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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100년 된 철도 관사村, 50년 된 대흥동 성당… 낡아서 외면받다 낡아서 주목받네

    입력 : 2017.11.10 04:00

    [ 대전 원도심<原都心> ]

    '근대 도시'로 주목받는 대전

    지금의 대전을 만든 '철도'
    20세기초 경부선 지을 때 노동자들 묵었던 관사
    40여 채 그대로 남아 있어 작가 창작촌으로 활용 중

    근대건축물의 寶庫
    르네상스식 조선식산은행 화려하면서도 기품 넘쳐
    모던 양식 대흥동 성당 건축사적 가치 높아

    카페·갤러리로 재탄생
    구한말 대전부윤 관사 등 낡은 건물 허물지 않고
    빈티지한 공간으로 활용… 젊은이들 발길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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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대흥동 문화거리에 있는 옛 산호다방. 건물 외벽에 그려진 흰 스웨터 벽화를 촬영하려고 젊은이들이 몰린다. ② 소제동 철도관사촌. 좁디좁은 골목이 무한대로 이어진다. ③ 옛 충남도청. ④ 소제창작촌. 철도관사촌 내 빈집을 고쳐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⑤ 옛 충남도청 계단. / 김종연 영상미디어기자
    대전은 그저 경유지였다. 열차 타고 부산이나 광주로 갈 때 잠깐 쉬어가던 역. 그랬던 대전이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여행 목적지)으로 부상하고 있다. 근대도시로서 대전이 지닌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면서다.

    이들의 여행은 대전 원도심(原都心)으로 집중된다. 대전역부터 옛 충남도청까지 한 변이 1㎞인 정사각형 꼴을 한 지역으로, 한때 대전에서 가장 번화했던 중심지였다. 충남도청이 이전하고 유성·둔산 등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낡은 구(舊)도심으로 쇠락하고 쇠퇴했다. 하지만 재개발되지 않은 덕분에 100년 전 대전 탄생 당시 그리고 1960~ 1970년대 들어선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러한 건물들에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전 원도심은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세련된 여행지로 재탄생하고 있다.

    철도 역사 숨 쉬는 '소제동 철도 관사촌'

    [대전 원도심]
    대전부윤 관사를 개조한 카페 ‘안도르’.
    '모던 시티'(근대도시) 대전을 오롯이 이해하려면 여행은 소제동 철도관사촌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대전역 대합실을 나와 왼쪽 문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 직진한다. 사거리에서 주차장을 끼고 좌회전하면 '철갑길'로 이어진다. 철갑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왼쪽으로 낡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좁은 골목을 따라 야트막한 목조주택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개·보수했는지 집과 담장이 삐뚤빼뚤하고 기울기도 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양지 바른 곳에 엎드린 고양이가 이따금씩 "야옹야옹" 우는 소리뿐, 버려졌다시피 조용하고 한산하다.

    [대전 원도심]
    대전은 철도 덕분에 탄생한 도시이다. 일제는 1901년 경부선 철도공사를 시작한다. 애초 계획에는 경부선 노선에 대전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전쟁 준비 중이던 일본은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쳐야 했다. 당시 충남도청이 공주에 있었지만, 유림을 중심으로 한 지역유지들이 철도가 지나가는 걸 극구 반대했다. 일제는 허허벌판이던 대전을 선정해 철도를 건설한다. 대전역 뒤 소제동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철도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할 관사를 짓는다. 이것이 소제동 철도 관사촌이다.

    [대전 원도심]
    6·25 당시 폭격을 용케 피한 관사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사촌 한복판에 있는 '청양슈퍼' 주인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말단 직원들 살던 사택이고, 관사촌 외곽에 축대를 쌓아 번듯하게 지은 기와집은 간부급들이 살던 사택"이라고 했다. 나무 전봇대, '금성사' 간판, 지금은 없어진 충청도 소주 '선양' 포스터 등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된 옛날 모습들이 녹슨 채 간직돼 있다. 한자리에서 60여 년 세월을 보낸 '대창이용원'도 정겹다.

