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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지금 나는 '셰프 1세'

셰프 김지운(31)은 재벌가(家) 출신이라는 큰 산을 이고 있다. 그런데 집안 돈으로 외식 사업에 손대는 3세가 아니라, 주방에서 직접 요리하고 손님 맞는 오너 셰프다.
이탈리아 식당 '쿠촐로'를 시작으로 5개 이탈리아 식당을 열었다. 하나같이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 맛집으로 손꼽힌다. 실력이 배경을 추월했단 말도 나온다.

    입력 : 2017.11.10 04:00

    [셰프 김지운]

    요리하는 쌍용건설 회장 아들

    도련님의 취미 생활?
    주방서 직접 요리하며 손님 맞는 오너 셰프
    처음 가게 열 때만 아버지께 1억여원 빌려

    알 사람들은 아는 식당
    이태원·청담동에 연 5개의 이탈리안 식당
    예약 밀릴만큼 인기… 내년엔 해외 한식당 개업

    인생 키워드는 '행복'
    남에게 행복 안겨준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삶
    돈·권력은 행복 찾는데 도움보다 방해될 때 많아

    배경이 넘어야 할 큰 산인 사람들이 있다. '흙수저'는 흙수저라서, '금수저'는 금수저라서. 셰프 김지운(31)은 재벌가(家) 출신이라는 큰 산을 이고 있다. 쌍용건설 김석준(64) 회장 둘째 아들이다. 그런데 집안 돈으로 외식 사업에 손대는 3세가 아니라, 주방에서 직접 요리하고 손님 맞는 오너 셰프다.

    지난 9월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쿠촐라 테라짜’ 주방에서 스파게티를 건네는 김지운 셰프. 그는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 한 점 줄 수 있는 삶이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느냐”며 “그런 삶을 위해 셰프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쿠촐라 테라짜’ 주방에서 스파게티를 건네는 김지운 셰프. 그는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 한 점 줄 수 있는 삶이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느냐”며 “그런 삶을 위해 셰프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년 반 전 용산 해방촌에 연 이탈리아 식당 '쿠촐로'를 시작으로 그 사이 5개 이탈리아 식당을 열었다. 하나같이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 맛집으로 손꼽힌다. 이쯤 되니 실력이 배경을 추월했단 말도 나온다.

    '쿡방(요리하는 방송) 전성시대'라며 셰프 나오는 예능 넘쳐나지만,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걸 빼면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조용히 보여주고 싶었단다. 두 달 전 청담동에 연 '쿠촐로 테라짜'에서 출근복이자 작업복이라는 하얀 요리사 가운 차림의 그를 만났다.

    ―2년 새 식당 5개를 열었다. 무서운 성장세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똑같은 메뉴로 했다면 프랜차이즈와 다를 바 없다. 5개 식당에서 콘셉트, 느낌 다른 메뉴를 개발하려 분주히 노력했다. 첫 식당 '쿠촐로'는 늦은 밤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카페, '마렘마'는 동네 작은 식당, '볼피노 서울'은 격식 있는 레스토랑, '볼피노 부산'은 그 셋을 망라한 음식점, '쿠촐로 테라짜'는 이탈리아식 포차라 보면 된다. 다섯 묶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음식은 다 보여준 것 같다." (쿠촐로는 이탈리아어로 '강아지'를 뜻하고, 마렘마와 볼피노는 강아지 종류 이름이다.)

    ―셰프란 직업 앞에 '재벌 3세'라는 수식이 늘 붙는다.

    "아버지가 회사 오너도 아니고,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 '재벌 3세'가 아니라 '셰프 1세' 아닌가(웃음). 처음 가게 낼 때 아버지께 차용증 쓰고 1억4000만원을 빌렸다. 원래 요리 유학을 떠나려고 했던 돈인데 식당을 직접 하면서 배우는 게 낫다 싶었다. 6개월 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

    ―투자자가 있단 얘기도 있던데.

    "아니다. 아버지 이름과 같은 한 창투사 대표가 투자했다는 기사가 잘못 나간 적이 있다. 그분 아들이 마침 아는 형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너희 식당에 투자한 적 없다던데' 하고 연락 왔다. 정말 미안했다."

    ―'팔자 좋은 도련님의 취미 생활'이라는 폄하도 있다.

    "'쟤는 돈 벌든 말든 관심 없다. 재미로 한다'는 시선이 있단 걸 안다. 그런데 난 진짜 죽기 살기로 덤비는 거다. 1원이라도 아끼고 제대로 쓰려고 직원들과 머리 맞댄다."

    ―셰프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경험이 모여 삶이 된다고 본다. 죽을 땐 돈도 명예도 필요 없고 기억만 가지고 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경험을 하나라도 줄 수 있다면 그만큼 값진 일이 있을까. 음식으로 그 일을 하고 싶었다."

    ―이탈리아 음식을 선택한 까닭은.

    김지운 셰프는 한식 빼고 거침없이 구사할 수 있는 음식 언어가 이탈리안이라 이탈리아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위는 가자미 봉골레 파스타, 아래는 손으로 만든 우동 굵기 ‘피치’면으로 만든 파스타. / 김지운
    김지운 셰프는 한식 빼고 거침없이 구사할 수 있는 음식 언어가 이탈리안이라 이탈리아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위는 가자미 봉골레 파스타, 아래는 손으로 만든 우동 굵기 ‘피치’면으로 만든 파스타. / 김지운
    "최종 꿈은 외국에서 한식당을 여는 거다. 그 전초 무대로 한국에서 식당 하는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열정 프로젝트'였다. 한식 말고 거침없이 구사할 수 있는 음식 언어가 뭔지 생각했더니 이탈리안이더라."

