 윈윈의 방안을 내주더군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네가 아버지 곁에서 효도도 하고 너 자신도 추스르며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고요.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말에 무어라 반박할 기운도 없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제 속마음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효도도, 휴식도 무리다! 아버지와 내가 한 공간에 지내다니 생각만 해도 목이 졸린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요?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 혼자 힘으로 겨우 배웠고, 못다 한 배움의 한을 품은 채 거친 세상에서 고생하며 사셨기에 아버지에게 행복이란 곧 배움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시험 점수 잘 받아오라 소리는 한 적이 없습니다. 쉼 없이 배우고 익히고, 책을 보라 하셨죠. 그런데 그 말씀을 제일 안 들은 게 저입니다. 드러누워 공상하고, 아무 종이에나 끄적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형처럼 우등생도 못 됐고, 누나처럼 노력파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낸 이후로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미술이란 부잣집 아들이나 손대는 호사 취미일 뿐, 제가 미술을 하겠다는 건 게으름을 위장하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죠. 아버지의 완고함에 저는 결국 꿈을 접었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버지가 권하는 학과에 들어갔고 그 뒤로 내게 맞지 않는 길을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겁니다. 이런 꼴로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한 지난 1년은 정말 모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30년 전보다 더 엄격한 훈계로 저를 개조하고자 하셨고, 저는 중학생 때보다 더 뿌리 깊은 냉랭함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이 상황에 그나마 만족하는 건 누나와 형일 겁니다. 막내 덕분에 이제는 아버지 걱정 없이 발 뻗고 잔다고 다행스러워합니다. 그리고 한 번씩 제 손에 봉투를 쥐여 주며 덧붙이죠. 너도 가끔 외출도 하고 여자도 만나라고, 언제까지 계속되겠느냐 아버지도 연세가 있는데….

      그럴 때 제 마음은 얼마나 착잡한지 모릅니다. 받을 수도 거절할 수도 없고 고마워할 수도 굴욕스러워할 수도 없습니다. 돈 들고 갈 데도 없고 여자는 이제 무섭습니다. 어디로 가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싶으면서 동시에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고민 속에 잠을 설쳐서일까요?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전에 없이 힘겨웠습니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밀었습니다. 제 가슴 속에는 모터 소리보다 더 삭막한 소음만 반복되고 있었죠. 한계다. 끝이다. 반복이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등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일손을 멈추고 돌아보니 툭 던지시는 말씀. "너 요새 방학이냐? 왜 학교 안 가냐?"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럴 땐 그냥 학생인 척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현실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밀며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미술대학 가거라. 자식이 저 좋은 길로 가야지, 안 그러면 부모 원망한다."

      머리인지 얼굴인지 가슴인지, 온통 얼얼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지만, 저는 그 봉투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옆에서는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절망하던 내게 아버지는 인생의 기회를 주고 있었습니다. 미대에 가서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라고…. 30년 전에 그 말씀을 들었대도 이렇게나 울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아버지를 소파에 앉혀 드리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바닥에 머리를 대자, 참았던 눈물이 솟더군요.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씀은 인생을 낭비한 아들에 대한 질책만은 아니셨나 봅니다. 저의 원망만큼이나 아버지의 회한도 크셨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또한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효도하러 온 것도, 쉬러 온 것도 아니었음을. 집 나간 아들이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뿐이었음을….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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