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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여성 인권 보장하면 '인구 절벽' 해결될까

  • 곽재식 과학자·SF 작가

    입력 : 2017.10.13 04:00

    [곽재식의 안드로메다 통신]

    캐나다 여성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78)의 소설 '시녀 이야기'는 인구 급감에 대처하고자 정부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는 세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소설에는 정부가 여성을 강제로 가정마다 배당해 관리하는 디스토피아가 묘사된다. 정작 저자는 해당 소설이 'SF'로 분류되는 걸 원치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시녀 이야기'는 그 강렬한 소재 탓에 사회 비판 의식이 강한 SF 소설의 예로 종종 언급된다. 최근엔 TV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1980년대 SF 소설에서 상상한 출산율 감소 원인은 오늘날 대부분 해결됐지만 저출산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은 신생아실의 아기 침대가 비어 있는 모습.
    1980년대 SF 소설에서 상상한 출산율 감소 원인은 오늘날 대부분 해결됐지만 저출산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은 신생아실의 아기 침대가 비어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소설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우리나라 인구 감소 대책으로 "여성 인권 정책을 추진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식의 홍보 문구를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성평등과 여성 인권 보장 정책에 적극 찬성하긴 하지만, 그걸 출산율로 연결해 함부로 홍보하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책으로 인구 문제가 쉽게 극복될까 싶기도 하고.

    여성의 인권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출산율이 높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여성도 인권이 보장돼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성평등을 지지하는 까닭은 그렇게 하면 인구가 늘어나 꾸준히 세금과 연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사회 구성원이 불공정한 차별에 시달리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 정책을 함부로 출산율과 연계해 선전하는 건 위험하다. 여성 인권 정책으로서의 출산율 상승 홍보는 결국 출산율 문제가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을 굳힐 위험이 있다. 같은 이유로 육아 지원 대책을 "엄마를 위한 복지"식으로 선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육아가 엄마만의 일인가? 여성과 출산, 육아를 한 덩어리로 묶어 생각하는 관점이 점점 두터워지면 나중엔 출산·육아를 하지 않는 여성은 이런 정부 지원의 배신자로 비칠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성 인권 정책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 출산율이라는 숫자가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성평등 정책은 몇 가지 조치와 법령, 행정 지원으로 어느 선까지는 눈에 띄게 신속히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출산율은 늦은 결혼에서 높은 집값까지 사회 문화의 온갖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가깝다. 성평등 정책은 시급히 시행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출산율은 그만큼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지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출산율을 목표로 잡는 것은 시작부터 여성 인권 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주저앉게 만들 함정일지도 모른다.

    소설 '시녀 이야기' 속에서는 출산율 감소 이유가 심각해진 공해와 새로운 질병 탓으로 암시된다. 그것이 1980년대 캐나다 작가가 상상한 출산율 감소 원인이었다. 반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공해를 발생시키는 전통적 2차 산업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국민의 신체적 건강은 어느 때보다 나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출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출산율 증가라는 목표에 어떤 환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구 정책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고 보는 선진국조차도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오히려 당장 닥친 초저출산을 한동안 이어질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구 절벽 시기를 버텨내 나갈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다음 세대 인구가 점점 줄어들면서, 사라지는 수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미래의 언젠가는 특별 공휴일을 몇 개 더 지정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소비를 진작시킬 수 없는 분야도 나타날 것이다. 그걸 대비하지 않고, 그저 여성을 향해 "좀 더 잘해줄 테니 아이를 낳아달라"는 식의 생각은 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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