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댁의 '家톡' 안녕하십니까

모바일 메신저가 가족 간 대화의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몸은 각자 떨어져 지내지만 메신저 안에선 똘똘 뭉쳐 대가족을 이루는 '카톡 대가족'이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끼리 대화가 많아지는 시기, '가톡' 천태만상을 짚어보고 현명한 대화법으로 가족애(愛) 높이는 법도 전한다.

    입력 : 2017.09.29 04:00

    [cover story] 성큼 다가온 추석… '가족 카톡방'은 끊임없이 울린다

    성인 57% “가족단톡 이용”
    가족 간 소통 더 빨라져 관계 돈독해졌지만 22%는 “오해·불화 겪어”

    지치는 자녀 세대
    결혼 안 한 아들·딸에 “오늘은 누구 안 만나냐” 매일같이 물어봐… 여행 떠나면 ‘사진 폭탄’

    서운한 부모 세대
    카톡으로 얘기했다고 찾아오는 횟수 부쩍 줄어… 눈은 침침, 손은 뻣뻣… 대화 참여하기도 힘들어

    ‘家톡’ 똑똑한 활용법
    평소 데면데면하다면 메신저 대화는 毒… 대화 주제 심각하다면 만나거나 최소 전화를

    스마트폰을 켠다. 손끝으로 화면 속 노란 말풍선을 가볍게 터치하니 밤새 쌓인 인스턴트 메시지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알람시계라도 맞춰 놓은 듯 '아침을 여는 좋은 글귀' '성공 십계명'이란 '펌글(퍼온 글)'을 꼬박꼬박 보내오는 시어머니, 추석 차례상 업무 분담을 논의하자며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소환'한 형님과 동서, 긴 연휴 가족 여행 스케줄을 짜보자며 여행 상품 링크를 끊임없이 공유하는 친정 식구…. 쉼 없이 '카톡' 알림이 울리기 시작한다. 엄지손가락은 스마트폰 위에서 아다지오(매우 느리게)와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를 오가며 침묵의 탭댄스를 춘다.
    스마트폰 카톡

    모바일 메신저가 가족 간 대화의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올 초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85%로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하면서 가족끼리 모바일 메신저로 안부 주고받는 게 일상이 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하 카톡)에서 이름 따 '가톡(家talk·'가족 카톡'의 줄임말)'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최근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중·장년층, 노년층이 늘면서 조부모와 손자가 함께하는 '3대 가톡'을 쓰는 집도 많다. 몸은 각자 떨어져 지내지만 메신저 안에선 똘똘 뭉쳐 대가족을 이루는 '카톡 대가족'이다.

    '가톡'은 가족의 단합과 정을 다지는 데 도움되기도 하지만, 미묘한 대화법 차이로 세대 간 갈등이나 고부 갈등, 부모 자녀 갈등을 낳기도 한다. 편리한 정보 공유와 소통 플랫폼이 괜한 오해를 낳으면서 '불화와 갈등의 창'이 될 때도 있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끼리 대화가 많아지는 시기, '가톡' 천태만상을 짚어보고 현명한 대화법으로 가족애(愛) 높이는 법도 전한다.

    스마트폰 카톡

    ‘가톡’ 유감!… 가족 톡(talk)이 괴로워

    “실수로 나온 척했는데 아주버님이 시댁 ‘단톡방’으로 또 소환하셨어요. 이번이 세 번째 단톡방 탈출인데 나오기도 진짜 어렵거든요. 고민하다 아주버님께 정중히 ‘초대하지 말아 달라’ 말씀드렸는데 ‘깜빡했다’시면서 또 초대하신 거 있죠?”

    이달 초 서울의 한 지역 커뮤니티에 익명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아주버님과 시누이, 시어머니가 주로 대화를 나누는 시댁 단톡방에 며느리는 왜 자꾸 초대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 섞인 내용이었다. 해당 글엔 ‘시댁 단톡방에선 가만히 있어도 손해다. 차라리 단톡방을 나와 중간이라도 가는 게 낫다’는 댓글부터 ‘초대거부 및 나가기 기능을 적극 활용해보라’는 조언까지 순식간에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지난봄에 결혼한 직장인 김지석(35)씨는 처가 식구들과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중이다. 김씨는 “워낙 말주변이 없는 데다 연애 기간이 짧아 아내와도 존댓말을 쓰고 있는데, 처가 식구들이 만든 단체 대화방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매일 ‘관전’만 하고 있다”고 했다.

    ◆ 매일 ‘펌글’ 보내는 시어머니, ‘톡’만 보내고 전화 안 하는 아들… “쌓인 메시지 보는 것도 일”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싱글족’ 이소정(가명·36)씨는 얼마 전 가족 단톡방에서 과감히 ‘나가기’를 눌렀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장’이 끝날 때까지 촌각을 다퉈야 하기에 메시지 확인조차 어려운데, 업무 마치고 카카오톡을 열었을 때 확인 못 한 메시지에 뜨는 빨간색 숫자가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메신저상에서 대화 내용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매번 ‘오늘 저녁은 약속 없느냐(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느냐?)’는 말로 대화를 꺼내는 것도 괴로웠다”며 “일을 핑계로 탈퇴를 선언하고 ‘나가기’를 누르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수두룩하게 쌓인 빨간 숫자 표시를 밀린 숙제하듯 읽다가 쌓이는 스트레스도 줄었다.

