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흔적·중국의 10대 해안… 위해 교외 여행지

  • 트래블조선

    입력 : 2017.11.20 07:00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성산두(成山头)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차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적산(赤山)으로 향했다.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적산법화원이 있는 곳. 통일신라시대 산동 반도 지역에서는 신라인의 왕래가 빈번하여 곳곳에 신라인의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新羅坊)과 사찰인 신라원(新羅院)이 있었다. 적산법화원은 장보고가 세운 신라원 중 가장 대표적인 사찰로 당시 당나라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물과 음악의 향연, 관음전 분수쇼

    적산법화원의 가장 큰 볼거리인 관음전 분수쇼는 하루에 2~3회만 열린다.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관음상과 그 아래에 있는 동자상과 사천왕상 그리고 관음상 주위를 지키고 있는 용 모양의 조각상들까지 하나 같이 그 만듦새가 근사하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관음상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장중한 음악에 맞춰 천천히 돌아가는 관음상 주위로 물기둥과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자 여행자들의 입에선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공연이 최고조에 이르러 분수가 20미터 높이로 솟구치는 장면에서는 폭죽처럼 터지는 물방울의 모습에 그야말로 압도되는 기분이다. 차분한 불교 음악과 함께 공연이 마무리되자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산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을 되찾는다.   

    해상왕의 재림, 장보고기념관

    장보고는 당나라로 넘어가 무인으로 큰 활약을 펼친 후 퇴역하고 이곳에 적산법화 원을 세웠다. 그 후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면서 해상권은 물론 신라와 일본, 당 사이의 무역까지 주도하며 해상왕의 명성을 얻게 된다. 지금의 적산법화원은 당나라 시기 헐렸던 것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 서 양국의 우호를 위해 과거의 기록을 되짚어 다시 중건한 것이다. 당시 장보고기념관은 중국 정부가 공식 승인한 최초의 외국인기념관으로 문을 열며 중국에서 장보고의 위상을 확인한 바 있다.  

    장보고기념관의 입구를 지나 나타나는 돌다리와 연못, 버드나무와 예스러운 건물들이 하나 된 풍경으로 어우러지고 8미터 높이에 달하는 장보고의 동상은 늠름하고 또 위엄이 넘친다. 5개로 나누어진 기념관을 천천히 둘러보며 먼 옛날 동북아시아의 해상패권을 쥐락펴락했던 위대한 인물의 자취를 뿌듯한 마음으로 되새겨본다. 장보고기념관 바로 위에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적산명신의 거대한 좌상이 있다. 적산명신은 앞면은 스님의 모습을, 뒷면은 장보고 장군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손바닥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바다가 잔잔해지라는 뜻. 덕분인지 적산 아래에 있는 석도 바다는 언제나 평온하다. 이곳에서 장보고의 숨결을 어딘가 품고 있을 황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해상을 주름잡던 용맹한 장군의 기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성산두는 위해의 동쪽 끝에 있는 지역으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에 있 는 중국 땅이자 중국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중 국 10대 해안으로 손꼽힐 정도로 그 풍경 또한 아름답다고 하니 거리가 멀 어도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중국으로 가는 길

    어마어마한 중국 땅에도 끝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주 맑은 날에는 인천이 보인다고 하는, 중국 동해안의 끄트머리에 있는 성산두가 그곳이다. 위해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성산두까지는 1시 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지도를 보니 단순히 땅끝만이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를 함께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적산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 해안길을 따라 첫 번째로 닿은 곳은 거대한 태 양신이 지키고 있는 해안가. 절벽보다 키 큰 태양신의 동상과 사당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동쪽 바다의 끝인가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보다 남쪽에 있는 절벽을 가리킨다. 어림잡아도 반 시간은 걸릴 것 같은 거리. 뭐든 크고 웅장하게 만드는 중 국다운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크기만 큰 게 아니라, 그 넓은 땅에 볼거리도 끝이 없다.

    여러 신전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을 지나면 자금성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기와 건물이 나타나고 수많은 선녀상과 ‘퇴계 이황’, ‘허준’ 같은 우리나라 위인들의 조각상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동상을 줄지어 세워 놓은 복도형 건물도 지나게 되는데 중국의 역대 위인과 성인들은 물론 세계의 위인 동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성산두까지 거리가 제법 멀어 전기 자동차가 여행자들의 이동을 돕고 있지만, 불로초를 찾아 성산두를 다녀간 진시황을 떠올리며 성산두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하늘의 끝, 천진두(天盡頭)
    중국 역사서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은 제위기간동안 성산두를 두 번 다 녀갔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이곳에 영생을 가능케 해줄 불로초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영원을 꿈꾸던 왕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때문에 성산두에는 진시황이 성산두를 순찰할 때 지은 행궁인 시황묘와 해안 누각인 망해정 그리고 다양한 모습들 의 진시황 동상들까지 진시황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끊 임없이 나아갔던 진시황과 당대의 뛰어난 책사였던 이사 그리고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까지 다녀간 서복이 나란히 서서 먼 바다를 응시하는 동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중국대륙에서 가장 해가 일찍 뜨는 곳’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비석을 지나, 하늘의 끝이라는 뜻의 천진두(天盡頭) 바위 앞에 서본다. 과연 중국에서 손에 꼽힐 만한 멋진 풍경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일까. 바다 위로 기암괴석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는 모습에 동해안의 해안 절경이 포개진다. 출렁이는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며 덧없이 하얀 포말로 흩어진다. 밀려나는 파도에 바다 건너편의 이들에게 안부를 띄워본다. 

    · EDITOR·PHOTO 박건우
    · 기사 제공: 여행매거진 GO ON(☞ GO ON 포스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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