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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눈 맑게 하듯 훤칠하게… 때론 憧憬 같은 아우라를 풍기다

  • 유종인 시인·미술평론가

    입력 : 2017.11.10 04:00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유종인의 영혼의 미술관]
    김환기 화백의 전면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뜬금없이 들려오는 한밤중 전화벨 소리는 가슴에 천둥으로 웅얼댄다. 그 전화가 잘못 걸려온 것이거나 지인의 술버릇에서 기인한 희떠운 수작이라면 그래도 그다음 순간의 적막은 평화롭다. 이 평화는 몇 근(斤)쯤 나갈까, 몇 평(坪)쯤 될까. 너무 드물어 오히려 영혼이 잠시 그 살결을 보인 것만 같을 때도 있다. 인색하지만 생생한 감각을 보여줄 때의 평화는 오히려 애잔하고 쓸쓸하게 멀리 있는 사람을 떠올려준다. 그 정경 속에 우리가 무심히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이 영혼이 웅숭깊게 눈뜨는 서슬임을 알 때가 있다.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추상(抽象)은 추상이라는 비구상적 관념에도 정갈하고 구체적인 느낌을 환기한다. 형태를 구성하되 정감을 먼저 밑돌처럼 괸다. 눈을 맑게 하듯 훤칠하고 때론 점잖은데 묘한 동경(憧憬) 같은 아우라가 감돈다. 정돈된 추상이라면 어폐가 있겠지만 혼란스러운 추상이 아니라 말쑥하고 간정된 추상이다. 이미 한바탕 혼돈의 여울물에 빠졌다 나온 생각들이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심연의 색채로 감싼다.

    화면은 촘촘하게 꽉 찼는데 답답하지 않다. 다정하고 쓸쓸한 존재의 방석들이 이마받이하듯 모인 것 같다. 옛날이라는 기억의 집에서 주춧돌이나 구들돌을 빼 이리저리 단풍 들여 열거해 놓은 것 같다. 더러 여울물에 몸담아서 시린 물소리가 아직도 몸에 감긴 징검돌도 있다. 중국의 유명한 서화가 판교 정섭(鄭燮·1693~1765)의 육분반서(六分半書)를 화필로 얼러놓은 것 같다.

    방고래 구들돌을 놓듯 화가는 구상적(具象的)인 추상으로 안친다. 영원으로 뜸 들이러 가는 너덜겅의 정다운 돌들 같다. 시원(始原)의 그 물소리 들으러 가는 서덜길의 목마른 돌들 같다. 여울물 소리 오래 들어서 말문이 트일 법한 돌들도 같다. 그러나 그 열거(列擧)가 돌이 아니면 어떠랴. 나와 당신과 눈 맞추고 글썽이는 하루하루가 모두 영원의 나들이 같다.

    황망히 떠난 사람의 소식을 들을 때, 그이는 바로 내 곁이나 우리 옆에 있던 호흡이었다. 어떤 슬픔은 흘려 떠나보내기보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마음 으늑한 곳에 옹립해두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말을 웅얼거리는 사람은 선량한 날을 살 수 있겠다. 그 눈망울은 썩지 않고 먼 훗날 어느 별의 호흡에 더해지지 않을까. 때로 옛날로부터 걸어온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먼 훗날을 떠올리며 삼세(三世)의 노래를 불러보듯 눈으로 보는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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