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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선 트렌드 보여줬더니… '간 라거펠트' 소릴 듣네요

지난 2009년 2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방송을 통해 독특한 말투와 억양, 몸동작이 화제를 모았던 간호섭(48)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미국 오리지널판에서 역시 멘토로 등장하는 뉴욕 파슨스대학의 팀 건 교수와 비교하며 '팀 간'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팀 간 어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입력 : 2017.10.13 04:00

    패션을 논할 때 꼭 필요한 남자

    한 브랜드의 디렉터로 선보였던 '우주 화보'
    올봄 샤넬 콘셉트와 같아 "트렌드 원인 고민한 결과"

    3수끝에 디자인과 들어가 스물여덟에 교수 부임
    2009년 케이블 방송서 촌철살인 '멘토'로 주목

    교수라고 현장 안 가면 무슨 아이디어 나오겠나
    학생들에 기회 열어주려 더 많은 협업 작업 참여해

    때는 지난 2009년 2월.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신진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첫 회 방송이 끝난 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 뜨거워졌다. 짧은 시간 안에 즉석에서 뚝딱 의상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의 신묘한 솜씨가 눈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화제는 주로 이 남성에게 집중됐다. "한국판 '팀 건'의 탄생인가요?" "여성스러운 말투 중독성 있는데요." "이분은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간호섭 교수가 서울 방배동에 있는 부모님 집 테라스에 앉았다. 그는 우면산 기슭이 맞닿은 이곳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간호섭 교수가 서울 방배동에 있는 부모님 집 테라스에 앉았다. 그는 우면산 기슭이 맞닿은 이곳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주인공은 간호섭(48)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지원자들의 '멘토'를 맡아 작업 과정마다 '지적'과 '조언' 사이를 오가는 그의 독특한 말투와 억양, 몸동작이 한몫했다. 다소 높은 톤으로 조근조근 인자한 듯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시즌4까지 진행하면서 "백일잔치 등장하는 무지개떡" "친환경 수세미" 등 촌철살인 비유를 날리며 시청률 제조기 역할을 했다.

    미국 오리지널판에서 역시 멘토로 등장하는 뉴욕 파슨스대학의 팀 건 교수와 비교하며 '팀 간'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팀 간 어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브라운관에서는 다소 '낯선' 이의 등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미국 드렉슬대학 패션디자인 석사를 졸업한 뒤 미국 패션 회사인 코킨(Kokin)과 도나 카란(Donna Karan) 등을 거치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코킨은 2001년 당시 대통령 부인인 로라 부시의 취임식 모자를 디자인해 이름을 날린 회사다.

    올 초 선보인 루이까또즈의 우주 콘셉트 화보. / 간호섭 인스타그램
    올 초 선보인 루이까또즈의 우주 콘셉트 화보. / 간호섭 인스타그램

    스물여덟에 동덕여대 교수로 부임한 뒤 아모레 퍼시픽 화장품 '오딧세이' 스포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캐릭터 브랜드 '뿌까'와 스포츠 브랜드 EXR의 협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다방면에서 일했다. 덕분에 그에겐 '멀티페서(multi+professor)'란 별명이 붙었다.

    그랬던 그에게 최근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샤넬의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이름을 딴 '간 라거펠트'다. 그가 프랑스 브랜드 루이까또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선보였던 우주 콘셉트 화보가 지난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샤넬이 자체 제작한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장면보다 한발 앞서 제작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간호섭 교수는 우주 콘셉트 화보가 담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간 라거펠트'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한다'는 '프로젝트 런웨이'의 유명 대사를 응용해보겠다. 패션계에서 앞으로 무엇이 박수를 받겠는가.

    "디자이너들의 꿈은 목 뒤의 라벨을 보지 않고도 소비자가 누구 작품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입맛이 쉬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고유성이 있다면 결국은 살아남을 것이다. 요즘 해외 컬렉션에서 화제가 된 의상이나 소품을 보면 마치 광장시장 밍크 담요나 방콕 야시장에서 파는 시장바구니 같은 제품이 많다. 어떤 식으로 상업성을 녹여 조리했는가가 디자이너의 성패를 가른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AI'를 '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일컫지만 난 'Artistic Intelligence'라고 말하고 싶다. 디지털 세상의 콘텐츠를 채우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예술지능'일 것이다. 많이 느끼고 많이 경험하라."