    ―행복한가.

    "재벌 2, 3세 친구들이 많다. 위법 행위를 하는 재벌가 자제는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재벌 2, 3세면 쉽게 간다고 생각한다. 부모 기대, 회사 눈치, 사회 이목, 주위 시선 의식하면서 열심히 하는 친구도 많다. 편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비교당하고 지탄받는 삶이다. 나처럼 고집 세고 개성 강한 사람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런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게 어찌 보면 행운이다. '행복 공식'에서 돈과 권력은 도움보다는 방해 요소가 될 때가 많다."

    ―첫 식당 열었을 때 아버지 반응은?

    "'짜다!'가 첫마디였다. 시끄럽고 어둡다고 잔소리 하셨다(웃음)."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는 심정이었으리라.

    "예약은 손님과의 약속이니 철저히 관리하라 하셨다. 기업 총수가 부실 경영에 책임지는 방법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데 아버지는 (쌍용건설) 워크아웃 이후 여전히 회사 대표를 맡고 계신다. 아버지 개인의 네트워크로 이뤄진 프로젝트가 많아 채권단에서 총수로서 잘못은 인정하되 경영하도록 둔 특별 케이스였다. 신뢰 덕분이었던 거 같다."

    ―자유롭게 자랐나.

    "아버지는 엄하기로 따지면 대한민국 상위 1%에 들어가실 분이다. 군대(해병대) 가보니 딱 알겠더라. 아버지가 집에서 해병대 스타일로 나를 훈육하셨다는 걸. 내가 대를 이어 해병대 간 걸 자랑으로 여기신다. 군대에선 취사병으로 일하다 통역병으로 차출됐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윌리엄 왕자 직속 후배'라는 게 알려져 화제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영국에 유학 갔다. 어쩌다 보니 윌리엄 왕자와 이튼칼리지, 세인트 앤드루스대,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동문이 됐다. 이튼 때는 봤는데 학년 차이가 나서 대학 땐 마주칠 일이 없었다. 해리 왕자는 한 학년 위여서 자주 봤다. 참, 지난해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된 제임스 램스던(Ramsden)이 이튼 동기다. 기숙사 살면서 같이 어울려 밥해 먹고 했는데 이렇게 둘 다 셰프가 될 줄이야."

    ―영국에서의 경험이 셰프의 삶엔 어떤 영향을 줬나.

    "논문 쓰면서 자료를 엄청 많이 모아 그걸 토대로 인용하고 분석해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는 훈련을 받았다. 무지한 상태에서 결론을 내릴 순 없다. 음식도 그렇다. 다른 셰프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게 있다면 리서치 같다. 이종국(미쉐린 2스타 한식 셰프) 선생님께 한식을 배운 거 빼고 독학으로 음식 공부를 했기에 그 과정이 더 중요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음식 공부를 하는가.

    "리서치용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이 있다. 마이클 화이트, 낸시 실버튼 등 스타 셰프와 유명 레스토랑 팔로하면서 세계 음식 흐름을 본다. 요리책만 500여 권 읽었다. 한 권에서 1%만 배울 수 있어도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유일하게 후회되는 게 대학 간 거다. 아마 대학 안 갔으면 어렸을 때부터 세계 돌면서 레스토랑에서 인턴했을 거다. 다만 그랬다면 지금쯤 기를 쓰고 '미쉐린 3스타' 받으려고 했을 거 같다. '노마'(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세계적 레스토랑)를 경쟁 상대로 삼고(웃음). 지금은 미쉐린 스타 받는 것보다 직원(90명)들이 좋은 경험할 수 있는 회사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맛있는 식당'보다 '행복한 직장' 만들기가 우선이라고?

    "중간·막내 직원이 '갑', 손님이 '을', 나를 포함한 관리자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손님과 대면하는 직원이 관리자로부터 존중받으면서 일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그들이 손님을 왕으로 모실 수 있다. 외식업에선 직원을 귀하게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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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셰프 나오는 예능 넘쳐나지만,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걸 빼면 김지운 셰프는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조용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논문 주제가 한식이다.

    "음식이 곧 역사라 봤다. '한식의 세계화'가 주제였다. 뉴욕, 런던 등에 있는 20여 개 해외 한식당을 취재했다."

    ―결론이 무엇이었나.

    "첫째,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제이미 올리버 같은 '인포메이션 커뮤니케이터(information communicator)'가 필요하다. '영어 잘하는 백종원'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한단 얘기다. 둘째, 공짜 반찬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 원가가 너무 많이 들어 다른 음식과 경쟁할 수 없다."

    ―다음 도전은 뭔가.

    "내년 해외에 한식당을 열 계획이다. 꿈이 이뤄지는 거다."

    ―김지운표 한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한식에서 느끼는 경험치를 정교하게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고깃집 화로 앞에 둘러앉아 삼삼오오 고기 구워 먹는 경험, 음식 떨어지면 주문 벨 누르는 행위, 테이블에 앉아 폭탄주 제조…. 얼마나 재미있는가. 테이블에 믹솔로지스트(mixologist·칵테일 제조자)가 있는 거 아닌가."

    김지운 셰프

    1986 서울 출생

    1999 영국 이튼칼리지 입학

    2005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 국제정치학 전공

    2009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

    2012 해병대 입대

    2015 이탈리아 식당 쿠촐로(용산동), 마렘마(한남동) 오픈

    2016 볼피노(강남구 신사동) 오픈

    2017 볼피노 부산, 쿠촐로 테라짜(청담동)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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