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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리, 스탠퍼드서 의사 꿈꾸다… 브로드웨이서 꿈을 찾다

명문 스탠퍼드 의대 준비생에서 뮤지컬 배우가 된 남자. 폭발적인 가창력과 흡인력으로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빈 재미교포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다.
199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한 그는 '렌트' '알라딘' 등에 출연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입력 : 2017.09.08 04:00

    한국정착 5년차 '뮤지컬 스타'

    뉴욕의 '엄친아'
    의대 진학코스 밟던 중 연기·노래에 재능 발견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해 렌트·알라딘 등서 활약

    한국, 몰라서 더 끌렸다
    교포인 내게 기회 줬고 특유의 情 문화도 매력적
    애국가 부르는 막내 보며 난 여기 정착했구나 느껴

    열정 없는 삶, 상상불가
    배우 아닌 인생 살았어도 행복하게 지냈겠지만
    '크리에이티브 소울' 펼치는 무대 위의 삶만 못했을 것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될 거라 믿었다. 더 나은 환경을 꿈꾸며 이민을 결정한 여느 한국 가정처럼 미국 뉴욕서 태어난 아들은 부모의 뜻을 잘 따르는 듯 보였다. 뉴욕 지역 신문에 '우수 학생'으로 보도될 만큼 공부·운동·음악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아들은 명문 스탠퍼드대 프리 메드(pre-med·의대 진학 준비) 과정으로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랬던 아들이 돌연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연을 끊겠다"며 노발대발했지만 아들의 무대를 보고는 "너의 길을 가라"고 했다. 그 아들이 바로 폭발적인 가창력과 흡인력으로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빈 재미교포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44·한국 이름 이강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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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배우가 됐지만, 그 덕에 한국에 오고 아버지의 진심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소박한 꿈은 “한국 무대에서 더 완벽해지는 것”이란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9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투이'로 데뷔한 마이클 리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렌트' '알라딘' 등에 출연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3년 전엔 2만여 관중이 들어선 이탈리아의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 오프닝 무대도 장식했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그는 이전보다 상당히 말라 보였다. 뮤지컬 '나폴레옹' '헤드윅'과 각종 방송에 동시에 출연하면서 빡빡한 스케줄 탓에 살찔 틈이 없단다. 아내, 아들 둘과 함께 2013년부터 한국에 정착한 그는 뒤늦게 배운 한국말이 완벽하지 못해 "매일이 도전"이라며 수줍어했다. 인터뷰에서도 최대한 우리말로 뜻을 전달하려 애썼다. 어미를 반말로 했다가 바로 존댓말로 바꾸는가 하면, 영어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면 곧바로 우리말로 해석해 다시 말했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면 힘들 것 같아요."일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나폴레옹'은 특히 아시아 초연이기 때문에 더 궁금했어요. 함께 나오는 (한)지상, (임)태경, (정)선아는 몇 번 호흡을 맞춰 친했고, (박)혜나는 옛날부터 제가 엄청 팬이었어요. 무대 세트도 완벽하죠."

    ―음악적 재능은 언제 발견했나요. 가족 중에 전공자라도 있는지요.

    "전혀 없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진로에 대해 혼란이 왔어요. 친한 예술가 친구들과 할리우드가 있는 LA에 가서 지냈는데 저녁마다 연기 학원에 다녔어요. 선생님이 저보고 재능이 있다 했어요. 그때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꼭 보라시더군요. 물론 떨어졌죠. 그런데 제작진이 좋게 봤는지 여러 차례 오디션을 제안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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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4학년 때 ‘미스 사이공’으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한 뒤 부모님과 찍은 사진.

    ―승승장구하며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볐지요.

    "제 인생은 롤러코스터였어요. 2년 주기로 거의 반복됐는데, 1년 일해 돈 벌어놓으면 그다음 해는 정말 통장 잔액이 0원 될 때까지 일이 없곤 했죠. 두 달 일하고 20만원 받는 소극장 무대도 섰어요. 그래도 통장 잔액이 바닥나면 꼭 일이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도 쓰고, 오페라 공부, 작곡을 하면서 배고픈 걸 참았어요."

    ―편한 인생 두고 왜 어려운 길을?

    "미지의 세상이니까 두려운 건 있었지만 어렵진 않았어요. 내게 열정 없는 삶은 상상하긴 어려워요. 돈이 없어 재정적으로 힘들 때 많았지만 예술을 하고 있어 행복했어요. 아티스트에겐 '크리에이티브 소울(creative soul)'이 있어요. 그 마음을 따르는 것이죠."

    ―크리에이티브 소울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아티스트 마음에 그런 공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인 거죠."

