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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도둑쥐의 수박 '서리'

  •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입력 : 2017.12.08 04:00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겸재 정선 '서과투서'

    예전에 '서리'라는 말이 흔했다. 참외 서리가 있었고 닭서리가 있었다. 그것은 범죄가 아닌 관용의 범위 내에서 능놀 수 있는 여유로 간주됐다. 지켜야 할 한계도 분명했다. 영리가 아닌 놀이와 잉여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주인의 오지랖과 너그러움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불문율이 우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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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의 ‘서과투서’. 한 쌍의 쥐가 큼지막한 수박을 훔쳐먹고 있다. 먹고 먹히는 광경이 슬프지 않다.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으려고 움켜쥔 곳에선 씨가 돋지 않으리라. / 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의 대가였지만, 이런 사소함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대자연과 인간의 삶만 옹립한 것이 아니라, 쥐와 같은 미물의 생태에서도 삶의 여줄가리를 얼러내곤 했다.

    그림은 수박밭에 숨어든 쥐들을 보여준다. 설치류가 쏠아대는 저 수박은 검은 줄무늬가 없는 걸로 봐서 무등수박이나 흑수박 정도가 아닌가 싶다. 쥐들에게 먼저 발견된 수박은 아랫도리부터 갉아진다. 재밌는 것은 수박의 표정이다. 쥐들에게 먹히고 있는 수박은 우울하고 고통스럽다기보다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다. 쥐들이 수박을 쏠아 먹는 기쁨이 저 수박한테 전이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먹잇감을 발견한 쥐의 기쁨과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주는 수박의 마조히즘(masochism)적 즐거움이 동시에 일어나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수박 줄기며 넝쿨, 더듬이 줄기의 활달한 꼴까지 생감 있게 그려진다. 수박밭에 더부살이하는 다른 잡초도 놓치지 않고 끼어둔다.

    서리는 도둑질이 아니라 나눔의 행태를 삶의 놀이로 재구성한 것이 아닐까. 다른 무엇에게 내 것의 일부를 덜어주는 것. 겸재의 너그러움은 수박의 속살을 분홍빛으로 그려 정감을 더한다. 진회색의 쥐들도 그 수박의 빛깔과 호응하듯 청회색으로 달리 보이기도 한다. 흔히 약육강식은 폭압적인 분위기를 띠지만, 겸재의 이 그림은 누가 더 강자인지 승자에 대한 분별을 다시 뚱기는 맛이 있다. 한껏 수박으로 배를 채울 쥐가 강자인가, 내어주고 가만히 먹히는 수박이 승자인가.

    수박과 풀과 들쥐 두 마리는 더불어 사는 것들 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물음과 순정한 자연의 이치를 제시한다. 배가 불룩해 어쩌면 뒤뚱거리며 돌아갔을 쥐들을 뒤로하고 수박은 쥐들이 남긴 까만 씨앗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에 파종해 놓은 것이 별이라면 땅에 뿌리는 별이 또한 씨앗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자신을 덜어준 내가 또 다른 씨앗으로 스며든다. 작디작은 수박씨에서 나온 수박은 얼마나 넉넉하고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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