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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섬… 해변마다 아름다움이 물거품처럼 터져나왔다

    입력 : 2017.12.01 04:00

    [키프로스 여행] 美를 품은 '지중해 섬나라'

    한겨울에도 수온 20도
    남동쪽 해안도시 아야 나파
    유럽인 몰려드는 휴양지
    하트 모양으로 구멍 뚫린
    절벽 위엔 연인들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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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프로스 해안도시 아야 나파에 있는 사랑의 다리. 석회암 절벽의 연한 살결과 청량음료처럼 반짝이는 바닷물은 이곳을 상징하는 색이다. 키프로스는 영어식으로 ‘사이프러스’라고 발음한다. 사이프러스 나무의 원산지이기도 하나, 나라 이름의 연원은 지하에 풍부한 구리(copper)에서 왔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름다움은 물거품에서 태어난다. 파도가 공기를 알처럼 뱄다가 터뜨리면 지중해성 기후는 서풍을 몰고 와 그 파열의 영롱을 내륙에 실어나른다.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키프로스 연안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할 때, 그것은 신화라기엔 너무도 실화다. 실제로 연안에서 아름다움이 자꾸 태어났고 여정 내내 전국에서 관측됐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미가 이 먼 이국에서 가장 현재적으로 살아 있다. 섬나라 키프로스. 공항을 나서자마자 라르나카(Larnaka), 철학자 제논의 고향이다. 자연과 합치된 이성을 주창하며 훗날 아테네로 건너가 스토아학파를 창시했으니, 오히려 그 지성의 내력이 그리스에 앞선다. 철학의 소금이었던 그의 고향에 크고 아름다운 염호(濂湖)가 있다. 비가 내려 물이 차면 홍학 떼가 날아와 호수의 색을 바꾼다.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다. 염호 너머에 7세기 세워져 전 세계 3대 무슬림 성지로 자리 잡은 할라 술탄 테케(Hala sultan tekke), 또 멀지 않은 곳에 9세기 그리스정교 건축물 성(聖) 라자루스 교회가 있다. 무함마드와 그리스도의 거리감이 낯설지 않은 풍경에서 신은 이곳의 자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온화한 날씨 덕에 해변의 물빛은 젊다. 차로 30여분을 달려 남동쪽 끝의 해안 도시 아야 나파(Ayia Napa)로 간다. 유럽에서 알아주는 휴양지, 12월에도 수온이 20도에 육박하는 니시(Nissi) 해변 등을 품고 번성하는 동네. 1963년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스 시인 게오르게 세페리스가 "대천사가 어망으로 그러모으자 물고기처럼 전율하는" 풍경으로 묘사한 곳이다. 코노스 만(灣)을 향해 파도는 부서지며 투명을 얻는다. 지오피리 투 코라카(Giofyri tou Koraka) 같은 해식 동굴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들끓다가, 돌출한 절벽 밑이 하트 모양으로 뚫린 '사랑의 다리'에서 바닷물은 푸딩처럼 한 숟갈 뜨고 싶은 질감이 된다. 연인 한 쌍이 그 위에서 꼼짝을 않는다. 케이프 그레코(Cape Greco) 반도로 날아드는 69종의 철새라든가, 400여 종의 야생화와 수목을 구경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으로도 이름 높은데, 낮은 구릉을 따라 형성된 2㎞ 정도의 '아프로디테 길'을 걷다 길에서 파는 2유로짜리 작은 씨 없는 수박을 베어 물어도 좋다. 낮달이 반쪽의 즙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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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파포스로 밀려오는 저 파도의 거품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고 한다. 파도가 자갈을 밀어내며 그릇 씻는 소리를 낸다. ②파포스 디오니소스의 집에 있는 타일 모자이크. ③파포스‘왕들의 무덤’전경. ④니코시아의 키프로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그리스 조각상./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사실 키프로스는 그리스보다 터키에 훨씬 가까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였기에 로마나 오스만제국 등 강대국의 침입이 잦았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역시 총독으로 파견된 베네치아 장군이었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식민 역사를 청산했으나, 14년 만에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뉘었다. 여러모로 한국을 연상케 하는데, 밥 먹을 때 그 유사성은 심화된다. 이곳의 코스 요리 메제(Meze)는 한정식만큼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지는데, 찐 달팽이, 항아리에서 종일 쪄낸 양고기 클래프티고(Kleftiko), 후식으로 모과 절임까지 한참을 먹어야 상을 물린다. 그리고 이곳의 대표 브랜디 지바니아(Zivania)가 있다. 와인으로 이미 만취한 뒤에도 "영혼을 정화한다"며 이 40도짜리 술을 권하는 주민들. 익숙한 제안이 우습고 정겹다.

    분단의 풍경은 수도에서 가장 극적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수도 니코시아(Nicosia). EU 가입국인 그리스계 남(南)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터키 주둔 지역인 북(北)으로 나뉘는 탓에, 육로로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을 해보려는 관광객들이 도시 중심의 경계 초소를 찾는다. 니코시아는 3개의 문을 지닌 거대한 15세기 베네치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원형을 일자로 가르며 뻗어 있는 번화가 레드라(Ledra) 거리 주변으로 상점과 술집이 밀집해있다. 통일은 쉽지 않은 것이나, 노천 주점에서 라이브 밴드가 그리스 노랫말을 흥얼거릴 때 그 목소리는 어느덧 불콰한 객들의 합창으로 돌변한다. 티슈를 뽑아 공중에 던지며 대동단결한다. 그리스 고대 석상에 희미하게 번지는 아르카익(Archaic) 미소처럼 니코시아의 밤이 취한다.

