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매일같이 '혈압' 올라와도… "그냥 참지요"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보험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6.6점으로 아·태 지역 15개국 평균(6.2점)보다 높았다. 한국은 왜 '스트레스공화국'이 된 것일까

    입력 : 2017.08.18 04:00

    '스트레스 공화국'이 된 이유

    "모든 건 일 때문이야"
    야근이 일상인 한국선 피로 쌓이기만 해 "어쩌다 쉬어도 불안"

    제대로 풀지도 못해
    '참는게 미덕' 문화탓에 대부분 속으로 삭이다 결국 '화병'으로 분출

    폭음·폭식이 해소법?
    짧은 시간에 풀려 하니 자극적 방법에 끌려 "되레 스트레스 늘 것"

    '물건을 마음껏 부숴볼 수 있다는 스트레스 해소방'을 표방한 서울 서교동의 '서울레이지룸(홍대)'. 카운터에 부술 수 있는 물건과 시간을 5단계로 분류한 '분노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그릇 20개와 가전제품 1개를 부수는 옵션인 '빡침(4만원)'을 골랐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는 이미 가전제품과 그릇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안전모와 목장갑을 착용하자 귀를 찢는 듯한 하드록이 7평(23㎡)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 눈앞에 프린터기와 야구방망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야구방망이를 들어 프린터기를 내리쳤다. 금기를 깨부수는 짜릿함.

    서울 서교동에 있는 스트레스해소방 ‘서울레이지룸’. 그릇과 프린터, TV 같은 전자기기를 던지거나 연장으로 내리쳐 부술 수 있다. 사진은 한 여성이 야구방망이로 그릇을 깨뜨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서교동에 있는 스트레스해소방 ‘서울레이지룸’. 그릇과 프린터, TV 같은 전자기기를 던지거나 연장으로 내리쳐 부술 수 있다. 사진은 한 여성이 야구방망이로 그릇을 깨뜨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5분간의 속풀이가 끝나자 방 안은 전쟁터가 돼 있었다. 바닥의 파편을 쓸어 담는 주인장에게 인기 비결을 물었다. "하루는 청소하러 방에 들어오니 웬만해선 안 부서지는 고무 마네킹 머리가 없어졌더라고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한국인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가 이렇게 많구나. 그래서 찾아오는구나 생각했죠(웃음)."

    friday가 성인남녀 311명을 대상으로 '최근 한 달간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해 물은 결과, '매우 많이 받는다'(28.3%), '많이 받은 편이다'(45%), '조금 받는 편이다'(25.4%), '거의 받지 않았다'(1.3%) 순으로 나타났다.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글로벌 보험회사 AIA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건강생활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6.6점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 평균(6.2점)보다 높았다. 한국은 왜 '스트레스공화국'이 된 것인지, friday가 분석해봤다.

    피로사회, 스트레스 공화국이 되다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성과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번아웃 증후군과 같은 현대인의 스트레스성 질병 모두 피로사회가 만든 그림자라는 얘기다. 대다수 한국인도 스트레스의 주범으로 '피로'를 꼽았다. friday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복수 응답)에 대해 물은 결과, '과도한 업무 또는 학업'(55.3%)이 가장 많았고, '경제적 문제'(32.5%), '수면 부족'(28.6%), '이성·부부관계'(18.3%), '직장 상사와 마찰'(17.7%)이 뒤를 이었다.

    한국인 스트레스 설문조사

    직장인 이유연(28)씨는 "매일 야근하다 보니 갑자기 저녁에 일 안 하는 날에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쉴 때도 괜스레 내일 일을 생각하게 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취업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 35개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 길었다.

    참고 참다 결국 '화병(火病)'

    PC방 자영업을 하는 김희옥(47)씨는 얼마 전 복통에 시달려 병원을 찾았다가 '화병(火病)'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오후만 되면 몰려오는 어린 학생들 때문. "게임을 하다 잘 안 되면 손바닥으로 키보드를 내리치고, 욕을 하는 학생들과 실랑이를 버리는 게 주업무예요.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아들보다 어린애들이랑 싸워서 뭐하나 싶어 참고 참다가 결국 병이 났네요."

    '화병'은 미국정신의학회가 지정한 한국인 특유의 '문화 관련 증후군'이다. 스트레스를 제때에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신체에 이상이 오는 병이다. 속이 메스껍거나 명치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고, 두통과 우울증을 동반한다. 받은 스트레스를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혼자 조용히 감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특유의 문화도 스트레스공화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잘 해소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46.3%, '전혀 해소하지 못한다'가 7.7%로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처럼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거나 관련 질환을 앓은 적이 있다는 답변도 25.7%에 달했다.