    ―그런 욕망이 가장 강했던 작품은 뭔가요?

    "브로드웨이 극작가 겸 작곡가인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The last 5 years'란 작품이요. 작가와 배우를 꿈꾸는 연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이별을 그렸는데 그때 당시 결혼 5년 차라 역할에 큰 공감이 갔어요. 아내가 당시 협력 연출을 맡아서 더 기억에 남아요." 아내 킴 바홀라도 브로드웨이 배우 출신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연극학사), 뉴욕대·컬럼비아대(영화학과 예술경영 석사)에서 공부한 재원으로 현재 연기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 어떤 존재인가요.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아내 만나기 전엔 평생 결혼 안 할 거라 생각했어요. 나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 배우잖아요. 배우는 이기적이에요. 그런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 세상이 다 바뀌었죠. '이 여자 망했다' 생각했죠(웃음)."

    ―2006년부터 한국 무대에 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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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나폴레옹’에서 주연으로 열연하는 모습. / 블루스테이지·쇼미디어 그룹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지만 동양인 외모 때문에 늘 이방인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제게 많은 기회를 주었어요. 동료 사이에 정(情)도 있고요. 연습이 끝나도록 같이 기다리고 격려해주죠. 미국에선 '왜 퇴근 안 해?'라며 의아해할 뿐인데."

    ―왜 한국행을 택했나요.

    "한국을 더 배우고 싶었어요. 전 고를 수 있었어요. 큰형은 미국에 네 살 때 왔는데 미국 군대에 들어가고 의사가 됐고, 백인 미국 여성과 결혼했어요. 나보다 훨씬 더 미국 사람으로 자라났어요. 미국 처음 왔을 때 영어를 못해서 놀림을 당했대요. 트라우마가 생긴 거죠. 전 그런 기억이 없어요."

    ―2013년부터 서울에 정착했어요. 인생을 건 결정 같은데.

    "가족과 매일 함께 있고 싶었어요. 미국에선 공연하면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니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날이 많았어요. 201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앨리전스'에 캐스팅됐을 때도 가족과 자주 떨어져 있어야 해서 고민됐지만, 2009년 워크숍부터 함께 만들어갔던 작품이라 고심 끝에 참여하기로 했지요. 한국은 지방 공연이 있어도 거리가 멀지 않아 공연이 끝나면 바로 서울로 올라온답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많이 신경 쓰나요.

    "아내는 우리 애들이 스마트하다고 매일 얘기해요. 한국어, 영어, 피아노, 운동 다 잘한다고. 모든 아이가 다 그렇게 잘하는 거 아닌가요?(웃음). 요즘 캐럴 드웩(Dweck)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마인드셋(mindset)'이란 책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fixed mindset(고정된 마음가짐)'과 'growth mindset(성장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개념이 담겼는데 전자는 사람 성공이 타고난 재능에 달렸다는 거고, 후자는 자라나면서 능력이 키워질 수 있다는 관점이에요. 매우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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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상당히 말라 보였다. 뮤지컬 '나폴레옹' '헤드윅'과 각종 방송에 동시에 출연하면서 빡빡한 스케줄 탓에 살찔 틈이 없단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당신의 부모님은 자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려 이민을 선택했어요. 당신은 반대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지요. 혼란스럽기도 할 텐데.

    "큰애가 아홉 살인데 일반 공립초등학교에 보냈고, 일곱 살인 둘째도 내년에 같은 학교로 보낼 거예요. 둘째는 완벽한 한국인이죠. 집에서도 항상 애국가를 불러요. 아이들이 미국 태생이라 정체성을 어떻게 키울까 항상 생각하는데 한 달 전쯤 갑자기 깨달음이 왔어요. 내가 완벽한 '한국 이민자'가 됐구나. 아이들도 국제학교 아닌 일반 학교에 보내고, 매일이 행복하고, 미국 돌아갈 생각도 없고."

    ―뮤지컬 배우가 안 됐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안정된 직장에, 내일 일이 없어질까 고민 안 하는 삶? 그 삶도 행복했을 거예요. 처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을 땐 좌절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버지가 되니 그 마음이 이해돼요. 아버지는 아마 나를 잃을까 봐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나 형처럼 의사가 됐으면 곁에 두고 도움을 주실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배우의 길을 택했기에 이렇게 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경험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게 됐어요. 인생, 정말 어메이징(굉장)하지요?"


    마이클 리 프로필

    1973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

    1994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

    1995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 데뷔

    2000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출연

    2006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무대 데뷔

    2015 브로드웨이 뮤지컬 '앨리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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