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friday] 일본이 꽃피운 핸드드립 커피… 드러내고픈 취향과 내밀한 욕망

  • 박철화·문학평론가

    입력 : 2017.08.11 04:00

    [박철화의 사소한 것의 인문학] 드립 커피와 취향

    이미지 크게보기
    에티오피아·케냐·인도네시아·과테말라·콜롬비아·브라질…. 원두는 많아도, 내 입에 맞는 커피가 제일 좋은 커피다. /이진한 기자
    장마와 폭염을 거듭하다 보니 지친다. 밤낮 구별 없이 찜통더위에 갇혔다. 이러다간 여름이 그저 생존을 위해 견디는 계절이 될 참이다. 어디 시원한 곳에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좁은 국토에다 짧게 겹치는 휴가 일정 탓인지 길은 밀리고 곳곳이 꽉 차 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오히려 텅 빈 도심에서 한갓지게 여름을 나는 것도 지혜다. 마음에 드는 책을 뽑아들고 시원한 카페로 가서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카페가 이미 삶의 한 공간으로 바뀐 지는 좀 되었지만, 휴가철 도심의 카페는 주인분들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한산하다. 그 여유는 피서지의 시원함에 뒤지지 않는다. 거기서 좋은 커피라도 만날 수 있으면, 뜻밖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가 에스프레소 중심이라면,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는 핸드드립 커피가 많다. 이 문화를 꽃피운 주인공은 일본이다. 일본은 차를 중시하는 다도(茶道)의 나라다. 그런데 차를 마시는 데 익숙한 사람들 입맛에 서양의 커피는 꽤나 거칠고 기름지다. 게다가 일본 전통음식은 심심할 만큼 담백해서 그런 식문화에 맞추자면, 커피 역시 차처럼 깔끔한 맛을 갖출 필요가 있다. 서양 문화를 자기 것으로 바꾸는 데 뛰어났던 근대 일본의 장인들이 종이 필터로 커피를 거르면 맛이 훨씬 담백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커피는 산뜻하고 깔끔해서 우리 입맛에 비추면 약한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맛의 문제일까? 에스프레소는 기계에서 나오는 균질한 커피다. 기계와 원두 수준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하겠으나, 같은 카페의 에스프레소는 왕족이든, 노동자든, 똑같이 즐기는 평등한 커피다. 그에 반해 핸드드립은 원두의 종류와 간 정도, 물의 온도, 커피 내리는 시간 등등 사람의 경험과 기술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섬세한 깊이를 추구하는 일본의 장인 문화와 어울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런데 이 다양함이 매력이긴 하지만 동시에 우열의 지표가 될 위험도 있다. 그것이 맛의 차이로 그치지 않고,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기' 하려는 사람에게는 사회문화적 기호가 되기 때문이다.

    신분제를 벗어던진 근대인들은 사회적 평등 혹은 몰개성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내밀한 욕망을 갖는다. 사회적 계급 문제로 드러나는 취향의 구별 짓기는 명품의 사회심리학에서 보듯, 비싸고 귀한 차원에서 대중의 접근 가능성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다름을, 나아가 우월함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 점은 유교 문화의 수직적 권위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더 강하다. 근대화에 앞선 일본이지만, 그들도 근대 초기 평등한 국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을 신민(臣民)이라는 우열의 용어로 옮길 것인지 논의했을 정도로 권위주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다름을 지나쳐 남보다 더 나아야만 하는 문화 속에서 핸드드립 커피는 사회적 구별의 의미를 갖기도 했을 것이다. 핸드드립 커피가 유독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원두며, 얼마나 비싸고 귀한지, 누가 볶았고, 내리는 사람이 얼마만 한 전문성을 가졌는지를 지나치게 따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서양 음식이 우리나 일본 음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듯, 커피 역시 음식 문화의 한 부분이며 자기 취향의 문제다. 정답과 오답, 또는 우열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즘 유행인 '스페셜 티'라고 부르는 커피의 산미도 그냥 하나의 트렌드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한 카페업자가 대통령의 인기를 이용해 일으킨 매직 블렌딩 소동 또한 그런 점에서 해프닝이다. 대통령의 입맛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게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비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블렌딩의 커피는 발에 차고 넘친다. 늘 먹다 보니 우리가 나름 밥맛의 기준을 가진 것처럼, 자주 마시다 보면 커피도 취향이 생긴다. 그래서 어쩌다 내 입에 맞는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면, 그게 곧 일상의 작은 행복이며 나만의 달콤한 휴가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