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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이혼한 딸, 10년 만에 손녀는 데려왔지만…

      입력 : 2017.08.11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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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안병현

      새 출발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달콤하게 들립니다. 잘못된 인연, 아픈 기억을 깡그리 지우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런 식의 편리한 새 출발은 우리를 원점의 절망으로 되돌려놓는 부메랑일 뿐입니다. 진정 새로운 출발을 원한다면 내 앞에 놓인 밀린 청구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책임과 헌신과 사랑의 독촉장 말입니다.

      홍여사 드림

      지인의 마흔 살 '골드 미스' 딸 결혼식에 다녀오던 날, 축하하는 마음 한편에 착잡한 기분도 들더군요. 느지막이 결혼해도 저렇게 잘만 시집가는 걸, 우리 딸은 뭐가 급해 그렇게 일찍 갔던가? 스물둘 어린 나이에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사윗감을 데려왔을 때 우리 부부는 충격을 받았었지요. 워낙 말썽쟁이 딸 같았으면 결사반대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딸은 어릴 때부터 생각이 깊고 절제심이 있어 애늙은이 소리 듣던 아이였죠. 그래서 불안감을 억누르고 딸의 뜻을 따랐던 건데….

      결혼 6년 만에 둘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딸아이는 결혼 생활이 곪아터지도록 저에게 내색하지 않았죠.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도 저는 세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짧았던 연애 기간에는 몰랐던 폭력적 성격을 드러내며 아내를 학대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병원까지 들락거리며 딸아이의 몸과 마음이 상해갔다는 것을 알 뿐이죠. 물론 상대방도 할 말이 있을 겁니다. 우리 딸이 뭔가 부족한 면도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딸이 친정으로 피해 있을 때 사위가 보여준 극단적인 언행과 야비함만으로도 지난 시간들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혼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도 컸습니다. 빈 몸으로 집을 나온 거야 차라리 깨춤이 나올 일이지만, 세 살 먹은 딸아이를 데려오지 못한 일은 한이 되었지요. 사위가 아이를 절대 내주지 않으려 하니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자식에게는 지극정성인 아빠라는 점,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부유한 집안이라는 점을 핑계 삼아 차츰 마음을 접게 되더군요.

      사실 그 당시 딸아이는 심신이 피폐하고 기가 꺾여서 혼자 자식을 키울 자신감도 안 생기는 모양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아이 데려오기를 굳이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손녀보다는 딸 생각이 우선이었던 겁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지만 내 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눈 딱 감고 다시 생각할 문제였습니다. 아직 이십대인 딸아인데,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데, 자식이라는 덫에 걸려 평생을 허우적대게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혼 이후 딸은 우리의 바람대로 공부에 매진했고 늦게나마 본인이 원하던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웃음을 되찾고 다시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죠. 서두를 것 없이 그렇게 몇 년 마음을 추스른 뒤에 다시 좋은 인연을 찾기를 저는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웃음은 겉웃음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저한테 울며 그러더군요. 자식을 버리고도 이렇게 살아지는 게 기막히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버리긴 누가 버려? 상황이 안 되니 포기한 거지." 그러자 딸이 피식 웃으며 그러더군요. "엄마, 그게 그거야."

      그날 듣고 알았습니다. 딸의 생각은 온통 아이를 찾아오는 데 가 있다는 것을요. 자리를 잡으면 딸을 데려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키울 거라고요. 재혼이나 연애 따위는 생각도 안 한다더군요.

      그런데 딸의 꿈이 10년 만에 거짓말처럼 이루어졌습니다. 그토록 완강하던 아이 아빠가 먼저 연락을 해와서 아이를 데려가라 하더라는군요. 3년 전에 한국에 돌아와 재혼도 했는데,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새엄마와 마찰이 심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본인이 친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말하며 등교 거부까지 하니 달리 방법이 없다나요.

      그렇게 10년 만에 아이를 데려오게 된 딸은 부푼 마음으로 새살림을 준비했습니다. 저희끼리 한번 살아보겠다며 작은 아파트를 얻어 나갔습니다.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며칠은 제가 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볼수록 신기하고 눈물겨웠습니다. 딸아이 어릴 때 모습 판박이인 데다 저를 외할머니라고 무척 따르더라고요. 그 아이 눈을 보며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제 엄마 인생에 짐이 되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큰 기쁨과 보람을 선사하는 게 자식인 것을….

      하지만 손녀가 제 엄마에게 가져다준 것은 기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크고 깊은 고민과 아픔을 가져다주더군요. 사사건건 대들고, 따지고, 반항한답니다. 등교는 하지만 학업 성적은 여전히 바닥이고, 친구 관계에도 아무 흥미가 없다네요. 오직 엄마를 들볶는 낙으로 사는 아이 같아요. 가장 못 봐주겠는 것이 제 엄마를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모습입니다. 마음 밑바닥에 반감이 가득한 듯했습니다. 일하고 있는 엄마한테도 전화로 시비를 걸고, 빨리 들어오라고 문자 폭탄을 보내는 십대 손녀. 허겁지겁 들어와 보면 온 집 안을 어질러 놓고 방문 잠그고 안 나오는 아이. 혼을 한번 내줄 만도 한데 아이 엄마는 그저 웃으며 달래고 받아만 줍니다. 하긴 그 입장도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요. 어떻게 찾은 딸인데….

      보다 못해 제가 제의했습니다. 아이가 내 말은 듣는 편이니 우리 집에 잠시 맡겨보라고요. 하지만 딸이 싫답니다. 지금 아이가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네요. 이래도 날 안 버리나, 이래도 포기 않나 하고. 이 시험에 떨어지면 끝이랍니다.

      말뜻은 저도 알아듣습니다만 억울한 생각도 듭니다. 내 딸이 무슨 큰 잘못을 해서 이리 어렵게 사나요? 다른 집 딸들은 아직 시집갈 생각도 않고 인생을 즐기는데….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아이 마음이 환히 열릴 날이 있겠지요? 진정한 인생 새 출발은 아마 그때로 기약해야 하겠지요. 그때도 아직 늦은 때는 아니겠지요?

      ※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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