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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지에서 러블리즈까지… 알고보면 '스타 제조기'

가수 겸 작곡가 윤상. 그는 1990년대부터 이른바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한국 대중음악 안으로 끌어들인 선구자였다.
강수지를 시작으로 최근 아이유와 걸그룹 '러블리즈'까지 수많은 '뮤즈(Muse)'의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은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입력 : 2017.09.29 04:00

    아이돌 음악에 뛰어들다
    90년대 발라드 음악처럼 현재 가장 치열한 분야
    내가 손대는 아이돌은 이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 드러내게 도와주고 싶어

    가사보단 멜로디·사운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말로 못해 음악 만들어
    가사에 너무 얽매이면 음악 스펙트럼 좁아져

    요즘 음악은 '상상력'
    악기 다룰 줄 몰라도 센스·감각만 있으면
    누구든 걸작 만들 수 있어

    가수 겸 작곡가 윤상(본명 이윤상·49)을 공연장 객석에서 마주친 적 있다. 브라질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남미 음악 거장 질베르투 질의 2011년 첫 내한공연장이었다. 수수한 옷차림에 깡마른 몸매인 윤상의 옆에 작은 체구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아이돌 가수 '아이유'였다. 당시 윤상은 아이유의 미니앨범에 타이틀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등 음악적 교류를 하던 때였다. 이 장면은 그의 음악세계를 압축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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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49)은 함께 작업했던 가수들이 하나같이 ‘완벽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깐깐하고 예민한 음악가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떤 주제가 나와도 흥분하거나 말이 빨라지는 법 없이 차분하게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 오드아이앤씨

    윤상은 1990년대부터 이른바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한국 대중음악 안으로 끌어들인 선구자였다. 강수지를 시작으로 최근 아이유와 걸그룹 '러블리즈'까지 수많은 '뮤즈(Muse)'의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은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콘텐츠진흥원 인재캠퍼스에 강연하러 온 윤상과 마주 앉아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날 그는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연사에 나섰다.

    ―아이유와 함께 질베르투 질의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성)시경이도 같이 있었는데 공연장에서 날 본 사람들 다 아이유만 기억하더라."

    ―'여자 가수들의 멘토' 같은 이미지가 있다.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부터 러블리즈의 '아추(A-Choo)'까지 많은 팀의 히트곡을 만들어줬다.

    "남자 가수들에게도 곡을 많이 주고 신경도 많이 쓰는데 왜 그럴까? 질문처럼 아마 잘 알려진 곡들이 여자 가수들이 부른 곡이라 그런가 보다. 앞으로 (남자 가수들에게) 더 신경 써야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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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러블리즈의 음악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윤상.
    ―러블리즈의 음악은 총괄 지휘를 하고 있다. 아이돌 음악시장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전 같은 거창한 건 아니다. 아이돌 음악 시장은 또 다른 형태의 현재다. 1990년대 발라드 시장이 치열했던 것처럼 지금은 아이돌 음악 시장이 그렇다. 한국 가요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함부로 다뤄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중엔 여러 색깔의 팀이 있지만, 내가 손대는 아이돌은 그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면 좋겠단 바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아이돌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보니 어떤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예전엔 '가수에게 맞는 곡만 던지면 알아서 잘 소화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녹음할 때부터 (아이돌) 가수에게서 모든 믿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깊은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에서 나온 곡은 확실히 다르다. 노래의 어떤 부분을 왜 만들었는지 이해해야 그걸 부르면서 음악적으로 배울 수 있다. 아이돌 가수와 작업할 땐 꼭 그걸 염두에 둬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더라."

    ―2002년에 SM엔터테인먼트에 몸담지 않았나. 그때부터 보아나 동방신기 같은 아이돌에게 곡을 주기 시작했고.

    "맞다. 그런데 그땐 아이돌 음악에 관심 있어서 들어간 건 아니었다. 당시 내 앨범에 투자한 회사가 망했다.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는데, SM이 나서서 그 돈을 내주고 대신 내 앨범을 유통해 주겠다고 나선 거다. 그러면서 나도 SM에 곡을 주기 시작한 거다. SM 소속은 아니었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였던 셈이다."

    ―돈에 많이 좌우되는 인생 같다(웃음). 가수를 시작한 계기도 돈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놈의 악기 욕심 때문에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지(웃음). 갖고 싶었던 전자 악기가 있었는데 너무 비쌌다. 그런데 김완선 선배님 매니저 하던 김광수씨가 내가 만든 곡을 듣더니 가수 해보라고 제안하면서 계약 조건으로 그 악기를 사주겠다고 한 거다. 악기만 마련하면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뜻대로 안 된 거지."

