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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헤밍웨이가 떠나자 시간이 멈춰버린 곳… 바다·카페·호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입력 : 2017.09.08 04:00

    문학과 낭만이 흐르는 아바나

    '노인과 바다'를 낳은 집
    박물관이 된 대저택엔 그가 읽던 신문·책부터
    작품 속 바다를 탄생시킨 낚싯배까지 그대로 전시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올드 아바나의 작은 술집 평일에도 인파로 북적
    '쿠바 칵테일' 다이키리엔 설탕 빼고 라임만 넣는 헤밍웨이 스타일 있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호텔 '암보스 문도스'서 쿠바 정착 전 7년간 지내
    그가 머문 511호 가보면 거리 경치 한눈에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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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저녁 아바나 모로 요새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날이 저물자 도심이 모히토 쿠바 리브레(Cuba libre)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저기서 헤밍웨이는 잠자고 꿈꾸고 생활하면서 숱한 문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울고 웃고 또 많이 마시면서./정상혁 기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바나(Havana)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카리브해가 금세 군청색이 되더니 번들거리는 몸뚱이를 상어처럼 거세게 뒤척인다. 그 등짝에 작살을 꽂듯 내리치는 번개. 1시간여의 한바탕 사투가 끝나고 쿠바의 수도 위로 찌를 떨구듯 석양이 떨어진다. 피부 그을린 백발의 노인 몇몇이 해변으로 모여든다. 이곳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나라. 여행이 영감을 마주하려는 어떤 서성거림이라면, 영감이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찌를 던지는 것이 좋다. "흥분거리를 찾아다니지 말아요. 흥분거리가 찾아오게 해야지." 생전의 헤밍웨이는 말한 적이 있다.

    THE OLD MAN AND THE SEA

    그러니 이번 여행은 낚시와 같다 할 것이다. 인생이 하드보일드일 때, 잠깐의 낭만이 자꾸 입질을 해오는 법. 미끼는 한 문장.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헤밍웨이가 200번을 고쳐 썼다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 그 바다와 배, 노인의 조용한 기다림을 찾아가도록 등 떠미는 한 줄. 누군가를 만나려면 먼저 그의 집에 가야 한다.

    아바나 시내 남동쪽 산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에 있는 헤밍웨이의 대저택, 핑카 비히아(Finca Vigia). '전망 좋은 농장'이라는 뜻 그대로 본관과 별채와 정원에 수영장까지 2만7000여 평(9만㎡)의 부지에 연신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20년 가까이 살았고, 1961년 박물관이 된 집. "최고의 글은 사랑에 빠져있을 때 나온다"고 말했듯, 분명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집이다. 입장 불가지만 열린 문 사이로 실내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 1층엔 침실과 여러 방, 거실이 도열해 있다. 헤밍웨이는 작업실보다 침실에서 글 쓰는 걸 더 좋아했다. 그가 읽던 신문과 장서(藏書)와 변기통과 각종 동물의 대가리가 당시를 박제하고 있다.

    물 빠진 야외 수영장 옆에 그의 낚싯배 '필라(Pilar)'가 전시돼 있다. 헤밍웨이가 35세 때 구입한 배. 여기서 관광객들은 헤밍웨이가 누볐을 수심(水深)을 들여다보며 기꺼워한다. 소설 속 바다의 모습은 이 위에서 바라본 시야에서 탄생한 것이다. '필라' 앞에 헤밍웨이가 키우던 고양이 네 마리의 무덤이 있다. 블랙, 네그리타, 린다, 네론. "인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감정을 숨기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쿠바산(産) 생선을 좋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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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바의 대표적 칵테일 '다이키리'로 유명한 술집 '엘 플로리디타'에 자리 잡은 헤밍웨이 동상. 한 손님의 술잔이 그 앞에 놓여있다. 2 아바나 근처 작은 어촌 코히마르에 있는 식당 '라 테라사'. 3 코히마르에 있는 헤밍웨이 반신상과 요새. 그 앞을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난다./정상혁 기자
    말년의 헤밍웨이는 여기서 15분 거리에 있는 어촌 코히마르(Cojimar)에서 낚시를 즐겼고,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노인과 바다'(1952)를 썼다. 그를 위해 주민들은 마을 광장에 못 쓰는 배의 프로펠러를 녹여 헤밍웨이 반신상을 세웠다. 광장에서 놀고 있던 이곳 꼬맹이들이 달려와 재롱을 부린다. 가끔 사진을 같이 찍으면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먹고살기 힘든 탓이리라. 반신상 앞에 서 있는 벽돌 요새가 햇볕 아래 가만히 낡아간다. 5분 거리에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식당 '라 테라사(La terraza)'가 있다. 스페인식 볶음밥 파에야를 하나 주문한다. 밥을 먹으며 지척의 바닷가에서 어부들의 모터보트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투망은 충만으로 출렁이는 대신 아무것 드러내지 않는 햇빛의 투명을 담고 있을 따름이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배는 곧 방향을 돌려 바다로 나아간다.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

