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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그냥 실컷 웃어보세요

    입력 : 2017.11.10 04:00

    [철사로 만든 세상] 테리 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展

    '색깔 있는 계란만!(Colored Only)'이라 적힌 바구니 앞에 흰 계란이 씩씩대며 서 있다. 인종차별을 역으로 풍자한 '왕따 계란'이다. 땅콩은 뭐가 억울한지 자기 몸을 반으로 가른 채 결백을 외친다. 제목은 '까발리기'인데 '배 째라!'는 악다구니가 함께 들려온다. 말썽꾸러기 계란은 엄마에게 드릴 감사 카드를 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엄마는 이미 구운 통닭이 돼버렸다. '너무 늦은 만남'.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울 수 없으니까 웃기는 것이 블랙 유머"라고 했다. 철사 하나로 요즘 전 세계 네티즌을 웃기고 울리는 메이커 아티스트 테리 보더(52)는 블랙 유머의 이런 정의를 가장 잘 구현하는 작가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그 익살스러운 작품들이 한국에 왔다.

    모든 사물은 살아 있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2월 30일까지 열리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전은 철사를 접고 구부려 일상 사물을 인간 캐릭터로 만들어 풍자하는 '벤트 아티스트' 테리 보더의 한국 첫 개인전이다. 비스킷, 식빵, 땅콩, 계란, 바나나, 숟가락, 손톱깎이 등 잡동사니를 의인화해 현대인의 삶을 익살스럽게 풍자한 작품 80여 점이 사진과 입체, 애니메이션으로 관람객을 만난다.

    한국 첫 전시를 위해 아내 주디와 함께 서울에 온 테리 보더는 "내 작업은 모든 사물은 감정을 지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아이들처럼!" 종일 잡동사니들을 관찰하다 영감이 떠오르면 철사로 사물의 팔다리를 뚝딱 만들어 이야기에 걸맞은 포즈를 잡게 하는 식이다. 주디는 "주방에 있는 과일과 채소를 요리로 만들어 먹어도 되는지 늘 고민한다"며 웃었다. "테리 작품의 주재료니까요." 식탁, 소파 같은 소품은 원달러숍에서 구한 미니어처다. 주디가 "테리를 처음 만났을 때 장난감 가구를 갖고 노는 모습에 기겁했다"고 해서 폭소가 터졌다.

    /‘벤트 아티스트’ 테리 보더.
    '미친 시대'에 던지는 블랙 유머

    어릴 때부터 비 오는 날이 좋았다. 혼자 방에 앉아 마음껏 그리고 만들었다. 대학에선 사진을 전공했지만 첫 직업이던 광고 사진 일은 재미가 없었다. "구도를 잡는 것부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제빵 기술을 배워 식료품점에 취직했다. 빵과 과일, 채소를 보고 있자니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레몬을 가지고 만든 '로렌스의 외로운 사랑'을 블로그에 올리자 '대박'이 났다. 두 쿠키가 서로를 향해 팔 벌리고 있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은 연인들을 열광시켰다. "마트에 가면 아이디어가 솟아요. 일단 내가 즐거우니까 재미난 작품이 나오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댓글을 달며 행복해하니 흐뭇하죠."

    이번 전시엔 라면, 곶감, 대추 등 한국적 사물을 의인화한 작품도 여럿 선보인다. "물이 끓을 때 라면이 뗏목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죠. 대추는 피부에 좋은 열매라던데, 실제 보니 대추 자신은 쪼글쪼글해서 한참 웃었답니다." 테리 보더는 "내 작품은 그냥 즐겨달라"고 했다. "정말 미친 시대(crazy time)이니까요. 이 혼돈 속에서 잠시 도망치세요. 그냥 실컷 웃어보세요."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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