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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별별다방 홍여사, 소설 쓰던 그 글솜씨로… 우리네 고민을 어루만지다

    입력 : 2017.12.08 04:00

    friday 코너 '별별다방' 안주인

    별별다방은 고민 음미하는 곳
    인터넷 고민 상담 보면 톡톡 튀는 댓글 넘쳐
    하지만 가장 큰 위로는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

    4년간 600편 사연 써내
    모든 사연엔 주인공 존재… 지어낸 얘기는 없죠
    다양한 사연 접하다보니 도가 트이고 말이 느네요

    등단했지만 꿈 접은 '경단녀'
    제 작업공간은 부엌 식탁… 영감 얻는 곳은 싱크대죠
    스물여섯에 소설 쓸 때와는 다른 길을 이제 가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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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여사가 서울 홍파동에 있는 자택 주방의 식탁에 기대 섰다. 그녀가 밥 짓고, 설거지하는 이곳에서 별별다방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홍여사의 글에선 갓 지어 내놓은 고봉밥처럼 넉넉하고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매주 금요일 아침 이 여인은 조용히 다방 문을 연다. 문 앞 서성이다가 아무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사연 한 묶음 풀어놓는 손님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귀를 여는 것이 여인의 몫. 이렇게 들은 손님들의 가슴 뻐근한 이야기, 사무치는 이야기 요리조리 매만져 글로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 이 일을 한 지 올해로 4년째. 신문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는 200여편, 온라인(troom.travel.chosun.com)엔 600여편의 사연이 쌓였다.

    고부 갈등, 부부 싸움, 장모·사위 마찰, 육아전쟁…. 시시콜콜 세상 별별 이야기, 그러나 듣고 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쌓이자 독자들은 열광했다. 때론 뜨끈한 쌍화차 같은 글로 얼얼한 가슴 데우고, 때론 독한 에스프레소 같은 글로 답답한 가슴 확 뚫어준다.

    매주 조선일보 'friday' 섹션에 연재 중인 인기 코너 '별별다방으로 오세요!(이하 별별다방)'의 안주인 '홍여사' 이야기다. 지난 2014년 2월 조선일보 '주말매거진'에서 시작한 별별다방은 지난 6월 friday 섹션으로 자리를 옮겨 신장개업한 이후로도 쭉 문전성시 이룬다. 최근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홍여사 팬 자처하는 이들은 넘치는데 정작 그녀의 정체는 알려진 바가 없다.

    사연 털어놓는 이들 위해 익명을 고수하겠다는 그녀도 '홍여사가 궁금하다'는 독자들 요구 앞엔 약해졌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지면으로만 접했던 그녀를 지난 1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홍파동 한 아파트. 남편, 초등학생 아들 둘과 사는 집이자 별별다방 작업실이다. "설거지할 때면 아이디어 샘솟는다"는 홍여사는 '영감의 원천' 싱크대와 '작업대'인 식탁 사이를 오가며 600여편의 별별다방 이야기를 써냈다.

    ―홍여사란 필명이 독특합니다. 성(姓)이 홍씨인가요?

    "본명은 조민희예요. 74년생."

    ―홍여사와 조민희씨. 어감상 참 멀어 보여요. 홍여사는 왠지 순박한 느낌, 조민희란 성함은 도회적인데요.

    "사람들이 제게 자기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려면 익명이 편할 거라 생각했어요. 필명을 생각하다 친정어머니를 떠올렸어요. 어머니가 홍씨인데 어릴 적 이웃들이 '홍여사' 하고 불러내서 온갖 수다 떨던 기억이 있어요. 마침 한자도 '洪(넓을 홍)'. 귀 열고 마음 열어 넓게 듣는 사람, 홍여사만 한 게 없더군요."