    1928년 쿠바를 처음 방문한 헤밍웨이는 1939년 정착해 1960년까지 살았고, 쿠바는 거기서 멈춰 있다. 비가 내리면 호텔이 진동하고,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금의 쿠바는 1959년 공산화 이전의 유산. 과거가 멎어 있다는 것은 회상에 잠기기 더없이 좋은 조건이며, 이는 불가항력으로 술을 필요로 한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올드 아바나. 여기 헤밍웨이의 술집 두 곳이 있다. 쿠바를 대표하는 술 모히토를 마시러 '라 보데기타(La Bodeguita)'로 간다. 좁아터진 골목길을 인파가 메우고 있다. 럼주에 탄산수, 레몬즙과 설탕을 넣고 민트잎을 첨가한 이 소박한 술 한 잔을 들고, 여름의 환희를 홀짝인다. 캬, 평일 밤에도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이유다. 가게 중앙에 헤밍웨이가 직접 쓴 글씨가 액자에 보관돼 걸려있다.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

    5분 거리에 있는 '엘 플로리디타'로 간다. 다이키리는 쿠바의 대표적인 칵테일. 당뇨가 있던 헤밍웨이는 설탕을 빼고 라임만 넣은 다이키리를 즐겨 마셨다. 이름하여 '다이키리 파파 헤밍웨이'. 중미 지역에서 제일 돈 많이 버는 술집인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자리잡은 밴드가 살사를 연주하며 텐션을 올린다. 입구에서 왼쪽 끝에 헤밍웨이 동상이 있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던 헤밍웨이는 저 자리에서 다이키리 열세 잔을 스트레이트로 퍼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동상 옆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며 잔을 비운다. 달콤하고 아주 살짝 쓴 맛이 얼굴에 다채로운 표정을 만들어낸다. 콜럼버스가 가져온 사탕수수가 노예제의 긴 터널을 지나 모히토와 다이키리가 되는 마법. 그것은 시간이다. 몇 잔을 연거푸 마신다. 하루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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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레콘에서 낚시하고 있는 주민들. 2 3 아바나 남동쪽에 있는 헤밍웨이 박물관 외부(위)와 실내./정상혁 기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튿날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시계 알람 종소리. 숙취. 계속 늘어져 있으면 날이 금방 가버릴 것이다. 구시가지의 중심 거리 오비스포(Obispo)에서 방파제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깜찍한 분홍색 건물이 하나 보일 것이다. 호텔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 헤밍웨이가 1939년까지 7년간 묵었던 곳이다. 로비부터 헤밍웨이로 가득하다. 친필 사인과 각종 사진이 로비 가장 안쪽 소파 위에 떡 하니 걸려 있다. 객실 최고층 511호로 간다. 걸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은 일종의 박물관이 됐는데, 2CUC(약 2200원)를 내면 둘러볼 수 있다. 건물 모퉁이에 있어 창 밖 두 개로 나뉜 거리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암보스 문도스는 '두 세계'를 뜻한다. 시카고 출신 미국인이면서 쿠바의 입양아를 자처한 헤밍웨이 자체가 암보스 문도스인지도.

    호텔 근처에 웬 한국산 소형차 '티코' 한 대가 주차돼 있다. 현지 여행 가이드 펠리페(61)씨는 "중고차 수입·판매를 나라에서 틀어쥐고 있어 2만2000달러(약 2500만원)는 줘야 살 수 있다"고 귀띔한다. 쿠바 의사의 평균 월급이 40달러(약 4만5000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 그러니 사실상 현지인들은 한 잔에 6000원 하는 '엘 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 같은 건 못 마신다고 보면 된다. 다만 마주치는 주민들의 표정이 냉혹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헤밍웨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대개 불행하거나 불행해 보이는 삶의 조건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일지언정 최선을 다해 살아나간다. 그러니 아바나의 흥겨움을 관광객만의 것으로 느끼며 괴로워하는 건 너무 나간 해석일지도 모른다.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무방비로 드러난 오비스포 거리의 빨래들처럼 아바나의 색이 짙어진다. 저녁이 오는 것이고, 노상의 카페가 일제히 간판에 불빛을 올리는 것이다. 늦은 저녁의 말레콘(Malecon)을 걷는다. 7㎞에 달하는 긴 방파제 길. 가끔 방파제에서 발견하는 'BTS(방탄소년단)♡' 같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향한 낙서가 격세지감을 선사한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말레콘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살사, 이 검은 음악이 아바나의 음영에 길이를 부여하며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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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바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그림 시장. 아바나의 역동이 원색의 그림 속에서 펄떡거린다. 2 술집 '라 보데기타'의 바텐더가 모히토를 만들고 있다. 3 아바나 시내를 누비는 색색의 올드카./정상혁 기자