    서늘한 계절감을 느끼려면 고산지대 트루도스(Troodos)로 가야 한다. 제일 높은 산봉우리가 해발 1951m 올림푸스인데, 그리스에 기거하던 열두 신이 여름마다 휴양온다 한다. 겨우내 눈이 많이 내려 지붕이 넓고 처마가 땅에 닿을 만큼 내려온 이곳 특유의 건축 양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 1502년 지어져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파나기아 포디투 교회(Church of Panagia of Podithou), 11세기 비잔틴 건축의 정수인 지붕 덮인 성 니콜라스 교회(Aios Nikolas tis Stegis)가 그렇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피크닉 장소로 사랑받는 플라타니아(Platania). 천연기념물인 야생양 무플런(Mouflon)이 이곳에선 희박한 동양인을 만나자 당황한 눈치다. 고도 760m 카로파나이오티스(Kalopanayiotis) 마을에 가 100년 된 민박집에 묵는다. 고랭지 채소처럼 잠들었다 깨니 토요일 오전. 11세기 수도원(Monastery of Agios Ioannis Lampadistis)에서 예배가 열리고 있다. 노래에 가까운 독경이 이 건물을 문화재에서 삶의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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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트루도스의 파나기아 포디토우(Panagia Podithou)교회, 라르나카의 성 라자루스교회, 저녁 무렵 불 밝힌 트루도스의 아기오스 이오아니스 램 바디스티스수도원(Agios Ioannis Lambadistis), 니코시아 번화가 레드라 거리, 니코시아의 간이 식 당‘페트로스 키오스크’에서 현지 주민이 샌드위치 를 먹고 있다, 1917년 문을 연 호텔‘아트라차 마운틴 스위트’./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제 고대 유적의 본산으로 갈 것이다. 고고학의 도시로 손꼽히는 남서쪽 끝 파포스(Paphos). 올해 EU가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한 곳이다. 여덟 개의 이름 없는 무덤이 모인 '왕들의 무덤'을 지나 로마 유적터 '고고학 공원'으로 향한다. 부서진 바실리카, 기둥과 요새 등이 한적한 산책로와 함께 보존된 이곳의 백미는 단연 디오니소스의 집. 무너져내린 저택의 응접실 밑면을 장식하고 있는 34개의 타일 모자이크 때문이다. 2세기 무렵 연마한 색색의 방사형 돌멩이가 촘촘히 모여 사냥꾼과 신과 짐승과 기하학의 무늬를 완성한다.

    멀지 않은 곳에 '아프로디테 바위'라 불리는 페트라 투 로미우(Petra tou Romiou)가 있다.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외곽 도로 가드레일 너머의 풍경을 그냥 지나칠까 큼지막한 표지판이 여럿 설치돼 있다. 지하 계단으로 해변에 닿으면 탁 트인 바다에 떠 있는 상아색 바위. 그것은 때로 키프로스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깎아낸 여인의 웅크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극히 사랑하면 그것이 돌덩이여도 피와 살을 얻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문가였던 이윤기 번역가는 생전에 "나는 아프로디테가 아니라 피그말리온의 꿈과 진실을 믿는다"고 쓴 적이 있다.

    여정은 키프로스 제2의 도시 리마솔(Limassol)에서 마무리된다. 쿠리온(Kourion)의 기원전 2세기 원형 극장에서는 지금도 연극이 상연되고, 항구의 오랜 성벽을 둘러싸고 고급 리조트와 신식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그 현재형의 과거 너머로 현지 맥주 키오(Keo) 공장이 보인다. 병을 딴다. 돌돌돌, 잔에서 태어나는 흰 거품. 이걸 마시면 도시의 풍경은 또 달라질 것이다.


    여행정보

    니코시아로 향하는 국내 직항편이 없어 항공권에 따라 러시아 모스크바 혹은 영국 런던, 독일 뮌헨, 폴란드 바르샤바 등을 경유해야 한다. 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에 경유지에서의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치안이 안전한 나라여서 밤에도 안심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기간산업이 관광업이라 환경오염이 거의 없다. 겨울철에도 한국의 가을 날씨라 야외 활동하기 편하다. 유로화를 쓰고, 영어가 잘 통한다.

    입장료가 있는 곳은 고대 유물과 관련된 관광지가 대부분. 파포스 ‘왕들의 무덤’은 2.5유로, ‘고고학 공원’은 4.5유로. 음식 가격은 합리적인 편이다. 다만 1963년 들어선 니코시아 해산물 레스토랑 ‘파라가디’(paragadi.com.cy) 같은 고급 음식점의 수블라키는 12.5유로, 성게 샐러드 39유로 수준.

    프로타라스 해변을 면한 ‘선라이즈 펄 호텔’(sunrisepearl.com) 같은 초현대식 고급 숙박업소뿐 아니라, 트루도스 지역에 문 연 지 올해로 100년 된 ‘아트라차 마운틴 스위트’(atratsa.com) 같은 운치 있는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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