    ―패션계 인물은 많지만 각종 미디어의 코멘트는 거의 당신 입을 통해 나온다.

    "트렌드를 설명하기 앞서 트렌드의 원인이 무엇인가 고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여름 교수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연구원으로 미국 하버드대에 갔다. 패션 이외의 예술 분야를 폭넓게 배우고 싶었다. 남들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나만의 정체성을 찾는 게 목표다."

    ―3수 끝에 성균관대 의상디자인학과에 들어갔다.

    "가고 싶은 과에 가려다 보니 3수를 하게 된 거다. 문과·이과·예체능 다 시험 보고 다 붙었다. 패션을 좋아하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꿈꾸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희망 직업에 '의사'라고 적었으니.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픈 아버지(간복균 전 강남대 교수·수필가)의 의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결국 꿈을 찾아가게 되더라. 어릴 때 종이만 보면 그게 휴지 조각이라도 그림을 그렸던 나다. 3수까지 하다 보니 덜컥 겁이 났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조금 늦어진다 해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후회가 없다."

    ―올 초 미국 유명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와 한복진흥센터 협업을 진행하는 등 인맥이 넓다. 관리 비결은.

    "특별한 게 없다. 진심으로 대하라. 그리고 거짓말하지 마라. 어차피 감정으로 다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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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섭 교수가 수집하는 모자. 검은색 의상과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최근엔 특이한 디자인의 브로치도 모으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각종 협업 프로젝트에서 보듯 중간 다리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날 뽑아줄 때 학생들 잘 키우라고 선택한 거 아니겠느냐. 학생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매거진 등과 각종 화보 촬영도 나서서 했다. 하지만 솔직히 빈손으로 덜컹 가면 누가 끼워주겠나. 이리저리 발 닳게 뛰어서 후원을 따오는 것이다. 관광청, 항공사나 해외 정부 기관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인맥을 쌓는다. 그들로서는 홍보돼 좋고, 나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 볼 수 있었다. 관광청 등에선 주로 연예인을 원해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하는 데 연결해 주기도 했다."

    ―교수 신분으로 하기엔 좀 부담스럽지 않은가.

    "대학교수라고 젠체하고 책상물림 같다면 무슨 아이디어가 나오겠느냐. 현장을 가봐야 새로운 것이 보이고 트렌드도 읽는다. 자꾸 얼굴을 내비치다 보면 현지 유력자들과도 어울리게 된다. 얼굴 한 번 더 본 사람에게 믿고 맡기지, 명함만 내민다고 누가 인정하겠는가. 태국 같은 경우는 문 닳듯 다녀서 관광청 행사에 우리 부모님이 대신 참석하실 정도다."

    ―대외 활동이 두드러지다 보니 학문적 실적에 의문을 가지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남들이 그럴 얘기 하는 동안 나는 책을 파고들었다. 박사 학위(2008년 성균관대 의상학)도 받았다. 검증된 거 아닌가. 유명 디자이너는 그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의상학 박사도 그 사람만의 철학을 글로 표현해 인정받는 것이다. 대장장이도 오래하면 장인이 된다."

    ―교수, 루이까또즈 디렉터, 각종 협회·연구회 임원 등 일정표가 쉴 틈이 없어 보인다.

    "보면 알겠지만 종이 달력이 새까맣다. 그래도 나에게 철칙은 있다. 금요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 약속은 잡지 않는다. 학교도 회사도 월~목까지만 나간다. 하루라도 나에게 바쳐야 인생이 좀 더 풍요해지지 않겠는가. 당신도 해봐라. 처음엔 상사, 선배, 취재원 등등 이유로 어렵겠지만 한번 '금요일의 사람'으로 인식되면 시간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간호섭 프로필

    1969 출생

    1993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졸업

    1994 미국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수료

    1995 미국 드렉슬대학교 패션디자인 석사(돌로레스 퀸 최우수 졸업생상 수상)

    1995 미국 코킨, 니콜파리, DKNY 디자이너

    1997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과 교수

    2005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2006 아모레퍼시픽 남성 화장품 오딧세이 스포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2 한·중패션산학협회 회장

    2014~현재 루이까또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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