    ―별별다방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별별다방 홍여사
    설거지할 때마다 영감이 샘솟는다는 홍여사에게 ‘영감의 원천’인 싱크대와 글을 쓰는 식탁.
    "'디어 애비(Dear Abby)' 아시지요? 1956~2002년까지 47년간 미국 신문에 연재됐던 유명한 인생 상담 칼럼요. 전공이 영문학인데 그 칼럼으로 종종 공부했어요. 신문사 다니는 지인한테 왜 요즘 신문엔 '디어 애비' 같은 코너가 없느냐 했더니 이제 그 영역은 인터넷이 가져갔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인터넷 커뮤니티는 재미있긴 하지만 굉장히 거칠다. 거기 주인공은 얘기 쓴 사람이 아니라 답글 다는 사람이다. 촌철살인 댓글이 쾌감을 주지만 감정을 가감 없이 배설한다. 신문이라면 한 사람의 얘기에 좀 더 귀 기울이고 답을 함께 생각해 보는 코너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기회가 제게 왔어요."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연을 말하는 형식이 흥미롭습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이미 느끼는 위로가 있어요. 내 이야기를 원 없이 쏟아냈을 때 후련함을 느끼고, 남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었을 때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는 모양입니다. 다만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품격이 있을 때 가능하지요. 할머님, 여사님, 아줌마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풀어지고요. 요즘은 사람의 체취를 느끼며 얘기하는 게 사라지고 있어요. 과거의 따뜻한 향취를 잠깐이나마 작은 곳에서 살릴 순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진짜 같은 가짜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이야기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우리 별별다방이 이문을 남기는 방식이죠."

    ―눈물 쏙 뺐다 배꼽 잡게 하는 사연들은 어디서 길어 올리나요.

    "모든 이야기엔 실제 주인공이 있어요. 제가 100% 지어낸 스토리는 없어요.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이런 현장감이 안 나지요. 커뮤니티나 손 편지로 보내는 사연을 받아 분량을 정리하고 개작하는 정도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에겐 사전에 허락을 구하고요. 지금까지 제가 쓴 이야기를 토씨 하나까지 다 기억한다고 자신합니다. 쓰기만 한 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단골손님들 반응까지 체크하며 내용을 되새기고 되새기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듣는 사연을 실을 때도 많아요. 친구나 학부모 만나 수다 30분 떨면 15매 분량 얘기는 몇 개씩 나와요. 저란 걸 알면 화들짝 놀라실 분 많으실 텐데 이 자리 빌려 미리 말씀드립니다. 다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주변에서도 정체를 모르나요?

    "처음엔 부모, 형제한테도 안 알렸어요. 우리 가족 얘기도 많이 썼거든요. 1년쯤 돼 알리고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 내렸지요. 대학 동창이 한번 전화한 적이 있어요. 글인데 제 말투가 그대로 담겨 있다면서."

    ―자기소개에 '천성적으로 남 얘기 듣기 좋아하고, 남의 일 거들지 못해 안달이다'라고 돼 있어요.

    "애만 키우다 가끔 네이트판, 다음미즈넷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봤어요. 별별 고민 다 있더군요. 가끔 답을 달았는데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반응을 했어요. 소소한 소일거리가 됐지요. 늘 집에 붙어 있으니 친구들도 툭하면 늘 저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하는 거예요. 사지 건강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데 어디 안 가고 맨날 집에 붙어 있는 애, 연락하면 늘 받아주는 애였던 거죠. 어느 날 보니 제가 사람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돼 있었어요."

    ―홍여사 워밍업을 한 셈이네요.

    "어릴 때 사주 보면 무당 팔자라고 나왔어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신병도 없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하는 짓이 무당이더라고요. 무당들이 손님들 고민 듣고 빙의돼 응어리 풀어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제 업인가 싶었지요(웃음)."

    ―별별다방은 홍여사를 빌려 고민을 나누는 장이군요.

    "고민을 해결해드리는 곳이라기보다는, 고민을 한 잔 커피처럼 음미하며, 각자의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드리는 공간입니다. 사연은, 사례자의 것이 아니라 읽는 분들 각자의 것입니다. 답을 달지 않고 사연 던지는 형식을 취한 이유이지요. 답을 안 적는 또 다른 이유는 제 성격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제 별명이 '황희정경부인'입니다.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옳다 하고, 저 말 들으면 저 말도 옳다 하는 사람이라서요. 현답은 댓글에서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사연 보고 갔다 글솜씨에 반한 이들 여럿입니다. 등단했다고 들었어요.

    별별다방 홍여사
    신춘문예 당선작 ‘우리들의 작문교실’ 등을 묶어 2001년 출간한 홍여사의 작품집.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분에 당선했어요. 스물여섯에 등단했으니 꽤 어린 나이에 작가라는 꿈의 문턱까지 간 셈이죠. 그런데 2003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꿈을 포기했어요. 스스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삶을 선택한 거지요. 육아, 일 두 가지를 다 할 성격이 못 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첫 아이가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어서 애한테 매달리다 보니 7~8년이 후루룩 갔어요. 늘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 '집순이'였어요(웃음)."

