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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골짜기따라… 시간도, 풍경도, 마음도 천천히 흐른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맥 사이로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달린다. 시속 30㎞, 느린 속도로 만나는 오지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새롭다.
가속만 하기 급급했던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기에 겨울의 봉화는 더없이 좋다. 분천역 산타마을의 설렘이 기다리고 있으니.

    입력 : 2017.12.01 04:00

    봉화 기차여행… 시속 30㎞로 만나는 겨울 풍경

    분천~철암역 왔다갔다
    창문 탁 트인 기차 타면 험준한 산맥과 낙동강
    두 눈에 가득 담겨 한겨울 설경, 특히 장관

    간이역마다 매력 '뿜뿜'
    분천역 주변 '산타마을' 크리스마스 느낌 물씬
    양원역엔 먹거리 가득… 승부역은 트레킹 명소

    협곡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맥 사이로 휘몰아치며 흐르는 낙동강은 세월의 깊이만큼 깊고 험한 골을 만들었다. 이 골짜기를 따라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달린다. 시속 30㎞, 느린 속도로 만나는 오지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새롭다.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장엄한 자연의 대서사시가, 순백의 계절이 스쳐간다.
    느리게 달리는 열차를 따라 백두대간의 절경과 겨울 풍경이 흘러간다. 분천역에서 출발해 협곡을 달리는 백두대간협곡열차는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선사한다. 수원에서 온 이현수(10), 이현우(7)군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느리게 달리는 열차를 따라 백두대간의 절경과 겨울 풍경이 흘러간다. 분천역에서 출발해 협곡을 달리는 백두대간협곡열차는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선사한다. 수원에서 온 이현수(10), 이현우(7)군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기 위해 경북 봉화의 분천역까지 가는 길은 단연코 순탄치 않다. 고개를 넘고 꼬불거리는 길을 달리며 조금씩 속도를 늦춰야만 한다. 그래서일까. 천천히 달리는 열차의 속도가, 느리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편안하기만 하다. 가속만 하기 급급했던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기에 겨울의 봉화는 더없이 좋다. 협곡의 설경부터 기차 여행의 낭만, 분천역 산타마을의 설렘이 기다리고 있으니.

    백두대간 협곡 따라 달리는 낭만 기차

    오후 1시 50분 분천역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 승차 안내 방송이 역사에 울려 퍼졌다. 오늘 우리를 협곡으로 데려갈 열차가 철로에 멈춰 서 있었다. 이국적인 핑크색 객차와 백호를 연상시키는 기관차가 시선부터 사로잡는다. 오랜만의 기차 여행이기도 하지만 색다른 열차에 대한 기대감에 출발 전부터 기분이 들뜬다. 열차에 올라탄 뒤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알록달록한 열차 내부엔 창밖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이를 오롯이 즐기기 좋은 창가 일렬 좌석, 온기 가득한 정겨운 난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협곡이 아니라도 좋다. 이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어디라도 새로울 것만 같다.

    1 산타마을로 꾸며진 봉화 분천역, 산타클로스가 반겨준다./봉화군 2 소박한 간이역과 루돌프, 산타클로스가 함께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한겨울 분천역 풍경./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1 산타마을로 꾸며진 봉화 분천역, 산타클로스가 반겨준다./봉화군 2 소박한 간이역과 루돌프, 산타클로스가 함께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한겨울 분천역 풍경./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분천역을 출발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비동승강장, 양원·승부역을 지나 강원 태백 철암역까지 하루 3번(주말) 27.7㎞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협곡(Vally)의 약자이자 모양을 상징하는 'V'를 붙인 'V-train'으로 불린다. 2013년 4월 개통 이후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와 함께 인적이 뜸해진 간이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색 여행 코스이자 경북, 강원 일대를 연계하는 교통편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덜커덩, 드디어 열차가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분천역을 벗어난 열차가 깊은 골짜기 속으로 미끄러져 갈수록 차창 밖 풍경이 달라진다. 겨울이 깊어지기 시작한 협곡의 압도적 절경이 어느새 창밖 가득하다. 눈이 펑펑 내려 하얗게 변할 풍경을 상상해보니 새벽에 내렸다 금세 녹은 눈이 야속해진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도 쉬지 않고 따라온다. 초록이 싱그러운 봄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중간중간 터널도 지난다. 어둠 속에서 야광 색으로 반짝거리는 열차 내부 풍경은 또 다른 구경거리. 승부역 지나기 전 가장 긴 터널에선 리듬 타기 좋은 댄스 음악도 흘러나온다. 수원에서 아들 현수(10), 현우(7)군과 함께 온 이재만(45)씨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에 색다른 기차 여행까지 할 수 있어 멀리서 찾아온 보람이 있다"며 "아이들에게도 잊지 못할 여행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두 아들이 곁에서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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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역에서 시작되는 ‘낙동강 세평하늘길’ 트레킹 코스에 밤새 내린 흰 눈이 쌓였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산타마을 분천역, 하늘세평 승부역

    봉화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는 건 저마다 이야기와 추억거리가 가득한 간이역이다. 분천역(汾川驛)을 출발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양원, 승부역에서 10분간 정차해 역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간이역에서 내려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분천역은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출발점이면서 '산타마을'로도 이름난 곳이다. 2014년 12월부터 분천역을 중심으로 일대를 산타마을로 조성했는데 입구부터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눈사람이 반겨주는 풍경이 색다르다. 소박한 간이역과 이국적인 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루돌프 썰매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60대 여고 동창생들이 인증샷 찍으며 소녀처럼 깔깔댄다. 오는 23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크리스마스트리와 눈썰매장, 얼음썰매장, 문화 공연 등도 즐길 수 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과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 사이에 있어 양원역(兩元驛)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역은 우리나라 최초 민자 역사다. 기차역이 없어 승부역에서 내려 걸어가던 주민들의 잦은 사고로 주민들이 힘을 모아 탄원서를 제출해 1988년 간이역 허가를 받아 마련한 작은 역사다. 주말이면 간이역엔 먹거리, 농산물 장터가 열린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잠시 정차할 때 내려 막간 쇼핑과 요기를 즐기기 좋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 불리는 승부역(承富驛) 앞에는 과거 역장이 지었다는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고즈넉한 간이역 풍경만큼은 정겹기 그지없다. 승부역은 낙동정맥 트레킹(5.9㎞)의 출발점으로 트레킹족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승부역에서 양원역(양원승부비경 구간 5.6㎞),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체르마트 구간 2.2㎞), 비동승강장에서 분천역(분천비동 구간 4.3㎞)까지 총 12.1㎞의 '낙동강세평하늘길' 트레킹 코스는 백두대간협곡열차보다 더 가까이 백두대간의 협곡과 봉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코스다. 기차 여행과 트레킹 코스를 함께 즐겨보는 것도 봉화를 새롭게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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