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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우리가 상상했던 우스꽝스러운 21세기

  • 곽재식·SF작가

    입력 : 2017.09.08 04:00

    [곽재식의 안드로메다 통신] 촌티 나는 미래의 추억

    옛날 TV애니메이션판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보다 보면, 변신 로봇 모양을 한 외계인들의 기억과 감정을 컴퓨터 속에 복사해 놓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보면 우스운 것은 극 중에서 이 복사 작업을 할 때 플로피디스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로피디스크는 용량이 요즘 쓰는 가장 값싼 USB 메모리의 1000분의 1에도 못 미쳐 최근에는 그 모습을 구경조차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정신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놀라운 미래 기술의 일부라고 극 중에서는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찾아볼수록 많다. 1970년대 영화 '콜로서스'에는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는데, 정작 그 모습은 동그란 자기 테이프가 뱅글뱅글 돌아가며 알록달록한 전구가 반짝이는 옛날 대형컴퓨터의 모습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속에는 미래에서 온 강력한 로봇이 나오는데, 이 로봇의 시점으로 나오는 화면은 영문 소문자를 표시하는 기능조차 부족했던 8비트 컴퓨터 시기의 글꼴로 되어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렇게 미래 기술을 엉뚱하게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상상했던 것은 아마도 미래 기술의 발전을 당시에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흔했던 21세기에 대한 상상은 우주로 바캉스를 떠나는 대신 로봇의 반란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맞이한 21세기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개인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몰래카메라를 단속하느라 골치를 앓고 있는 사회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 문화의 영향 때문에 일부러 SF물에서 미래상을 그 시대 유행에 맞춰 그린 결과가 그런 모습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무렵 이제 막 사람들은 컴퓨터가 어떤 것인지, 디지털 기술은 어떤 느낌인지 생활 속에서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라는 느낌, 디지털 기술이라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해 주려면 당시 급성장하던 컴퓨터 산업의 제품과 비슷한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편이 더 좋기도 했을 것이다.

    1980년대 시청자들에게는 무선통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면서 갑자기 중국어를 할 수 있게 된 로봇보다는, 디스켓이라는 신기하게 생긴 것을 꽂으면서 이제 이 안에 있는 8개 국어에 대한 모든 지식이 전달되었다고 하는 쪽이 더 그럴듯한 컴퓨터답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독특한 느낌 때문에 나는 이렇게 1980년대 전후의 디지털 기술로 꾸며 놓은 미래 풍경이 풍부한 이야기를 묶어서 나름대로 '디스켓 펑크'라는 장르로 부르고 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문화가 현재에 와서는 과거를 추억하고 옛 향취를 즐기는 것이 되어 새로운 인기를 얻기도 한다는 점이다. 요즘 게임이면서도 일부러 옛날 컴퓨터 게임의 투박한 그림체를 흉내 낸 게임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옛날 컴퓨터의 전자 음악을 녹음해서 듣는 사람들이나, 옛날 구형 컴퓨터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10년 전, 20년 전의 컴퓨터 잡지를 다시 읽고 싶어서 헌책방을 뒤지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때문에 옛 컴퓨터 잡지의 가격이 제법 높게 매겨져 있는데, 예를 들어 15년 전의 '주간조선'은 1000원 정도면 구할 수 있지만, 비슷한 시기의 '게임조선'을 사려면 그 10배 이상의 가격은 각오해야 한다. 옛 시절 처음 컴퓨터라는 것을 접하고 정신없이 신기함에 빠져들었던 기억을 소중하게 다시 돌이키고 싶은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것 같다.

    디스켓 펑크 팬으로서 안타까운 점을 하나만 꼽아 보자면, 그 무렵 우리나라 IT 산업 초기의 기록과 경험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리된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전설적인 일화들이나 스티브 잡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지겹도록 이곳저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도리어 한국에서 처음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고 컴퓨터를 조립하고 반도체 공장을 설계했던 경험담들은 훨씬 찾아보기 어렵다. 그 옛날 기술자들과 창업자들의 고생과 성공, 도전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들은 IT 강국으로 나아가는 이 나라에 꼭 필요한 또 다른 옛 기억이 되리라 생각한다.

    ※과학자 겸 SF작가 곽재식(35)씨가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버무려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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