    ―작가로서 스토리텔링 능력이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은데요.

    "혼자 글 수련했던 경험과 재주가 도움은 됐겠지만 별별다방과 작가 경력의 직접적인 연결점은 없어요. 저보다 훨씬 잘 쓰는 작가는 넘칩니다. 저는 다른 경력을 시작한 거라 생각해요. 예전에 소설 쓸 때 전위적인 소설, 문장에 목숨 거는 소설이랍시고 엉성하게 써냈더니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별별다방을 통해선 별것 아닌 표현 하나에 별의별 반응이 다 나오고, 별의별 유사 체험담을 다 듣게 되니, 타고난 '둔짜'가 아닌 이상 저절로 도가 트이고 말이 느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나 수필을 써서는 그런 희한한 경험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별별다방에 제가 감사하는 이유죠."

    ―신문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서도 팬이 많습니다.

    "별별다방 커뮤니티엔 연령대가 높은 분이 많은데 포털엔 젊은 독자가 많습니다. 양쪽 반응이 참 달라 흥미로워요. 어르신들은 '어허' '떼끼' 같은 추임새 넣어 훈계조로 말씀하세요. 그런데 욕설은 없고 점잖으시죠. 포털의 젊은 층은 기발한 촌철살인 댓글로 저를 빵 터지게 해요. 댓글 자체가 작품이지요. 비방, 막말 난무할 때도 있고요. 뭔가 왁자한 분위기예요. '홍여사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이 여자 지금 이거 말할 처지가 아닌데' '이거 국정원이 관리한다는데' 같은 황당한 악플 보면 상처도 받고요. 제가 대범한 인간형은 아니라서요."

    ―보람 느낀 순간을 꼽자면요.

    "남편과 갈등 겪는 지인 사연을 듣고 약간 개작해 올렸을 때가 있어요. 글 나오고 만났는데 자기 얘긴 줄 모르고 '어머 나 같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가 봐. 그냥 남편 용서하기로 했어' 하는 거예요. 그럴 때 보람 느끼지요. 또 한번은 인터넷 못 하시는 80대 할머님이 손 편지를 보내오셨어요. 당신 인생의 마지막 재미라고. 인터넷 세상에서 배제된 그런 분들이 제겐 특별한 독자랍니다."

    ―사연이 워낙 생생하니 감정 이입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저희 칼럼 별명이 생겼어요. '발암다방'. 저는 '발암여사'. 사연 보니 답답해 암 걸릴 것 같다고요. 그런데 막장은 아니라고 해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거지요. 그래서 답답하다고. 막장이면 '이혼하고 끝내' 해버리면 될 텐데 말이죠."

    ―주변 싱글 남녀들이 칼럼 보고 결혼하기 더 두렵다고 합니다.

    "하하. 제일 죄송한 분들이에요. 하나 말씀드리죠. 여긴 고민 상담 무대예요. '나 이렇게 행복해요'가 없어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누가 자랑하는 거 듣는 거예요. 결혼으로 힘들고 불행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니 힘들어 보이는 거지요. 오해 마시길요. 저는 결혼하라는 주의예요. 결혼해서 크게 얻은 건 없지만 다시 태어나도 또 할 거예요. 이왕이면 다른 사람하고(웃음)."

    ―가끔 보면 남편 향한 내용도 있어 보이던데요. 남편 반응은요?

    "안 보는 척해요. 자기 얘기일 것 같은 불안감이 있는지.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여보, 당신이 촉발한 얘기가 들어 있다고 해도 함량은 50% 미만이고, 구성은 나의 역량에서 나온 거야.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요.'"

    홍여사는 위로인 듯, 잔소리인 듯, 바가지 같은 애매모호한 고단수의 말을 남기고 작업대로 돌아갔다. 주부와 작가의 삶이 중첩된 그녀의 식탁으로.

    홍여사 프로필

    본명 조민희

    1974 경북 김천 출생

    1997 연세대 영문과 졸업

    2000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우리들의 작문교실'로 당선

    2014~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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