    윤상은 데뷔 당시(위 사진)부터 귀공자풍의 외모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아이돌이었고, 최근에는 요리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아래 사진)에 출연해 가족을 위한 요리를 배우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다. / 조선일보 DB
    윤상은 데뷔 당시(위 사진)부터 귀공자풍의 외모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아이돌이었고, 최근에는 요리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아래 사진)에 출연해 가족을 위한 요리를 배우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다. / 조선일보 DB

    ―'이별의 그늘'이 수록된 1집이 히트하면서 단숨에 아이돌 스타가 됐다. 연예인이 성격에 안 맞아서 힘들어했다던데.

    "학교 다닐 때 여자아이들에게 관심받아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날 따라다니니까 정신이 없었다. 집 앞에서 기다리는 소녀팬에게 '대체 왜 날 좋아하는 거니'라고 물어본 적도 있다."

    ―요즘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같다. 뭐가 바뀌었나.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편해졌다. 요리 프로그램(tvN '집밥 백선생')에 나간 것도 '가족들에게 손수 만든 요리를 먹여주고 싶다'는 딱 그 생각만 하고 부담 없이 나갔다."

    ―1집부터 당시 가요계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그런가? 당시 내 음악이 독특했다면 멜로디보다는 사운드가 좀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그땐 발라드를 녹음할 때도 모두 녹음실에서 실제 악기를 연주해 만든 사운드를 썼다. 그게 별로 감동적으로 들리지 않더라. 그래서 전자 악기로 만든 사운드를 썼다. 해외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가요와 다른데 어떻게 한 거지'라는 궁금증을 푼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시도를 하면서 '가수를 한다'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작업 방식도 남다른 데가 있다. 예를 들면 작사가 박창학과 협업 관계 같은 것. 30년 가까이 작곡(윤상)과 작사(박창학)의 분업 관계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가사 쓰는 데 관심이 거의 없기 때문 아닐까?(웃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남의 노래를 들을 때도 가사보다는 멜로디나 사운드에 집중해 듣는다. 영어를 못해도 팝송을 즐기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대중음악을 즐기는 사람의 80% 이상은 가사를 즐기지만, 음악 프로듀서에게 가사는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사에 너무 얽매이면 음악 스펙트럼이 좁아진다. 대중음악 프로듀서가 되기 어렵다."

    윤상은 1990년대부터 이른바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한국 대중음악 안으로 끌어들인 선구자였다.

    ―정통 발라드부터 전자 음악, 월드뮤직, 힙합까지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그런 배경 때문인가.

    "한국에선 대중음악 프로듀서를 하려면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한다. 사실 나는 그게 일종의 '조용필 콤플렉스'라고 보는데, 대중음악가라면 모든 장르를 다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1980년대 내가 음악을 시작할 땐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지금처럼 힙합 음악만 하는 가수가 활동하고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거기다 어려서부터 여러 장르 음악을 다양하게 들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하는데도 또 '음악 공부를 하겠다'고 늦은 나이에 유학까지 떠났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훌륭한 사운드 엔지니어 없인 녹음을 할 수 없단 것이었다. 대중음악 프로듀서는 클래식으로 치면 지휘자다. 지휘자가 악보와 씨름하는 사람이라면, 프로듀서는 소프트웨어와 씨름하는 사람이 됐다. 현대 대중음악은 이제 녹음 장비와 음악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 없이 좋은 사운드를 만들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걸 배우러 간 거다."

    ―다양한 창작을 할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가?

    "느긋함 같다. 프로처럼 뚝딱 곡을 써본 적은 거의 없다. 내 곡 중에 작곡만 7년이 걸린 곡도 있다. 16마디를 만들어 놓고 후렴이 계속 마음에 안 들어서 마무리를 못 했었다. 내 앨범 곡이어서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던 거지. 요즘은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중요해진 시기다.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원하는 소리를 3일 안에 구현할 수 있다. 예전에 많이 쓰던 '마법 같은 톤' 같은 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상상력과 센스, 소리를 만들어내는 감각 같은 것만 있으면 누구나 걸작을 만들 수 있다."

    강연 시간이 다가와 일어서는 윤상에게 "신보도 설마 7년이나 걸리진 않겠죠"라고 농담을 건넸다. 윤상이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해봐야죠." 만족스러운 음악이 나올 때까진 안 내겠다는 뜻이었다. 7년을 기다려도 좋으니 그의 새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윤상

    1968 서울 출생

    1987 충암고 졸업

    1990 1집 '이별의 그늘'로 데뷔

    1993 현역으로 군 입대

    1996 신해철과 '노댄스' 결성해 앨범 발매

    2002 SM 엔터테인먼트와 유통 계약

    2003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

    2010 상명대 대학원 초빙교수 임용

    2016 성신여대 실용음악과 전임교수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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