    6차선 도로를 건너 비에하 광장에 있는 카페 '에스코리알'로 들어간다. 쿠바산 커피를 파는 곳이다. 헤밍웨이는 단편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에서 밤늦도록 카페를 떠나지 않는 한 노인을 비춘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그를 바라보는 나이 든 웨이터는 말한다. "잠들고 싶어하지 않는 모든 사람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과 함께 말이야." 잠드는 것이 아쉬워지는 밤, 구식 차량이 뿜어내는 배기가스에도 아바나의 작은 얼굴이 때묻지 않는다. 별이 열심히 떠 있다. '라 보데기타'로 가 모히토를 주문한다. 여행의 마지막 밤, 사자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이 연거푸 잔을 들이킨다.

    항공: 여행사 참좋은여행(verygoodtour.com)이 쿠바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7월 개통한 인천~멕시코시티 직항으로 멕시코를 경유해 아바나로 들어갈 수 있게 돼 여행 시간이 단축됐다.

    교통: 시내버스가 운행하긴 하나 도착 시간이 맞지 않으므로 시간 관리가 어렵다. 차라리 택시가 낫다. 고정된 기본요금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해야 하고, 합석도 각오해야 한다.

    화폐: 쿠바엔 내국인용 화폐(CUP)와 외국인용 화폐(CUC)가 따로 있다. 대략 1CUC(약 1100원)는 25CUP 정도. 미 US달러도 받는다.

    술집 ‘엘 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는 6CUC. ‘라 보데기타’의 모히토는 3CUC. 살사 연주자들이 팁을 걷으러 다닌다.

    식당 코히마르에 있는 ‘라 테라사’ 식사류는 6~10CUC. 아바나 구시가지에 최근 생겨 소문을 타고 있는 레스토랑 ‘쿠바54’는 12CUC 수준.

    헤밍웨이 박물관 입장료 5CUC. 버스를 타고 산 프란시스코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주로 코히마르로 가기 전에 먼저 들르는 코스다.

    쿠바産 럼 '아바나 클럽' 하나면  헤밍웨이의 모히토 즐길 수 있죠

    모히토 만드는 법

    모히토 만드는 법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의 양손에 들려 있던 쿠바의 술은 모히토와 다이키리였지만, 쿠바를 대표하는 건 아무래도 모히토. 그리고 이 술의 시작과 끝엔 쿠바산(産) 럼 ‘아바나 클럽(Havana Club)’이 있다.

    1878년에 문을 열어 역사만 100년이 넘는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주류 브랜드인데, 모히토를 주조할 때 쓰는 건 3년산. 오크통에서 3년간 숙성해 투명하게 여과한 이 술은 현지 가격으로 2만2000원 수준이다. 제조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아바나 구시가지에 아바나클럽 럼 박물관(The Havana Club Rum Museum)이 있다. 정석(定石) 모히토 제조법도 공개돼 있다. 마치 라면 봉지에 ‘라면 끓이는 법’이 소개돼 있는 것과 유사하다.

    먼저 작은 맥주잔에 3년산 아바나클럽 50mL를 넣고, 레몬즙 반 개만큼 즙을 짠다. 찻숟가락으로 설탕 한 스푼, 취향에 맞게 얼음과 탄산수를 넣고, 민트를 넣은 뒤 저어주면 끝. ‘라 보데기타’ 바텐더들은 전용 막대로 후다닥 저돌적으로 휘젓는데, 민트가 거의 쑥처럼 가라앉는다.

    취향에 따라 다른 음료를 섞어 마실 수도 있다. 일례로 3년산 아바나클럽 50mL에 레몬을 한 조각을 넣고, 콜라 100mL를 추가하면 ‘쿠바 리브레(Cuba libre)’.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당시 한 미군이 우연히 섞어 마셨다는 술로, 독립군이 외쳤다는 “Viva Cuba Libre”(자유 쿠바 만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이후 쿠바의 건배사로 쓰이다 칵테일 명칭으로 굳어졌다. 미국과 쿠바가 섞인 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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