    카톡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카톡 대가족’ 등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스턴트 메신저(이하 메신저) 이용률은 2016년 기준 73.7%에 이른다. 연령별 이용률을 보면 10~20세 미만이 79.1%, 20~30세 미만이 96.8%, 30~40세 미만이 95.4%, 40~50세 미만이 90.9%, 50~60세 미만이 76.9%, 60~70세 미만이 40.9%이며, 6~9세와 70세 이상도 각각 25.3%, 10.6%로 전 연령층이 두루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세대가 메신저로 대화하다 보니 가족끼리 그룹 대화하는 가정도 크게 늘었다. ‘friday’가 지난 14일 SK플래닛 설문 플랫폼 ‘틸리언’과 함께 20~60대 성인 1024명을 대상으로 ‘가족 간 그룹 메신저 사용’에 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절반 이상(56.9%)이 ‘가족 간 그룹 메신저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가족 간 그룹 메신저를 사용하는 주된 목적은 ‘평상시 빠른 의사소통’(60.4%), ‘친목 도모’(20.4%), ‘가족회의’(17.3%) 순으로 나타났다.

    ‘가톡’ 덕분에 소통이 빠르고 단합이 잘되는 가족도 있지만 한편으론 대화방에서 ‘말 못할’ 갈등을 겪는 사례도 허다하다.

    설문에 따르면 ‘가족 그룹 메신저로 인한 가족 관계의 변화’에 대해선 가족 그룹 메신저 사용자 중 53.9%가 ‘돈독해졌다’고 답했으나, 22.3%는 ‘가족 그룹 메신저로 인해 구성원 간 오해, 의견 충돌 등 불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30~60대 기혼자 104명을 대상으로 자체 진행한 ‘가족 간 그룹 메신저 사용’에 대한 심층 설문에선 ‘가족 간 그룹 메신저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그룹을 탈퇴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탈퇴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14.4%였다.

    가톡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글’도 많으면 스팸, 정치 이슈 대화는 자제를

    메신저 활용법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송주영(가명·43)씨는 매일 아침 시어머니로부터 온 일명 카톡 ‘펌글(퍼온 글)’로 하루를 시작한다. “‘좋은 글’이라며 보내오는 메시지를 1년 넘게 받다 보니 은연중에 스트레스가 됐다”는 송씨는 “처음엔 감사한 마음에 메시지를 확인하면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기도 했는데 매일 받다 보니 똑같은 답장을 보내기도 쉽지 않고, 반복되다 보니 마음에 짐이 쌓이는 것 같더라”고 했다. 송씨는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라”며 “여행 가실 때마다 수시로 가족에게 그룹 메시지로 사진을 공유하시니 매번 반응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고 호소했다.

    반대로 아들, 손자, 며느리와의 메신저로 인해 상처받는 노인들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김미라(가명·68)씨는 “이젠 가족회의도 카톡으로 하다 보니 왕래하는 횟수가 더 줄었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 가족들 목소리 들으며 전화 통화하던 낙도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또래 친구들이 만나면 경쟁하듯 가족 카톡 내용을 자랑하는 것도 적잖이 스트레스가 된다”며 “눈 침침하고 ‘타자’ 느린 어른들에겐 목소리 들려주고 찾아와 얘기 나누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선거철이나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이념 차이로 인한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정 당을 지지해야 한다’거나 자신의 성향이나 논조와 비슷한 뉴스를 메신저로 공유하는 것도 갈등의 소재가 된다.

    가톡방 행복십계명

    과유불급, 사용 규칙 만들어 적당히

    대화(對話)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의사소통’이지만 ‘대화창’ 대화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메신저는 가끔 ‘필요악(惡)’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가족 단톡방’ 역시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잘만 활용하면 세대 간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고 가족 유대감을 되살리는 플랫폼이 된다”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라면 말투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메신저 대화가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가족과 대화할 땐 얼굴을 보고 해야 할 주제인지, 전화 통화로 될 얘기인지, 메신저로 하면 될 사안인지 구분하라”고 조언했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위즈덤하우스)의 저자 김범준씨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투를 예측할 수 없다면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가족 간의 대화도 깊은 주제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만나서 하거나 최소한 전화로 하라”고 말했다.

    가족 단톡방에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공유하는 글이나 칭찬도 불화의 소지가 될 수 있다. 김진미 빅픽처가족연구소장은 “여러 가족 구성원이 모인 단톡방에선 ‘좋은 글’에 대해 구성원 간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칭찬 역시 상대적으로 칭찬받지 못한 구성원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가족만의 규칙을 정해 적당히 대화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