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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1930년대 '모단걸' 최승희가 이 곳, 이 맛을 다시 본다면…

    입력 : 2017.09.29 04:00

    조선호텔, 93년 역사의 '나인스 게이트' 재개장

    단골에겐 추억을
    에그 베네딕트는 전통적 조리법 고수… 시저 샐러드 소스엔 푸아그라 얹어 '변주'를

    젊은 층엔 새로움을
    한국선 보기 힘들었던 서양식의 '대표적 古典'… 굴 록펠러·가자미 구이 새로운 메뉴로 추가

    가수 아이유가 지난 22일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다. 양희은의 '가을아침', 김건모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들국화 '매일 그대와' 등 과거 명곡들이 익숙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새 노래들로 재탄생했다. 만약 시간이 흘러서 40대 혹은 50·60대가 된 아이유가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해 내놓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20일 재개장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는 잘 리메이크한 명곡 같다. 물론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인스 게이트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양식당이다. 1924년 문 연 팜코트(Palm Court) 시절까지 합쳐 올해로 아흔세 살 된 레스토랑이다. 팜코트는 일제강점기 최승희 등 조선의 '모단걸'과 '모단보이'들의 사교 장소로 이름 높았다. 에그 베네딕트·시저 샐러드·타르타르 스테이크·프라임립 등 수많은 서양 요리를 국내 처음 소개하고, 달팽이요리를 유행시키며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팜코트는 1970년 '나인스 게이트(Ninth Gate)'로 다시 태어났다. 남대문·서소문 등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에 이어 서울의 아홉 번째 문이란 뜻을 담고 있다.

    지난 20일 재개장한 '나인스 게이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들.
    지난 20일 재개장한 '나인스 게이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들. 소고기 타르타르 스테이크, 굴 록펠러, 점보 새우 칵테일, 치킨 리버 무스(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 등 서양 요리 고전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재개장한 나인스 게이트는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되살렸다. 메뉴판은 에그 베네딕트(아침 메뉴),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등 팜코트 시절 때부터 인기를 끌던 고전적인 서양 요리들로 가득하다. 부모를 따라서 이곳을 드나들다가 이제는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오는 오래된 단골들이라면 무척 반가울 듯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클래식을 '리플레이(replay)'하지는 않았다. 요즘 시대와 한국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리메이크했다. 에그 베네닉트는 잉글리시 머핀에 연어나 햄을 올리고, 수란 얹는 전통을 따르지만 시저 샐러드에는 기존의 달걀노른자로 만든 드레싱을 업그레이드해 서양 4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푸아그라(거위간)로 만든 드레싱을 끼얹는다. 타르타르를 비롯해 많은 요리는 양을 줄여 '스몰 플레이트(small plate)'로 제공한다. 나인스 게이트 이귀태 주방장은 "요즘 손님들은 음식을 조금씩 다양하게 맛보길 선호하는 데다, 한국식으로 여러 요리를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이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면서 "이러한 요구에 맞추기 위해 일부 요리는 스몰 플레이트로 서빙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내는 요리들도 클래식에서 가져왔다. '굴 록펠러(Baked Oysters Rockefeller)'가 대표적이다. 굴에 버터와 파슬리·시금치 등 향채류를 얹고 빵가루를 뿌린 다음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다. 1899년 미국 뉴올리언스 '안토안느(Antoine's)' 레스토랑 오너셰프 줄스 알시아토레(Alciatore)가 개발했다. 서양에서 고급 식재료인 굴을 사용한 데다 진하고 호사스러운 맛이라고 하여 당시 세계 최고 갑부였던 록펠러 가문의 이름을 붙였고,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조선델리'에서 추석을 맞아 내놓은 '송편빵'
    '조선델리'에서 추석을 맞아 내놓은 '송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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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인스 게이트 통유리 너머로 원구단 황궁우가 보인다.
    굴 록펠러와 함께 이번에 나인스 게이트 메뉴판에 오른 '레몬과 케이퍼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Sole Meuniere)'는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이면 빠지지 않는 요리다. 한식으로 치면 불고기나 비빔밥쯤 된다고나 할까. 가자미, 광어 등 납작한 넙치류 생선을 포 떠서 밀가루를 가볍게 묻혀 버터에 지져내는 생선요리로, 한국의 전과 살짝 비슷한 맛이다.

    굴 록펠러나 가자미 구이는 서양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면 빠지지 않고 내는 고전들이다. 이상하게 최근 한국에서는 맛보긴커녕 찾기도 힘들었다. 이런 요리들을 처음 맛보는 젊은 손님들은 마치 요즘 신세대가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명곡에서 반가움보단 새로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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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인스 게이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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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구단에서 바라본 조선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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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모단걸'이었던 무용가 최승희가 1930년대 조선호텔 양식당 '팜코트'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나인스 게이트보다 앞서 지난 4월 재단장 후 재개장한 '조선델리'는 추석을 맞아 10월 5일까지 '송편빵'(1세트 9개 3만원)을 판매한다. 빵이지만 떡처럼 쫄깃한 데다 앙증맞은 모양새가 영락없는 송편이다.

    지난 5월 새롭게 문 연 '라운지&바'는 올해로 103년 맞은 조선호텔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칵테일들을 선보였다. 칵테일이란 용어가 탄생한 1700~1830년대 칵테일의 태동기를 대표하는 칵테일 '위스키 줄렙'부터 1830~1920년대 칵테일 전성기의 '맨해튼', 1920~1939년 미국 금주법 시대를 풍미한 '화이트 레이디' '위스키 사워', 칵테일의 인기가 되살아난 1940년부터 현재까지 유행하고 있는 '코스모폴리탄' '마티니' 등 역사적 칵테일을 내고 있다. '모단걸' 최승희도 이 중 하나를 팜코트에서 충분히 홀짝였을 법한 칵테일의 고전(古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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