    한국인 스트레스 해소법 1위는 수면

    직장인 배준영(29·가명)씨의 취미는 '먹방대결'이다. '햄버거 30개 먹기'나 '삼겹살 20인분 구워먹기'와 같이 폭식을 주제로 한 인터넷 방송을 틀어놓고 같은 메뉴를 준비해 BJ와 함께 먹는 것이다. 배씨는 "게걸스럽게 소리를 내며 먹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폭식 BJ들만큼 먹지는 못하지만,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먹을 것을 위에 채워 넣는 고통을 즐긴다"고 했다.

    friday가 '스트레스 해소 방법'(복수 응답)을 물은 결과, '잠을 잔다'(56.9%), '폭식'(30.9%), '대화'(30.9%), '폭음'(28.9%), '운동'(28.3%) 순이었다. 많은 한국인이 잠이나 폭식, 폭음 등 즉각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다.

    송지영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깊은 잠인 렘(REM)수면 상태에 들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풀고 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송 교수는 또 "폭음과 폭식은 가장 좋지 않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며 "오히려 수면을 방해해 피로를 쌓이게 하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 야구방망이로 온갖 물건 박살 내볼까, 낚싯대 드리우고 '멍 때리기' 해볼까

    스트레스 제대로 풀어줄 곳들

    '술 취한 코끼리'의 저자 영국 승려 아잔 브라흐마는 한국인에 대해 "열심히 하는 것은 잘하는데, 쉴 때를 모른다"고 평했다. 쉬는 법을 모르는 한국인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스트레스 해소 공간을 직접 다녀왔다.

    홍대 레이지룸

    누구나 한 번쯤은 주변의 무언가를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서울레이지룸'에서는 야구방망이, 망치, 배척(빠루), 골프채 등의 연장으로 그릇과 프린터기, 전자레인지 등을 맘껏 내리칠 수 있다. 체험 시간과 물건 종류에 따라 5단계로 나뉘며 가격은 2만~18만원 선. 집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가전제품을 들고 와 부술 수도 있다. 영업시간은 매일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고 화요일은 쉰다. (02)6397-8586

    아빠붕어낚시카페

    서울 대학로에 있는 '아빠붕어낚시카페'는 도심에서 민물낚시의 손맛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은은한 조명이 고즈넉한 저수지 낚시터 분위기를 연출한다. 100g짜리 붕어부터 10㎏이 넘는 대형 붕어까지 잡을 수 있다. 낚은 붕어의 무게를 달아 목표 점수를 넘으면 인형, 미니 선풍기, 드론 등 사은품을 준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맥주 한 캔을 들고 앉아 '멍 때리기'를 하는 것도 좋다.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영업한다. 가격은 1시간에 1만원. 주류를 제외한 음료와 주전부리는 모두 무료다. (02)741-1733

    ①양궁 체험을 할 수 있는 ‘슛앤샷양궁카페’에서 한 여성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②‘아빠붕어낚시카페’에서 한 커플이 붕어 낚시를 즐기고 있다. ③‘강남VR플러스’에서 절벽을 오르는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 중인 한 남성. ④‘심리치유카페멘토’에서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①양궁 체험을 할 수 있는 ‘슛앤샷양궁카페’에서 한 여성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②‘아빠붕어낚시카페’에서 한 커플이 붕어 낚시를 즐기고 있다. ③‘강남VR플러스’에서 절벽을 오르는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 중인 한 남성. ④‘심리치유카페멘토’에서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슛앤샷 양궁카페

    TV드라마 사극 속 주인공들은 분노와 슬픔을 삭힐 때 활을 쏜다.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서울 성내동에 위치한 '슛앤샷양궁카페'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활 시위를 잡아당기는 손맛과, 10m 떨어진 과녁에 화살이 명중했을 때 느낌이 시원하다. 가격은 화살 10발에 5000원. 1시간 이용 시에는 2만원이다. 추가로 비용을 내면 전직 양궁 선수들에게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다. 평일 정오부터 오후 10시,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02)6959-0030

    심리치유카페멘토

    서울 서교동에 있는 '심리치유카페멘토'는 전문 심리상담사가 성격 유형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에 맞게 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서로 성격을 알아보고 싶은 연인, 친구, 가족이 주로 찾는다. 수십 개의 성격 유형 테스트를 치르면 심리상담사가 테이블에 앉아 분석 및 상담을 해준다. 가격은 음료 한 잔과 테스트 비용을 합쳐 1만5000원 상당. 매일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070-8879-7676

    티테라피

    달짝지근한 약재로 만든 한방차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티테라피'는 각종 한약재로 우려낸 차를 파는 한방카페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박하, 곽향, 감초로 만든 '향통차(8000원)'가 제격. 가게에 놓인 간단한 설문 조사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거기에 맞는 차를 고를 수도 있다. 족욕 공간도 마련돼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 (02)730-7507

    VR 체험방

    현실을 잊고 가상 세계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VR플러스'는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절벽을 오르는 클라이밍부터,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하는 롤러코스터 게임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매장에서 6300원 상당의 음료를 사면 각종 VR 기기를 체험할 수 있다. 서울 상계동이나 부산 남포동, 광주광역시 충장로점 등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남점 영업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고, 오후 2시 30분~3시 30분까지는 쉰다. (02)1522-8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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