    낡았지만 독특한 이 풍경 속에 소제창작촌이 자리한다. 2012년 대전시 철도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레지던시. 빈집을 고쳐 소제창작촌(작가 창작 공간), 재생공간 293(전시 공간), 시울마실(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한다.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니 조용히 둘러봐야 한다. 재생공간 293은 개방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고 방문하는 게 안전하다. 소제창작촌 010-5263-7729, www.facebook.com/sojaechangjakchon

    근대 건물 몰려 있는 '대흥동 문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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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드리려 모은 두 손을 형상화한 대흥동성당.(위) 옛 산호다방에 들어선 빈티지 카페 ‘여전히 잘’.
    대전 원도심 여행은 대흥동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전역에서 나와 옛 충남시청 방향으로 중앙로를 따라 걷는다. 대전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가장 수려하다고 평가 받는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등록문화재 19호)이 왼쪽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양식을 차용한 건물. 광복 후 한국식산은행, 1954년 한국산업은행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안경 가게로 쓰이고 있어 아쉽다. 목척교를 지나면 왼쪽에 옛 대전부청사(大田府廳舍)가 있다. '대전부'는 일본식으로 광역시를 일컫는 말. 1976년 대대적 보수공사를 거치며 옛 모습은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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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쪽 사진) 옛 충남도청 본관 내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아랫쪽 사진) 대전 명물 ‘성심당’ 빵집.
    대흥동 문화거리는 대전부청사 뒤에 있다. 과거 대전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다. 1990년대만 해도 공공기관과 상권 이전으로 침체에 빠졌지만, 지금은 다시 북적댄다. 2006년부터 도시 재생사업을 꾸준히 진행한데다, 젊은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1960~80년대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대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새롭게 활용하거나, 오래된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낡은 건물을 개조해 빈티지한 카페나 갤러리로 이용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끌 뿐 아니라 가장 많은 이들이 촬영하는 명소는 옛 산호다방이다. 건물 외벽에 흰 스웨터 벽화가 그려져 있다. 2012년 대전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전의 결과물. 당시 그려진 벽화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이것만 상징처럼 남았다. 산호다방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여전히 잘'은 건물 구조를 고스란히 살린 빈티지한 매력이 돋보인다. 이 카페처럼 오래된 상가 건물이나 주택을 리노베이션 한 카페로는 대한제국 시대 대전부윤(지금의 대전시장) 관사를 개조한 안도르·초록지붕·희나리·하이드아웃, 오래된 여관 주차장을 개조한 문화공간 파킹 등이 있다.

    옛 충남도청 본관(등록문화재 18호)은 대전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이 잘 꾸며져 있다. 교직에 몸담다 은퇴 후 도슨트로 봉사하고 있는 서정원(78)씨는 대전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6·25 때 대전이 15일 동안 불타는 걸 봤지요. 인민군을 저지하려고 대전역을 유엔군 전투기가 폭파했죠. 1930년대 잘 지은 건물이었는데 아쉽지요. 지금 대전 원도심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1970년대 도시계획에 따라 지어진 것들입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등록문화재 100호)은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부활했다. 국내 최초로 근대건축물을 개조해 복합문화센터로 만들었다. 우아한 곡선의 초록지붕을 이고 있는 대전여중 강당(대전문화재자료 46호)은 대전갤러리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로비하우스'나 '카우프만 하우스(낙수장)'를 연상케 한다는 충남도지사 공관(대전문화재자료 49호)은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매일 정오와 오후 7시면 어김없이 종소리를 울리는 대흥동 성당은 대전의 랜드마크. 1962년 완공 당시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1970년대까지도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전의 랜드마크였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듯한 형상에 성당에 일반적인 벽돌 대신 시멘트로 마감한 모던 양식으로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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