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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손가락 쪽 빨며 먹은 바삭하고 짭조름한 닭날개

  • 정동현 셰프

    입력 : 2017.12.01 04:00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고된 주방 시절 달래준 치킨윙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마른 요리사를 믿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좋은 요리사는 당연히 음식을 좋아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살이 찔 것이란 뜻이다. 꽤 논리적인 설명이다. 유명한 요리사들 배를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6년 전 호주 멜버른에서 한창 요리할 때 나는 정확히 10㎏이 빠졌다. 당최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졸린 눈으로 출근하면 어젯밤 동료가 남기고 간 '해야 할 일' 리스트가 빽빽했다. 그것을 종일 해나가려면 커피 한잔 마시며 쉴 틈이 없었다. 뜨거운 커피도 원샷, 점심은 아예 먹어본 기억이 없다.

    식사는 기껏해야 하루 한 끼. 점심과 저녁 서비스 틈새시간에 웨이터도 요리사도 창고 구석 같은 곳에 주저앉아 접시 하나 무릎에 받쳐 놓고 식사했다.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리기 직전 양상추, 불이 붙을 것만 같은 기름 덩어리 고기, 못을 박는 데 써도 될 것처럼 단단한 빵, 죽이 되기 직전의 퉁퉁 불은 파스타 같은 것을 먹으며 일용할 양식을 주신 고객님과 고용주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만 먹고 살겠는가? 영국에도 해 뜨는 날이 있고, 미세 먼지 가득한 한반도에도 갠 날이 있듯이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헤이, 오늘은 스페셜 메뉴야."

    눈이 파랗고 더벅머리를 한 아일랜드 출신 리시가 비밀 이야기하듯 나에게 속삭였다. 술 앞에서만 미소 지을 뿐(아일랜드 사람들이란) 평소 과묵하고 진지했던 리시의 귀엣말에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린애처럼 한껏 기대됐다. 리시는 윙크하며 말했다.

    "치킨윙이야."

    주방에는 닭 부산물이 넘쳐났다. 일단 닭 육수를 이틀에 한 번꼴로 끓였다. 서양 주방에서 닭 육수를 얼마나 많이, 자주 쓰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거의 모든 요리에 닭 육수를 넣어 감칠맛을 잡는다.

    한국에서야 닭다리 하나를 두고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연공서열을 운운하지만, 서양 요리에서 닭가슴살 이외 부위를 손님에게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은 닭다리와 닭날개는 모아뒀다가 스태프밀(staff meal) 즉 직원 식사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이 된 것이다.

    리시가 부산히 움직였다. 얼려둔 닭날개를 쪘다. 녹였다가 바로 튀길 수도 있겠지만 제일 적합한 방법은 아니다. 닭날개에는 뼈가 둘 있다. 뼈는 열전도율이 낮고 따라서 뼈 주변 고기는 잘 익지 않는다.

    물론 무작정 오래 튀기면 다 익는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들고 살도 퍽퍽해진다. 닭을 튀기기 전 삶거나 찌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일반 통닭집에서도 닭을 먼저 압력솥에 쪄서 익혀놓았다가 튀기는 경우가 많다.

    아예 다른 방법도 있다. 여러 번 튀기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허름한 중국집 안에 '미션 스트리트 푸드(Mission Street Food)'란 이름의 임시 레스토랑(식당 속 식당인 셈이다)을 차려 대박이 난 중국계 미국인 요리사 앤서니(Anthony)의 레시피는 이렇다.

    먼저 낮은 온도(대략 140도)에서 살짝 한 번 튀기고 냉장고에서 식힌다. 2시간 정도 충분히 식힌 다음 다시 같은 온도에서 튀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냉장고에서 식힐 때마다 닭날개의 껍질 세포벽이 부서지고 그에 따라 물이 더 많이 증발하면서 더 바삭한 껍질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만한 수고를 할지 말지는 알아서 결정하도록 하자.

    리시는 찌고 튀겨 양념을 묻힌 뒤 그릴에 굽는 것으로 그 수고를 대신했다. 양념은 이자카야에서 많이 쓰는 데리야키 소스였다. 나는 중국식으로 생강과 고추를 넣은 닭 육수에 살짝 데친 배추 요리를 냈다. 여기에 점심 서비스에 내고 남은 식은 밥을 곁들였다.

    그날 저녁 모든 식당 식구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닭날개를 먹었다. 바삭하고 부드러우며 짭조름한 닭날개를 먹으며 소스에 밥을 비비고 생강·고추향이 밴 배추 잎을 올렸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졌으며 아무리 땀 흘려도 모자란 시절이었다. 꿈꿀 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쿠이신보: 시중 닭날개 튀김은 거의 모두 태국 회사에서 나온 냉동 제품을 튀겨낸다고 보면 된다. 닭날개 맛을 제대로 보려면 서울 합정동 꼬치구이 전문 이자카야 '쿠이신보'에 가보자. 소금간만으로 간간하게 구운 닭날개를 먹으면 절로 맥주 한잔을 찾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어른임이 실감 난다. (02)33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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