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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진한 토마토 소스 풍미가 흠뻑… 부드러운 고기 완자

  • 정동현 셰프

    입력 : 2017.09.29 04:00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앨리스가 만들어 준 미트볼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미트볼을 올린 볼로네제 소스 스파게티. / 게티이미지코리아
    몸에서 10㎏이 날아갔다. 여럿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 욕실 구석에 놓여 있던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고등학생 때나 목격하던 숫자가 찍혀 있었다.

    7년 전, 호주 멜버른에서 내가 그리 말랐던 이유는 명확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정 무렵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옷을 집어 던지고 바로 눈을 감기 바빴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있는 주방이었지만 먹을 시간은 없었다.

    업장에 요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웨이터와 관리직 등 식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일명 '스태프밀(staff meal)'이란 직원 식사를 차려야 했다. 시간은 저녁 서비스 전. 이 또한 요리사의 몫이었다. 회사로 치면 성과에는 반영되지 않는 잡무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일은 막내, 혹은 그 윗선에서 처리했다. 그렇지만 대충할 수는 없었다.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모두가 알았다. 보통은 조리하다 남은 재료를 긁어모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오늘은 앨리스가 하는 거야?" 당당한 배를 인품처럼 지니고 있던 주방장 제이크가 큰 소리를 냈다. 덩치는 제이크만 했지만 말수가 적었던 앨리스는 웃기만 했다. 앨리스는 여자였지만 나보다 덩치가 컸고 험한 일을 가리지 않았고 누구보다 꼼꼼하게 일했다.

    그녀가 만들고 있던 것은 미트볼이었다. 햄버거를 만들다 남은 다진 고기를 일일이 손으로 빚고 토마토소스를 끓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따로 파스타를 삶았다.

    미트볼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일대일 분량으로 준비하고 우유에 적신 빵과 다진 야채, 달걀, 다진 마늘을 섞는다. 파슬리와 회향(fennel) 같은 향신료를 넣는 것도 맛의 비결이다. 소고기만 쓰면 지방이 적어 식감이 뻑뻑하고 조리 과정에서 쉽게 갈라진다. 돼지고기를 넣으면 풍미가 더해지고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우유에 적신 빵을 넣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나에게 미트볼은 3분 만에 완성되는 것이었다. 시중에 나온 모든 즉석조리 식품을 맛보던 어린 시절, 마치 특식을 먹듯 미트볼을 사먹는 날이 있었다.

    제대로 된 미트볼이 그렇게 3분 만에 뚝딱 만들어질 리는 없다. 일단 직경이 웬만한 수준을 넘어가면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속까지 제대로 익히면서 또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해야 하며 겉은 살짝 바삭거려야 한다. 팬에 굴려가며 익히는 것은 일 인분용일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 몇십 인분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먼저 미트볼을 튀긴다. 동그란 표면을 제대로 그리고 완전히 굽는 방법은 튀기는 수밖에 없다. 겉만 살짝, 색깔을 낸다는 느낌으로 튀긴다. 마무리는 소스에서 한다. 고기를 갈아 볶고 양파와 셀러리, 당근, 마늘을 넣은 뒤 레드와인, 토마토 통조림을 냅다 투하해 부글부글 끓여 볼로네제 소스를 만들고 그 속에 미트볼을 넣어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스의 풍미가 미트볼에 배어들고 소스는 또 미트볼의 맛을 흡수해 상부상조하는 격이 된다. 그리고 소스 속에서 미트볼은 속까지 완전히 익게 된다.

    앨리스가 손으로 하나씩 미트볼을 빚고 있을 때 지나가던 이들도 조금씩 손을 보탰다. 명절 때 온 식구가 같이 만두를 빚듯이, "이건 너무 크잖아"라고 웃으며 서로를 타박하기도 했다. 얼마 뒤 우리는 주방 구석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플라스틱 통에 미트볼을 가득 담고는 수저로 퍼먹었다.

    미트볼을 담았던 큰 트레이는 깨끗이 비워져 윤이 났다. 앨리스는 음식에는 손대지 않고 남은 일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우리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얼굴에 깃든 옅은 미소가 우리를 향해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갈리나데이지: 파스타로 이름을 날린 곳이지만 '이탈리아식 미트볼'의 맛도 남다르다. 한우와 지리산 흑돼지로 만든 미트볼은 크기와 맛에서 그녀가 지향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 (02)720-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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